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4호] 유등천을 만나다1

10년이라는 시간은 묘한 울림을 담은 시간이다. 무엇인가를 다시 기념하기에 적당하다. 지난 2005년 대전환경운동연합이 진행한 유등천 종주 프로그램에 함께 했다. 월간 토마토가 아닌, 다른 매체에 있을 때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무엇인가를 다시 기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2015년 1월 14일, 환경운동연합 회원과 함께 유등천을 다시 찾았다. 안내는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국장이 맡았다.
“발원지는 길이나 폭, 수량 등 다양한 개념을 통해 정의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이 개념이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발원지를 결정할 때, 바라보는 측면에 따라 좀 다르지요. 유등천은 크게 충남 금산군에 월봉산과 인대산으로 나뉩니다. 갑천 합류지점에서 길이가 더 긴 곳은 월봉산이지만 건기에 물이 마르고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인대산 쪽은 샘이 솟고 수량도 풍부해 이곳을 발원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단 저희는 길이가 가장 긴 월봉산을 발원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대산과 월봉산, 두 곳이 유등천 발원지로 꼽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곳을 행정구역으로 보면 금산군 진산면 삼가리와 엄정리다. 두 마을은 경계를 맞대고 이웃한다. 월봉산에서 발원한 물길은 엄정리에서 출발해 삼가리를 거쳐 부암리를 지난 후 유등천에 합류한다.
금강 발원지인 뜬봉샘처럼 기념할 만한 무엇이 있는 곳은 아니다. 샘에서 물이 퐁퐁 샘솟는 것이 아니라 약한 물줄기가 흐르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러니 유등천 발원지를 찾아가 기념사진을 찍으며 번잡스럽게 굴 일은 아니다. 물씨를 품고 있는 산과 계곡, 나무와 바람 등을 넓게 바라보면 그만이다.
좁은 마을 길을 따라 월봉산으로 향하는 길, 삼가천은 길 오른쪽에 놓였다가 다시 왼쪽으로 그 흐름을 바꾼다. 길이 물줄기를 건너며 벌어지는 현상이다. 전체적으로는 길이 계곡 북쪽 사면에 붙어 있어, 날이 많이 풀렸음에도 두꺼운 빙판이 이어진다. 10년 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발원지 부근 마을 풍광이 많이 변한 것은 틀림없다. 10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팬션 건물이 여기저기 들어섰고 좁은 땅에 건물을 짓기 위해 터를 고르는 현장도 여러 곳이다. 계곡에는 평상이 몸을 뒤집은 채 배를 드러내놓고 누워 있다. 지난 여름 노곤한 몸을 쉬며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다. 평상 곁을 흐르는 물이 비현실적으로 맑아 평상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길가 곳곳에 붙어 있는 ‘평상 임대’라는 푯말은 냇물에 팽개쳐진 평상과 짝을 이룬다. 안전이라는 이유로 길과 계곡 사이에 쳐 놓은 철조망은 아무리 보아도 ‘안전’보다는 ‘사유’의 개념이 더욱 짙게 드러난다. 여름, 이곳 풍광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쨍하게 얼어붙어 콧속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가 더 아리다.
주택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벗어나면 계곡이 좁아졌다가 갑자기 넓어지며 제법 드넓은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곳이 덕정들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금산군 진산면 엄정리에 속한다. 그 들에서 북동쪽 고갯길을 넘어가면 엄정리 본마을이 나온다. 농토도 보이고 방치해 둬 습지로 변한 곳도 있다. 이 공간을 빙 둘러 길과 임도가 이어진다. 몇 가구 안 사는 곳이다. 최근에 지은 것처럼 보이는 펜션은 물가에 방갈로와 평상을 일렬로 늘어놓고 올 여름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올 겨울에 눈이 많아서인지 수량이 제법 많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은 손에 담아 마셔도 탈이 나지 않을 듯싶다.
마을을 완전히 벗어나 잠깐 하천을 따라 걷다가 흄관을 묻어 만든 다리를 만나고서는 할 수 없이 임도로 올라선다. 10년 전, 발원지를 찾아갈 때 끊임없이 계곡 물줄기 곁에서 걸었던 듯한데, 지금은 임도를 잘 닦아 두었다. 재해 예방 사업으로 돌과 콘크리트를 이용해 시설도 설치했다. 작은 소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다. 산에 불이라도 나면 진화용 용수를 공급할 요량인 듯싶다.
산 곳곳에 ‘장뇌삼’을 심었으니 함부로 들어가면 큰 일이 난다는 협박문구가 자주 보인다. 하도 많으니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소품처럼 풍경 속에 녹아들었다.
심드렁하게 푯말을 지나쳐 발원지 부근에 이르렀다. 예상했던 것처럼 산 7부 능선 즈음에서 산을 빙둘러 나가는 임도 근처에 이르자 졸졸 흐르던 물줄기는 그 모습을 바닥에 깔린 돌무더기 사이로 감춰 버린다. 10년 만에 이루어진 유등천 발원지와의 재회는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완벽한 고요함 속에 잠시 멍하는 열두봉재를 향해 올라가는 얇은 계곡선에 눈길을 둘 뿐이다.
발원지를 찾으며 걷는 동안 인적 드문 숲속에서 다양한 생명을 만났다. 사위질빵, 가시오가피, 엄나무, 참죽나무, 편백나무, 오동나무, 박새와 쇠박새, 어치, 굴뚝새까지.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로제타 식물 개망초까지. 유등천은 그들의 이야기를 품고 금산군 진산면과 복수면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을 지나 서구 삼천동에서 갑천에 흘러들어 금강 물줄기를 따라 서해 바다에 다다른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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