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0호] 수화하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수화를 익히려고 동영상 여러 개를 찾았다. 영어는 유치원 때부터 배웠는데 수화는 한 번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지난 6월 28일 농아인의 날, 카카오톡에 수화로 말하는 소년 ‘히로’가 출현했다. 열린책장 강화평 대표와 강세영 수화통역사가 기획하고 열린책장 콘텐츠 제작팀에서 근무하는 지혜진 디자이너가 그린 작품이다.
조금 불편한 세상에서

1993년 4월의 어느 날, 가족 모두 농인인 집에서 둘째 혜진 씨가 태어났다. 밤이면 빨간 실을 손가락에 묶고 잠이 들었다. 빨간 실은 소리를 듣을 수 없는 엄마와 혜진 씨가 잠든 사이에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두 살 때였어요. 밤새 열이 나는데 야간이라서 수화통역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부모님 모두 농인이기 때문에 수화통역사가 없으면 병원 가기도 힘들어요. 아침에서야 병원에 갔어요. 며칠 진료를 받고 겨우 열이 가라앉았는데 그때부터 청력을 잃었어요.”

 

 

자연스럽게 수화를 모국어로 익혔다. 수화를 쓰는 사람에게는 각 나라의 언어가 아니라 각 나라의 수화가 모국어다.

 

 

“보통 농인이라고 하면 의사소통할 때 필담을 한다거나, 정보를 습득할 때 읽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좀 달라요. 일단 수화 문법이 말과 달라서 아무래도 한글을 익히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농인 중에는 한글을 잘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어요.”

 

 

어미를 활용해 평서문, 의문문, 명령문, 감탄문 등을 만드는 우리말과는 달리 수화는 언어 외의 기호로 문장을 완성한다. 예를 들어 ‘가다’라는 수화를 하면서 눈썹을 올리고, 표정을 달리하면 ‘가니?’라는 의문문이 된다.

 

 

“많은 게 달라서 글을 배우는 게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컵’이라는 사물을 눈으로 보고 ‘ㅋ, ㅓ, ㅂ’을 수화로 표현해서 배워요. 또 그걸 한글로 쓰는 법을 배우고요.”

 

 

조금 더 편한 세상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림으로 돈 버는 게 어려울 것 같아서 디자인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열린 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입사지원서를 냈다.

 

 

“처음엔 수화영상도서의 배경을 그렸어요. 선녀와 나무꾼, 우렁이 각시, 토끼전 같은 도서를 농인이 수화로 읽어주면, 그것과 맞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어요. 저도 어릴 때 많은 동화책을 접하지 못했거든요. 기억에 남는 건 백설공주 정도예요. 만약 저 어릴 때 수화영상도서를 볼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2015년 농인의 날 발표한 히로 이모티콘 역시 농인에게 조금 더 편한 세상을 선물하고자 하는 맥락이었다. 무엇보다도 모바일 환경에서 빠르게 문장을 완성해야 하는 불편함을 조금 덜어주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강화평 대표가 생각한 아이디어였는데, 처음엔 사람들이 이걸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카카오톡 환경이 굉장히 빠르잖아요. 히로 이모티콘이 농인들이 모바일로 소통할 때 조금이라도 편리함을 주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열린 책장에서 회의 끝에 스물네 개를 선정했다. “고마워, 사랑해, 힘내.” 등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출시 후 많은 농인이 히로 이모티콘에 고마움을 표했다. 또 더 자주 쓰이는 말인데 히로가 표현하지 않는 말을 알려주기도 했다.

 

 

“히로 2탄을 고민하고 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자 캐릭터도 생각하고 있어요. 히로를 보고 농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면 좋겠어요.”

 

 

거리에서 수화를 쓸 때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듣지 못한다고 행복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농인을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을 볼 때 힘들다. 버스나 KTX에서 내리는 곳을 찾지 못할까 봐 잠들지 못하고, 수화통역사가 없는 곳에서 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등 불편한 점은 많지만, 친구들과 수다 떨 때, 쇼핑할 때, 게임 할 때, 혜진 씨는 행복하다.

 

 

고요한 공간에 그들의 언어가 허공을 휘젓는다. 지혜진 씨와 수화통역사가 의사소통하는 동안 멍하니 그들의 얼굴과 손을 바라보았다. 웃음을 짓기도 하고 서로 공감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이야기 나누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애써 올렸다. 어쩌면 청인이 더 많은 세상에서 이들이 느끼는 외로움이란 이런 게 아닐까.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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