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8호] 지구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곳

일본식 난방기구인 코타츠는 한쪽으로 살짝 밀려 있다.
포구 쪽으로 난 좁은 베란다와 코타츠 사이에는 두툼한 이부자리가 깔렸다. 혼다여관 식당에서 주인 오리타 씨가 만든 해산물 안주를 맛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동생이 깔아둔 모양이다. 살짝 무게감이 느껴지는 이불을 덮자, 창밖으로 이오지마의 하늘이 보인다. 밤이 깊었지만 부연 하늘에는 구름자리가 선명하다. 달이 밝다. 그 아래로 미사키바시(다리) 상단부분이 보인다. 낮에, 흩뿌리는 비바람을 맞으며 섰던 그 다리다. 본 섬과 그 옆으로 살짝 떨어져 솟아난 ‘연인전망대’를 연결한다. 다리와 연인전망대에 서면 이오지마 동쪽과 남쪽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선박 접안 시설 안에 바다 빛깔은 노란색이 섞인 붉은색이다. 곁에서 보는 것보다 붉은색이 더욱 강렬하다.

연인전망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오오우라’라는 곳에 닿는다. 자연이 만든 수영장이다. 물에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사다리를 설치했다. 투박하다.

“미사키바시가 없을 때는 헤엄쳐 건너와 이곳에서 낚시도 하고 수영도 했어요. 저기 솟아오른 바위섬 밑으로 난 터널이 보이지요? 바깥 바다로 통하는. 그곳을 들락거리며 놀았죠.”

이오지마 안내를 맡은, 젬베 스쿨 교장 도쿠다 씨 설명이다. 바닷빛은 묘하고 물은 맑아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오오우라를 감싼 토양층은 어린시절 지리책에서 보았던 사진처럼 바다를 향해 그 단면을 드러냈다. 바다를 뚫고 나와 태양빛 아래 선 지 7,000여 년 밖에 되지 않은 토양은 여전히 풋풋하다. 검붉은 빛을 띠며 위아래로 휜 토양층과 그 아래로 쏟아져내린 암석 더미, 전혀 다른 빛깔의 하늘을 담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무척 낯설다.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 현실에서 닿을 수 없는, 과거 어느 시점에 당도한 느낌이다. 작은 섬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왜곡되었다.

절경을 바라보는 사이 비바람이 멎고 햇볕이 내리쬔다. 절벽과 삐죽 솟은 바위섬이 둘러싼 ‘오오우라’는 포근하다. 시간이 공간 안에 들어섰다가 나가지 못한 채 망설이며 잔 물결 위에 몸을 실었다. 다시 불기 시작한 바람이 머릿속을 관통해 달려간다.

깊은 잠에 들려면 창문을 닫아야 할텐데, 섬을 휘돌아 방안으로 들어온 바람이 서성여 창문을 닫을 수 없다.

안덕천황과 슌칸 승려

혼다여관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얼굴로 달려드는 공기가 무겁다.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다가 햇볕이 쨍하고 쏟아지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 듯했다. 우리나라에서 경험했던 4계절 중 어떤 계절의 아침과도 닮지 않았다. 아침 여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간, 마을은 고요했다. 대신 바람이 거셌다. 이오지마 포구 안에서 크게 물결치는 바닷빛은 어제 본 것보다 훨씬 더 탁하다. 마을에 하나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지나 미시마 소·중학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오지마 특산품인 동백나무가 가로수처럼 죽 늘어선 길이다. 이오지마 동백나무 열매와 기름은 제법 유명한 지역 특산품 중 하나다. 그 동백나무 사이로 작은 틈이 보이고 그 틈으로 진입로가 이어진다. ‘안덕천황(安德天皇)’ 묘소다. 안덕천황과 그를 시종한 부하를 안장한 곳이란다. 우리나라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도’를 닮은 석조물이 여기저기 놓였다.

‘천황’이라는 거창한 인물의 묘소를 이오지마라는 작은 섬에서 만날 것이란 상상은 하지 못했다. 전 날 저녁 어스름에 들어가 본 그곳은 젤라틴 성분으로 채워둔 것처럼 공기 밀도가 무척 높았다. ‘묘지’라는 공간 특성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 들어선 그 공간은 반대였다. 바깥 공기 밀도보다 훨씬 낮다. 지하수가 수돗물과 달리 여름철, 겨울철 시원하고 따뜻한 것처럼 말이다.

