[4월 96호] 대흥동 공영주차장, 이희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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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할 때는 가끔 다른 사람이 된다. 아무런 신호도 없이 끼어들기 하는 차(사람), 직진 차선인데 좌회전하려고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사람). 도로 위에서 짜증나게 하는 많은 것에 불쑥 화가 나 내게만 들릴 욕을 하거나 분풀이용 경적을 빵- 하고 누른다. 운이 아주 안 좋지 않은 이상 다시는 볼 일 없을 사람(차)에게 화를 내고(물론 선팅된 창문을 꼭 올리고) 사무실 근처 대흥동 공영주차장에 들어설 때, 잠시 창문을 내려 ‘사장님’에게 인사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늘은 바쁘네요.”, “늦게 끝났네요?”, “요즘 토마토 바빠요? 실장님 바쁘게 다니시데?” 짧은 시간, ‘사장님’은 많은 것을 묻는다.
차 문을 여니 주차장이, 이희탁 씨가 있었다

열두 자리 번호와 차종, 색, 스티커나 안테나에 꽂는 인형 등으로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한 다양한 차들. 차마다 개성이 있지만, 도로에서 만나는 차에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운전자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햇빛이 강한 오후가 아니라면 선팅된 차 안이 제대로 들여다보이지도 않으니 ‘차’를 ‘차’로 대하는 게 당연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차를 타고 출근하며 처음 대면하는 사람은 대흥동 공영주차장 ‘사장님’이다. 요즘 일은 어떤지 물어주는 사람, 좁은 공간에 주차하기 어려워 쩔쩔매고 있으면 작은 공간에서 나와 주차를 도와주는 사람. ‘사장님’의 이름은 기쁠 희에 높을 탁 자를 쓰는, 이희탁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희탁 씨가 대흥동 공영주차장의 사장님은 아니다. 작년까지 중구에서 운영하던 공영주차장을 올해부터 유료 위탁 운영하고 있으며, 이희탁 씨는 위탁받은 운영자가 고용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이희탁 씨가 정해진 때에 청소를 시작하고 주차 요금을 받고 정산을 마치고 정해진 시각이 되면 ‘땡’ 집으로 가는 ‘직원’은 아니다.

진짜 사장님이 아침 열 시나, 열한 시에 나오라고 해도,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 늦어도 여덟 시 반에 나와 청소를 시작한다. 아침마다 출근하러 주차장에 들르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기분 상하는 일 없도록 주차장을 깔끔하게 유지한다.

    

    

이희탁 씨의 조그만 공간에 들어갔다

대흥동 공영주차장의 건물 외관을 한눈에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차로 왔다 갔다 할 적에 주차장 건물의 일부를 잠깐씩 봤을 뿐이다. 대흥동 공영주차장은 3층과 옥상인 4층까지 총 145대를 주차할 수 있는 철골조 건물이다. 창문이 있을 곳이 ‘뻥’ 뚫려, 차갑고 왠지 모르게 공허해 보인다.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기 전에 차단 봉을 열어주는 이희탁 씨는, 조그만 공간에 앉아 있다. 월정액을 끊은 차가 들어오는 쪽으로 작은 창문이 있고 그 옆으로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책상은 들어오는 차와 같은 쪽을 향하고 있다.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가 놓였다.

의자 뒤편에 간이침대가 있다. 하지만 이 침대에 누워 편히 쉬어 본 일은 없다. 간이침대 위에 놓인 라디오로 이희탁 씨는 종일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눈으로 들어오는 차량을 살피고 손을 바삐 움직이더라도 귀로는 방송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침대 맞은편에는 작은 싱크대가 있다. 이 공간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 앞으로는 밥을 해 먹으려 밥통도 샀다.

이 작은 공간의 정수는 창문 밑에 있는 스위치다. 파란색은 차단 봉을 올리는 버튼, 빨간색은 내리는 버튼이다. 파란색과 빨간색 버튼 밑으로 똑딱이 스위치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을 위로 올리면 차단 봉이 올라가고 아래로 내리면 차단 봉이 내려간다. 파란색 버튼과 빨간색 버튼의 기능을 합친 것이 똑딱이 스위치다.

주차장 입구는 둘이다. 차단 봉이 있는, 이희탁 씨가 있는 작은 공간과 접한 왼편 입구로는 월정액을 끊은 차들이 다니며, 오른쪽 입구로는 잠깐씩 왔다 가는 차들이 다닌다.

이희탁 씨는 작은 공간에서 왼편으로 오는 차량이 있나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제 어떤 차들은 엔진 소리만으로 알아차리기도 한다. 오른편 입구로 들어오는 차는 고속도로 통행소처럼 들어온 시각 정보가 입력된 작은 종이 표를 뽑아 들어오고, 월정액을 끊고 왼편으로 들어오는 차는 이희탁 씨가 일일이 번호를 확인해 차단 봉을 열어 준다. 이희탁 씨는 60~70대쯤 되는 월정액 차의 번호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

    

    

우리 식구가 누군지도 모른다

이희탁 씨는 월정액을 끊고 주차장에 오는 사람들을 ‘식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식구들의 차 번호는 알아도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식구들 얼굴은 대체로 한 달에 한 번, 월정액 계산을 할 때 본다.

