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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0호] 뭘 얼마나 더 포기할 건데?
독립영화 감독 ‘해강’은 첫 번째 장편영화 <기럭지>를 찍고 있다. 하지만 부족한 제작비 탓에 장소 섭외조차 만만치 않다. 친구인 프로듀서 ‘주한’과 촬영감독 ‘수인’과도 매순간 부딪힌다. 스태프들은 그의 외골수 같은 고집과 열악한 제작환경에 지쳐 하나둘 떠나간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가르치며 만난 애인 ‘지민’ 또한 “나는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라며 떠난다. 촬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비가 바닥나고, 부족한 제작비를 대 줄 제작사를 만나지만 시나리오 수정과 편집권을 요구하며 해강은 딜레마에 빠진다. “어떻게든 찍어서 완성하는 게 자존심”이라고 말하는 ‘주한’의 말에 조금의 타협을 하기로 하지만, 끝까지 개운치가 않다.
영화는 부산을 배경으로 했으며, 부산 출신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덕분에 지역의 독립영화 제작 현장을 엿보는 듯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독립영화 제작 현실과 창작자의 딜레마라는 주제를 담고 있지만, 곳곳에 밴 위트와 유쾌한 결말에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부산 출신의 박준범 감독은 2007년 <도다리-리덕스>로 장편 데뷔를 한 이후, 부산에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왔다. <디렉터스 컷>은 그의 두 번째 장편이다. 지난 해 ‘메이드인부산독립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상영되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뒤 프랑스 투르아시아국제영화제, 베이징영화제 등에 잇달아 초청받으며 호평을 받았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는 대전아트시네마 장승미 프로그래머의 사회 아래 진행했다.
A. 사실 작품으로 영화에 관한 얘기는 안 하고 싶었어요. 어쩔 수 없이 자기 푸념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러다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독립영화 감독의 창작적 딜레마, 갈등에 관한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영화는 스태프, 공간, 예산 등 현실적인 조건이 수반돼야 결과물이 완성되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창작자가 겪는 표현의 욕망과 현실적 제약 사이의 딜레마를, 그런 창작자의 속성을 들여다봐 줬으면 했어요.
A. 일종의 실험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일상의 한 부분을 그대로 떼다 놓은 것처럼 극사실적으로 찍으려 노력했고, 그 속에서 극적이고, 강렬한 효과를 주고자 했어요.
심장을 던지는 장면은, 해강이 친구 수인에게 ‘너는 나를 이해하지?’라고 질문을 던지고 수인이 ‘그건 너의 몫’이라는 뜻으로 심장을 돌려주는 걸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장면에 대한 관객들의 해석이 굉장히 다양해서 흥미로웠어요.
A. 말로 내뱉는 언어는 복잡 미묘하기도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관객이 인물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을 그 감정 자체로 받아들이길 바랐어요. 그래서 대사를 많이 넣지 않았어요.
A. ‘해강’은 제가 만들어낸 캐릭터예요. 오히려 영화를 본 지인들은 제가 ‘주한’ 캐릭터랑 닮았다고들 해요. 실제로도 조곤조곤 풀어가려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영화를 극사실적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관객들이 영화감독으로서 ‘해강’과 저를 동일시하게 되는 한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캐릭터와 거리를 두려고 했고, 객관적으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는 제작사의 간섭 등으로 원하는 부분을 포기하거나 한 적은 없어요. 제작, 배급까지 직접 하고 있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편집을 위해서 시간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A. 현장을 경험하고 엄두가 안 나 그만두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상상하던 것과 현실 사이의 갭을 감당하기 힘들어 하는 거죠. 그런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A. 독립영화 중에서도 특히 장편영화는 감독 개인의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예산, 인력 등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져야만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져요. 영화인들이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 보다 성숙하고 세련된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