도쿠다 씨는 ‘야사’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사에서 안덕천황은 죽은 것으로 기록했는데, 사실 죽지 않고 이오지마에 들어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잘 살다가 죽어 이곳에 묻혔다는 전설이다. 그때 황실의 중요한 보물인  삼종신기(三鐘神器)도 함께 가지고 왔는데 이후에 모두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온다. 세 가지 보물은 쿠사나기의 칼, 야타의 거울, 야사카니의 굽은 구슬이다. 안덕천황(安德天皇  あんとくてんのう)은 1178년 12월 태어나 1185년 4월 사망한 것으로 정사는 기록한다. 왕위 쟁탈전에서 패배한 것이다. 그가 사망한 것은 단노우라(현 시모노세키시) 전투에서다.

안덕천황과 함께 이오지마와 관련이 있는 또다른 역사적 인물은 승려 슌칸이다. 그의 동상도 마을 한가운데 세웠다. 바다를 향해 오른팔을 뻗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를 취했다. 바짝 마른 촌로라 생각했는데, 젊은 승려다. 37살에 단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동상 옆에 세워 둔 비석에는 1177년 내란을 음모했다는 이유로 이곳에 유배를 왔고, 최고 권력자가 바뀌면서 다른 관련자는 모두 면죄받아 섬을 떠났는데 슌칸은 면죄받지 못하고 계속 섬에 남았다고 설명한다.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최근 연구를 통해 슌칸이 이오지마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동상을 세웠단다.

슌칸이 참여했다는 내란음모는 1177년 고시라카와 법황을 따르던 승려 몇몇이 음모를 꾸몄던 ‘시시가타니 사건’이다. 재미있는 건, 고시라카와 법황이 안덕천황을 몰아낸 핵심 인물이라는 점이다. 시시가타니에서 모의한 음모도 바로 안덕천황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였다. 슌칸의 동료가 유배지에서 풀려나게 된 것도 고시라카와가 권력을 잡은 이후다. 안덕천황의 묘지와 천황을 몰아낸 법황을 따르던 승려 슌칸의 동상이 한 섬에 존재하는 셈이다. 하나는 야사이며 하나는 정사라는 점이 다르지만 역사 속에 얽혀 있는 인물이 1,0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오지마라는 한 공간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안덕천황이 살았던 곳에 세웠다는 신사를 등 뒤에 두고 바다를 향해 애절한 표정으로 손을 뻗고 있는 슌칸의 동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는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도망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녹색 양탄자 길따라 슌칸당으로

안덕천황 묘소와 그가 살았던 터에 지었다는 신사(能野神社)가 모두 마을 가운데 있는 것과는 달리 슌칸이 머물렀다는 슌칸당(俊寬堂)은 마을에서 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곡기를 끊고 자결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섬 이곳저곳을 두루 연결하는 길을 따라가다 섬 북쪽으로 향한 길가에서 ‘슌칸당’으로 들어서는 길을 만난다.

이 길은 온통 큐슈대나무가 뒤덮은 조그만 오솔길이다. 사람 둘이 나란히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다. 그리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찾는 곳은 아닐 듯 싶은데, 길은 깔끔하게 잘 관리하고 있다. 가고시마현에서 마을 주민 중 관리인을 한 명 지정해 일정 보수를 주고 관리를 맡겼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느낌이 무척 푹신하다. 녹색 이끼가 두껍게 깔려 있다. 오랜 세월 자란 이끼가 생명을 다하면 다시 그 위에 이끼가 자라면서 점점 두터워진 모양이다. 진입로가 짧지 않다. 이른 아침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 딱 좋은 길이다. 그렇게 안으로 깊숙히 들어간 슌칸당은 비가 내리면 물이 제법 흐를 것처럼 보이는 조그만 계곡 옆에  놓였다. 빼꼼히 하늘만 보이는 작은 움막이다. 그렇게 초록색으로 방어막을 친 공간에서 슌칸 역시 풍경 중 한 요소로 자리했던 모양이다. 사람과 음식,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거부한 채 뼛속 깊이 스며드는 배신감에 열병을 앓았을 것이다.

40여 가구 남짓한 마을에는 소학교와 중학교는 물론이고 경찰 한 명이 상주하는 파출소와 우체국도 있다. 배가 들어올 때마다 그들을 볼 수 있다. 섬으로 들어오는 우편물을 내리고 육지로 보낼 우편물을 옮겨 싣는 우체국 직원과, 낯선 이를 꼼꼼하게 살피는 배 나온 경찰관 아저씨가 섬에 생동감을 더한다.

