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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6호] 마을극장 봄과 함께 떠난 대구 오오극장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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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극장 봄은 처음부터 마을극장을 설립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만들었습니다. 대전아트시네마라는 공간 자체에 관한 위기가 피어오르는 지금이 어쩌면 협동조합 차원에서 마을극장을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탤 적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구에 시민이 기금을 모아서 만든 영화관이 생겼습니다. 오오극장이라는 단관극장인데, 삼삼다방을 함께 운영합니다. 우리 조합원과 함께 가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23일,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 총회가 열렸다.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은 설립 때부터 ‘마을극장’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날 총회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대전아트시네마의 폐관 위기와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의 존립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날 대전아트시네마 대표이자 마을극장 봄의 이사를 맡은 강민구 이사는 3월, 대구 오오극장 투어를 제안했다.
대구 오오극장은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이하 대구경북독협),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구지회(이하 대구 민예총), 미디어 핀다, 세 단체가 주축이 되고 대구 시민이 기금을 모아 마련한 독립영화극장이다. 어느 자본가나 기업의 투자로 만든 극장이 아니라 단체와 시민이 힘을 모아 마련한 극장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 3월 14일 오후 2시, 마을극장 봄 강민구 이사와 임재현 감사, 이병구 조합원, 이원표 운영위원과 이원표 운영위원의 두 자녀가 함께 대구 오오극장을 방문했다. 대구역에서 내려 이곳저곳 바라보며 느린 걸음으로 15분 정도 걷다 보면,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거리에 ‘55극장’ 간판이 보인다.
“지역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 함께 만드는 공공의 영화관, 로컬시네마, 함께 만드는 상영시간표, 시민제작자와 함께하는 영화관, 커뮤니티카페 삼삼다방, 취향의 공동체, 독립. 인디예술과 어울리는 영화관, 무한한 가능성의 자유로운 영화관, 어떻게 성장할지 알 수 없는 영화관”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이 소개하는 ‘오오극장의 열 가지 특별함’이다. 쉰다섯 개 좌석, 1에서 10까지 모두 더하면 나오는 숫자 55, 하나부터 열까지 좋은 극장, 오오극장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다.
“독립영화전용관 자체는 대구경북독협의 오랜 숙원사업이었기 때문에 죽 고민이 있었죠. 본격적으로 극장 설립을 추진한 건 2013년 말부터였습니다. 대구경북독협, 대구 민예총, 미디어 핀다, 세 단체가 함께 모여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를 지속했고, 장소를 마련했습니다. 극장을 운영할 만한 장소가 정해지고 난 후 독립영화전용관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 50여 명을 모았습니다. 그분들을 주축으로 세 단체가 힘을 합쳐 사람을 모았습니다.”
민간 미디어 단체인 미디어 핀다 대표이자 오오극장 권현준 프로그램 팀장의 이야기다. 2012년, 대구 민예총 주체로 개최한 ‘대구의 결핍 - 대구독립영화 인프라 관련 세미나’를 통해 대구독립영화전용관 설립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2014년 4월 대구 북서성로 근대 건축물 사업을 신청해 공간을 알아보았는데, 근대건축물에 영화관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설립이 좌절될 뻔했지만, 지난해 10월 오오극장과 어울리는 건물을 찾았다.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537, 대구 곽병원과 1922년 조선인 자본으로 최초로 설립한 영화관인 만경관 사이다.
“처음부터 민간에서 기금을 마련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지자체에서 투자를 받게 되면 공공시설의 성격을 띠게 되잖아요. 특히 요즘은 영화상영 프로그램에 관해 노골적으로 간섭하고요.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영화관이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많은 분이 힘을 써주셔서 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좌석 55개를 하나당 50만 원의 돈을 받고 판매했어요. 50만 원 기부해주신 분들에게는 좌석에 이름을 새겨드렸고요. 55분으로 제한을 두었는데, 60분 정도가 좌석을 사는 형태로 기부를 해주셨고요. 소액 모금도 받았어요.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은 이름을 새겨서 벽에 걸어두었어요. 극장을 설립하는 데는 총 2억 원 정도 들었어요. 기금 모금만으로는 힘든 금액이었고, 일단 주축이 된 세 단체에서 나누어 부담했죠.”