“차가 우선이에요. 차가 얼굴이죠. 차 넘버가 우선적으로 보이니까요. 사람 얼굴을 보려 해도 창문에 선팅이 돼 있잖아요. 우리 식구가 누군지도 몰라. 휙 지나가고 쓱 가요. 자기주의 시대 아녀요.”

식구는 더 반가운 존재지만, 식구든 아니든 차창으로 얼굴을 마주하면 말 한마디라도 꼭 건넨다. ‘같은 말이라도 좋게’ 하는 것이 이희탁 씨의 주차장 관리 철학이고, ‘서비스’다. 어디를 다녀오시느냐고 묻기도 하고, 밥은 드셨냐고 묻기도 한다. 가끔 농담도 건넨다. 일요일에는 무료로 개방한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이곳을 더 자주 찾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주차장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전상고를 졸업해 은행에서 일하던 이희탁 씨는, 은행을 그만두고 양계업을 꾸렸다. 사업이 잘되지 않아 부도를 맞았고 대전고용센터 취업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일자리를 얻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잘될까 싶다가도 나이를 알려주면, 어렵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차장 일은 간절하게 얻은 자리였다. 대흥동 공영주차장에 오기 전, 둔산동 노상 주차장에서 한 달간 실습을 했다. 뛰어다니며 주차 차량을 관리해야 하는 노상 주차장과 비교하면 이곳은 편하게 일하는 셈이고 머무는 공간도 넓은 편이라고 이희탁 씨는 말한다.

올해부터 대흥동 공영주차장에서 일했지만, 하루에 수십 대에서 백 대가 넘는 차량을 관리하다 보니 차를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차가 운전하는 사람을 닮는다는 것도 알았다. 어떤 차는 항상 깔끔하고, 어떤 차는 좁은 주차장에서도 속도를 낸다. 차단 봉이 조금이라도 늦게 올라가는 것 같으면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자리도 다르다. 외제 차를 끄는 사람이나, 여성 운전자들은 이희탁 씨가 머무는 작은 공간 근처에 주차한다. 아무래도 관리자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차가 무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렇지만 이희탁 씨의 시선은 2, 3층과 옥상에도 닿아 있다. 작은 공간에서 CCTV 화면을 수시로 확인한다.

주차장 일이 익숙해졌어도 여전히 사람 대하는 것은 어렵다. 주차장에 있으면 세상에 별별 사람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 몇 백 원에 실랑이가 붙기도 한다.

“주차장 기본료가 4백 원이에요. 사실 한 번 들어왔다 나가더라도 돈을 받아야 해요. 사장님은 받지 말라고 했는데 봉급쟁이 입장에서는 안 받을 수가 없죠. 결재 시에 돈이 비면 사장님 입장에서는 아무려면 싫겠죠. 현금이 없다고 문화 상품권을 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제 돈을 채워 넣어요. 주차장이 잘 좀 운영됐으면 하는 맘이에요. 제가 부도를 맞아봤기 때문에 사업하는 사람 마음을 잘 알아요. 그래서 주차장이 번창했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우리 주차장’에 차들이 왔다 간다

“여기는 차 받치기가 좋아요. 천장도 있으니 햇빛에 차 광택이 변질될 우려도 없고요. 시설 잘 돼 있고 공간도 크고요. 소방 시설도 다 점검 받고요. 또 경차는 할인도 되고, 경차 말고도 다른 혜택도 많고요.”

이곳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어도, 이희탁 씨는 이 공간에 정이 들었다. ‘우리 주차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니, 일하는 데 힘도 덜 든다.

“주차장이 활성화 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오는 사람이 늘어 가는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사장님도 돈 좀 벌고 하면 나도 덩달아 좋아지는 거 아녀요. 매출이 올라갈 때 좋아요. 몸 가뿐히 퇴근하죠. 저도 사업해 봐서 그 심정을 알아요. 매출이 올라가면 그런 의미에서 좋죠. 봉급쟁이, 직원이라는 생각 안 하고 나도 더 일하려고 하고요. 4층 옥상까지 총 145대를 채우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어렵게 얻은 일자리인 만큼, 건강이 허락하는 때까지 주차장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주차장 일을 하면 할수록 은행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시재를 맞추지 못해 자신의 돈으로 메우는 일도 있다. 돈을 만진다는 게 그렇다. 컴퓨터로 할 작업이 있으면 느릿느릿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하나하나 친다. 원래 컴퓨터를 다루지 못했는데, 고용센터에서 배웠다. 

“사장님 하고도 얘기했어요. 계속 가 보자고요. 저도 나중에 조그만 주차장을 운영해 볼까 해요. 사장님도 해 보라고 하고요.”

이희탁 씨는 이곳 대흥동 공영주차장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 이곳의 겨울은 추웠지만, 봄은 따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여름은 다른 곳보다 시원할 것이다. 하루하루 계절이 다른 얼굴을 하고 주차장을 찾는 동안, 몇 천 대, 몇 만 대, 수도 없는 차들이 주차장에 들렀다 갈 것이다. 잠깐 들렀다 가거나, 오래 들렀다 가거나 어쨌든 왔다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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