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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8호] 두부, 오징어, 그리고 칼국수
칼국수집을 맛집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멋쩍다.
너무 흔하고 간편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갔다간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게 또 칼국수다.
칼국수 문화가 발달한 대전에서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칼국수를 쉽게 맛볼 수 있다.
경동오징어국수도 그 중 하나다.
대전은 그 어떤 지역보다도 칼국수 가게가 많은 도시다. 과거 일제에 의해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일본식 우동문화가 발달해 그것이 ‘가락국수’라는 형태로 자리 잡았고, 훗날 칼국수 문화의 발달로 이어졌다. 그런 만큼 대전에는 오랜 전통을 지닌 칼국수집이 많다. 집집마다 내놓는 칼국수의 형태도 다양하다. 얼핏 헤아려만 봐도 기본이 되는 멸치 칼국수부터 들깨 칼국수, 사골 칼국수, 얼큰이 칼국수, 해물 칼국수, 비빔 칼국수 등이 있으며 면이나 육수, 고명까지 따지면 그 맛도 실로 가게마다 가지각색이다. 그래서 외지인의 입장에서 ‘칼국수가 무에 그리 특별할까’ 싶다가도 대전의 오랜 칼국수집을 하나하나 방문하다 보면, 점점 다른 집들이 궁금해지는 게 대전 칼국수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
‘경동오징어국수’ 또한 비슷한 듯하며 다른 대전 칼국수의 한 특색을 보여주는 맛집이다. 동구 성남동에 있는 경동 오징어 국수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용전네거리 부근 대로변에 위치하며 건물 꼭대기에 큼지막한 간판도 붙어 있어 쉽게 눈에 띈다. 경동오징어국수는 대전시에서 지정한 3대 30년 전통업소이기도 한데, 그 명성을 자랑하듯 입구와 내부에는 그간 각종 방송에 출연했음을 알리는 표식이 여기저기 붙었다.
물론 시에서 지정하거나 단순히 오래됐다는 것만으로 (여러가지 의미에서) 믿을만한 음식을 내놓는다 할 수는 없다. ‘전통’을 내세우며 눈에 빤히 보일 정도로 위생은 뒷전인 곳을 많이 보아왔던 탓이다. 습관처럼 실눈을 뜨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을 이리저리 살핀 후 속으로 ‘일단 합격’을 외쳤다.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은 깔끔하게 정돈됐고 오픈된 주방 또한 깨끗한 모습이다. 1976년에 문을 열었다고 알려진 이곳은 외관에서도 알 수 있듯 그간 모습을 많이 바꾼 듯했다.
‘오징어 국수’라고 하면 마찬가지로 3대 30년 전통업소인 대흥동의 ‘소나무집’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곳의 오징어 국수는 그곳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대표메뉴인 ‘두부오징어국수’ 2인분을 주문하자 양푼처럼 생긴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푸짐한 양의 칼국수가 담겨 나왔다. 검붉은 빛을 띠는 국물은 보기만 해도 얼큰하다. 오징어 추가(2000원)를 한 덕분에 제법 넉넉한 양의 오징어와 함께 두부, 큼직하게 썬 대파, 쑥갓 등이 한 데 어우러진 모습이다.
국물은 예상했던 대로 칼칼하다. 면은 평범한 기계식 면으로 적당히 졸깃하다. 먹을수록 콧잔등에 땀이 맺힐 만큼 맵고, 입에 붙는 감칠맛은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맛이다. 한편 갈수록 입안에는 텁텁한 맛이 감도는데, 이는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 쓴다는 천연조미료 덕분인 듯했다. 멸치, 채소, 다시마 등을 비롯한 각종 재료로 만든 다소 거친 가루의 질감이 혀끝에 남는 맛이다. ‘오징어 국수’라는 이름답게 통통하고 싱싱해 보이는 오징어의 맛도 괜찮다. 여기에 대전의 칼국수집에서 빠지면 섭섭한 두부까지 더해져 보통의 칼국수와는 다른 든든한 포만감을 준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두부오징어국수는 얼핏 두부 두루치기와 칼국수를 혼합한 형태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칼국수라는 음식의 성격이 그렇듯, 경동오징어국수의 두부오징어국수는 ‘우와’ 하고 감탄할 정도의 맛은 아니다. 막상 먹을 때는 덤덤하지만 뒤돌아서면 이따금 생각이 나는 그런 맛이랄까. ‘두부오징어국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각의 재료에 충실한 맛을 내는 담백한 태도가 좋다. 다만, 두부오징어국수는 2인분부터 주문할 수 있도록 한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대전 동구 성남동 166-170
042. 626. 5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