기부금을 받기도 하고, 좌석을 판매하는 형태로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물품을 기증받기도 했다. 고치면서 좌석을 교체하는 대형 극장에서 오오극장에 들어갈 극장 의자를 기부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기금을 마련하면서까지 영화관 설립을 추진했던 건 한 해 평균 제작되는 독립영화에 비해 독립영화를 상영할 만한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2014년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작 수를 기준으로 매년 만들어지는 독립영화는 천여 편에 달한다. 2015년 2월 27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4년 전국 극장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에 356개의 영화관이 있다. 그중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정한 독립영화, 예술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관은 총 49개다. 이중 대기업이 아닌 곳에서 운영하는 독립예술영화전용상영관은 29개다. 이들 대부분이 서울에 있다. 대전아트시네마, 동성아트홀, 안동중앙시네마,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광주극장, 거제아트시네마까지 7개다. 이중 거제아트시네마는 2014년 9월 폐관했고, 동성아트홀은 2015년 2월 폐관했으나 영화관을 그대로 운영하면서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 4월 재개관한다.
“대구에 동성아트홀이 있지만, 독립영화만을 상영하는 극장은 따로 없었어요. 모든 게 다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지역 청년들이 다 대구를 떠나는 거예요. 특히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젊은 친구들이 대구에 남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잖아요. 지원 정책도 많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배울 기회도 없고, 장소도 없으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거죠.”
독립영화전용상영관 오오극장과 예술영화전용상영관 동성아트홀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자리한다. 동성아트홀이 재개관하면 상영시간표나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서로 상생하는 방법을 찾을 계획이다.
오오극장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 관객을 먼저 맞이하는 건 삼삼다방이다. 영화 관람 전, 영화 관람 후 함께 온 이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조용히 혼자 앉아 영화상영을 기다릴 수도 있다. 영화 표를 판매하는 매표소와 커피숍을 함께 두었다. 영화만 보러 왔던 손님도 겸사겸사 커피 한 잔에 눈길을 둔다. 커피, 맥주, 와플 등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삼삼다방에서 판매하는 음식은 모두 극장에 갖고 들어갈 수 있다. 카페 앞 서가에는 영화잡지 키노, 대구 독립영화 관련 자료 등 영화에 관한 각종 자료가 놓여 있다. 카페 벽과 상영관 입구까지 벽을 따라 대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3월 진행한 전시는 «삼평리에, 평화를»이라는 전시다. 청도 송전탑 공사에 맞서 투쟁하는 청도 각북면 삼평리 주민들을 돕기 위한 후원 전시다. 오오극장이 공간을 후원하고,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가 전시를 기획했다.
“될 수 있으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했어요. 요즘은 예전처럼 엄숙하고, 치열하게 영화를 보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되도록 많은 관객이 찾고, 다양한 영화를 즐기도록 하는 게 저희 목적이에요. 그러려면 영화관 자체에 편안한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운영하는 데 그런 지침을 반영하려고 합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영화를 즐기도록 하는 것, 오오극장은 분위기를 잡고 무거운 얼굴로 독립영화를 봐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문턱을 낮추고,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친구들에게는 창작활동을 하는 데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게끔 자리하고 싶다.
“하루 5회 이상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국내독립영화 개봉작 50~60%, 지역에서 제작하는 영화 20~30%, 해외독립영화나 기획전 등으로 영화상영작을 꾸릴 계획입니다. 영화관 문턱을 낮추고, 대구 지역 영화나 여러 예술가가 함께 뭔가를 계속 꾸미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대구는 세 단체가 독립영화전용관이라는 목표 하나를 설정하고 끈기있게 달려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공간을 잘 꾸며 놓으니까 보기 좋더라고요. 공간에서 커뮤니티가 이루어지려면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위치도 괜찮은 것 같아요. 대전도 힘을 모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빨리 추진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넓은 방면으로 추진위원회를 꾸려서 빨리 목표를 설정하고, 영화관 설립에 관한 논의가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될 거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보다는 함께 가야 한다는 추진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함께 여행을 떠났던 이병구 조합원의 이야기다. 수많은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만, 우리가 아는 영화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걸리는 몇 편뿐이다. <다이빙 벨>, <천안함 프로젝트> 같은 영화를 마음 껏 볼 수 있는 극장이 대전에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