옛날 집터나 텃밭이었을 듯 싶은 오래 묵은 공터,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곁에는 어김없이 류큐대나무와 가주마루(がじゅまる)가 빼곡하다. 류큐대나무는 우리나라와 약간 생김이 다를 뿐인데 가주마루는 독특하다. 열대, 아열대에 분포하는 뽕나뭇과의 상록 교목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뽕나무와는 많이 다르다. 가지가 길게 뻗어 통통하게 살이 오르다가 그 무게가 힘들면 가지 밑으로 다시 뿌리가 내려가 땅에 박힌다.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뿌리를 내린 곳에 따라 다양한 모양새를 보인다. 현무암에 올려 두어 분재로 만든 가주마루는 크기는 작지만 역시 강한 생명력을 보이며 바위에 뿌리를 내린 채 산다. 이곳 섬 사람들의 삶과 가주마루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이오지마에는 화산섬답게 온천도 곳곳에 있다. 산 중턱에는 삽으로 직접 땅을 파면 따뜻한 물이 퐁퐁 올라오는 자력갱생형 온천도 흥미롭지만, 바다를 마주한 노천 온천은 원시 지구가 선물한 소중한 선물이다.

이오지마를 찾는 사람이 이용하는 온천은 주로 ‘동온천(東溫泉)’이다. 해저에 용암이 들끓는 부분과 지표면이 가까워 물이 적당히 따뜻하다. 주변에 돌을 이용해 흐르는 온천수를 가둔 형태다. 한쪽에 탈의실도 만들었지만 부숴졌다. 흔한 일이다. 태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온천을 가둔 돌도 흩어지기 일쑤다.

“작년에 태풍이 몰아쳤을 때 온천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는 거예요. 주민이 모여 걱정을 했지요. 저 바위를 어떻게 옮길지 방법을 찾기가 어려운 거예요. 근데 조금 있다가 또 한 번 태풍이 몰아쳤는데 바위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더라고요.”
그곳에 몸을 담그면 이오지마 동쪽 바다가 한눈에 잡힌다. 화산암과 온천수, 벌거벗은 몸뚱이가 어우러져 다시 한 번 왜곡된 시간을 경험한다.

사람 100명, 흑소 200마리, 공작 300마리

이오지마에서 가장 높은 해발 703.7m인 이오산은 여전히 연기를 뿜어내는 활화산이기 때문에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여기서 나오는 아황산가스가 종종 농작물에 피해를 줄 정도니 사람이 함부로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다. 이 통제 구역을 빼면 작은 화산섬 이오지마는 걸어서 섬 전체를 둘러보는 데 하루면 충분하다. 자동차와 자전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마을을 벗어나 산 중턱으로 올라 섬을 탐방하다보면 류큐대나무가 정말 많이 보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성장과 번식이 왕성해서인지 섬 전체를 덮었다. 이오지마 절대 우점종인 류큐대나무를 먹고 자라는 가축이 바로 흑소다. 섬 서쪽에 이 흑소를 키우는 목장이 있다. 마을에 있는 대나무가 제법 크게 자라는 것과 달리 목장 안에서 자라는 대나무는 거의 밑둥만 남아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 섬에 있는 흑소는 대략 200마리 정도다. 도축 시설이 섬 안에 있을 턱이 없으니 흑소는 모두 가고시마현으로 출하한다. 그곳에서 가고시마현 특산품으로 팔린다. 흑소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공작이다. 처음에 후다닥 뛰어가는 것을 보고는 꿩인 줄 알았다. 공작이 이렇게 많이 번식한 데는 조금 아픈 사연이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이 조그만 섬에 1천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살 수 있었던 산업 동력은 유황 광산이었다.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인 채굴을 시작한 유황광산은 결국 1954년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폐광한다. 지금도 이오산 통제구역 안에는 당시 사용했던 중장비 중 철수하지 않은 일부가 남아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이후 1970년대 일본의 버블경기 때 ‘야마하’라는 일본 회사가 이곳에서 관광산업을 벌인다. 600m 활주로를 갖춘 비행장과 함께 리조트 호텔을 개장하지만 버블경기가 붕괴하면서 1980년대 초 문을 닫는다. 현재 리조트 호텔이 있던 자리에는 가고시마현 교육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수련시설이 들어섰고 비행장 활주로는 촌에서 계속 운영한다. 공작은 리조트 호텔을 지을 때쯤 이오지마에 들어왔다. 리조트 호텔을 찾는 관광객이 볼 수 있는 소소한 관람용 동물로 키운 것이다. 호텔이 문을 닫으면서 공작을 챙기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문을 닫는 그 혼란한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공작이 야생으로 뛰쳐나가 번식했다. 번식력이 참 대단하다.

