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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8호] 푸른 산 아래 푸른 강이 흘렀다
산은 한여름 푸르게 푸르게 피어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나뭇가지 끝에 새끼손톱만 하게 피어난 새싹은 어느새 넓은 잎사귀를 내보였다.
발끝에 차이던 어린 풀들은 무릎을 간질일 만큼 키를 키웠다. 산이 푸르렀다.
산 아래로 흐르는 강은 푸른 산을 고스란히 껴안고 자신도 푸르게 물빛을 바꾸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은 다시 유등천을 걸었다. 금산군 월봉산 자락에 자리한 유등천 발원지부터 갑천으로 합류하는 마지막 지점까지 천을 곁에 두었다. 지난 5월 13일은 금산군을 벗어나 대전 도심을 흐르는 유등천을 따라 걸었다. 금산군 복수면 지량리 구만리 유원지부터 대전시 유천동 서부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약 10km를 걸었다.
구만리 유원지에 모인 회원들은 챙이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뜨거운 햇볕에 단단히 채비했다. 따뜻했던 볕이 어느새 뜨겁게 내리쬐며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구만리 유원지를 넓게 흐르는 유등천 물줄기를 보며 회원들은 저마다 낮은 탄성을 내뱉는다.
구만리 유원지를 크게 돌며 걷기를 시작했다. 시작과 동시에 회원들은 맨발을 드러냈다. 지난달 5월에는 천을 두어 번 건너야 한다는 이경호 국장의 예고를 생각보다 빨리 만난 것이다. 회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낮게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시원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두어 번 건너야 했을 천은 한 번으로 끝났다. 10년 전에는 없던 징검다리 덕분이었다.
“산에 하얀 꽃이 핀 것 같네. 정말 예쁘죠?”
회원 한 명이 멀리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뭇잎이 바람에 뒤집혀 은빛 뒤편을 내보인 것이다. 재잘거리던 회원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사락사락 시원한 소리를 냈다. 마치 파도 소리 같았다.
“산 오르는 사람은 많아도 천을 따라 걷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10년이 지나고 이렇게 또 유등천을 따라 걸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다시 걸으니 참 좋네요.
10년 전과 많이 바뀌었죠. 천도, 주변 환경도요. 예전엔 이렇게 이팝나무가 많지 않았어요. 최근에 유행하면서 새로 심은 것 같은데…. 돈을 많이 들인 것 같아요. 그게 좋은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그때보다 하천 정비가 많이 됐어요. 사람들이 하천의 중요성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함께 한 여덟 명 회원 중 10년 전 유등천을 걸었던 이는 딱 한 명 뿐이었다. 당시 하천해설사 1기로 유등천 종주에 함께한 김송자 회원이다. 그녀에게 10년 후를 또 묻자 ‘글쎄요.’라며 싱긋 웃는다.
금산군을 벗어나 대전시 침산동에 들어섰다. 대전청소년수련마을을 지나 평평한 아스팔트 길이 계속 이어졌다. 주변으로 송어양식장과 식당이 제법 많다. 식당들은 저마다 천 가까이 평상을 펴고 파라솔을 설치했다. 지적도를 봐야 알겠지만 아마 식당 소유지는 아닐 거라고 이경호 국장은 말했다.
천은 좁아지고 또 좁아지다가 잠시 풀숲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뿌리공원에 다다를 때쯤 다시 넓은 물길을 시원하게 드러내며 대전 도심을 향해 흘렀다.
“대전시 깃대종 중 하나인 감돌고기가 유등천 전 구간 중 뿌리공원을 흐르는 딱 이 구간에서만 살아요.”
이경호 국장이 이야기했다. 뿌리공원에서 짧은 점심 만찬을 즐기고 내려온 회원들은 공원 앞을 흐르는 잔잔한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공원을 지나고부터는 잘 정비한 하천변을 따라 걸었다. 그동안은 보기 힘들었던 자동차와 높은 건물, 사람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 왔다. 회원들은 천을 따라 다시 도심으로 돌아왔다.
안영교를 지나던 이경호 국장은 자연하천구간이었던 안영교와 복수교사이 2km 남짓 구간이 4대강 사업 때문에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제방만 설치한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고 말을 이었다.
제 몫을 충실히 한 유등천은 대전시 둔산동 삼천교에서 대전천을 먼저 만난 후 둔산대교에서 갑천으로 합류한다. 갑천은 대전 외곽을 흐르다 다시 금강으로 흘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