“섬에 공작 말고도 다른 새가 있었는데, 그 새는 제법 맛이 있어서 주민이 다 잡아 먹었어요. 근데 공작은 별로 맛이 없었나봐요. 아무도 잡아 먹지 않았지요. 지금은 농작물에 끼치는 피해가 있어서 모두 없애야 한다는 주민도 있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민도 있어요. 주장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여하튼 공작은 섬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지요. 아마 300마리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어요.”

도쿠다 씨 설명이다. 실제로 이오지마 관광안내도에는 화려한 꼬리를 활짝 편 공작을 그려 넣었다. 논란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오지마의 관광자원으로 여기는 건 분명하다.

풋풋한 지구 속내를 드러낸 섬, 이오지마에는 사람 100명, 흑소 200마리, 공작 300마리가 산다.

 

 

이오지마
여행 TIP
01. 배를 타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

✽ 이오지마 섬으로 들어가려면 가고시마시에 있는 가고시마 여객 터미널로 가야 합니다. 혹시 이동수단으로 렌터카를 선택하셨다면,
“099-226-0731 미시마 터미널”로 검색해서 찾아가시면 됩니다.

✽ 렌터카를 반납하는 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근처에 도요타 렌트카 이즈로점이 있거든요. 차를 반납하고 걸어서 여객 터미널까지 10분 정도 걸려요.

✽ 배는 성인 왕복 7,200엔입니다. 시즌에 따라 배 운항 날짜와 시간이 다르니 꼭 미리 확인하고 가셔야 합니다.

✽ 배를 타고 세 시간 여를 달리면 이오지마 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겹칠 때에는 배에 탑승하기 전에 도시락을 사놓는 게 좋아요. 배 안에 매점이 있긴 하지만 도시락은 취급하지 않거든요. 도시락은 여객 터미널 근처 ‘돌핀포트’ 안 편의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 배 안에는 라면 자판기가 있습니다. 컵라면 먹는 법은 다 아시죠? 자판기에서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컵라면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됩니다.

✽ 배 안에 아이스크림 자판기도 있고, 간식 살 만한 곳은 충분해요. 무겁게 들고 타지 않으셔도 좋아요.

✽ 이오지마에 도착하기 전에 다케시마에 한 번 멈춥니다. 이오지마는 배가 두 번째로 멈추는 곳이니 다케시마에서 내리면 안 돼요.
독도의 일본명인 다케시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이름만 같을 뿐이에요. 일본어로 ‘다케’는 대나무라는 뜻이고요. ‘시마’는 섬이라는 뜻이에요. 한국말로 하면 ‘죽섬’이 되겠지요. 대나무가 많이 나는 섬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02. 이오지마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 이오지마에는 일본 전통 숙박시설인 료칸이 네 곳 있습니다. 우리는 이오지마 출신인 도쿠다 씨에게 추천 받은 다나카 료칸에서 묵었습니다. 항구 근처에 있고요. 1박에 8,000엔입니다. 카드가 되지 않아 현금으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  이오지마 섬의 종합복지시설인 미시마발전종합센터에는 관광안내소와 보건소 시설이 있습니다. 또 대중 목욕탕도 있습니다.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무료로 목욕할 수 있어요. 옛날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작은 목욕탕인데요. 섬 사람들이 무료로 개방하는 날에는 목욕하러 하나둘, 보건소로 와요.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목욕하는…. 부끄럽지만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입니다. 2층에는 이오지마의 화산지역 자료관이 있습니다. 이오지마 섬의 화산과 황토색 바다를 연구하고, 정리한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이오지마 섬에 가면 꼭 들러보세요.

✽ 섬에는 생필품을 파는 작은 슈퍼가 하나 있어요. 우리나라 작은 시골마을 가게를 생각하면 됩니다. 과자와 술, 음료, 식재료 등을 판매합니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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