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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4호] 대전 루나헤어 2호점 '오뉴월 갤러리'
대전 중구 은행동 맥도날드 건물 3층, 포털사이트에 루나헤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설명이다. 워낙 미용실이 많은 길이라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곳에 6개월 전부터 ‘오뉴월(Oh! New wall)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오뉴월(Oh! New wall)은 매번 새로운 벽을 만들겠다는 의미와 오뉴월 봄처럼 신선한 벽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미용실 옆,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미용실 안 벽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로 만들었다. 매달 전시를 기획해 작품을 건다. 원래 이 벽은 헤어스타일을 보여주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10m 남짓한 벽에 올록볼록 기둥이 튀어나와 있었다. 계속 전시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하얀 벽과 조명을 설치했다. 매달 다른 전시를 하기 위해 그곳의 이름을 ‘오뉴월 갤러리’로 붙였다.
“일리아 갤러리를 운영하는 강혁 작가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이에요. 사실 제게도 그림은 낯선 장르였어요.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보는 경험이 일반적이지는 않잖아요. 강혁 작가를 만났는데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루나헤어 이보연 대표에게 그림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마음의 울림을 주는 예술이었다. 갤러리를 만들고, 작품을 걸기 전까지도 그랬다. 오뉴월 갤러리의 첫 전시는 전시 기획을 맡은 강혁 작가의 개인전이었다. 작품을 보면서 조금씩 호기심이 생겼다. 찬찬히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이 작품은 ‘왜’ 이렇게 그렸을까, 작가는 이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이 작품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나씩 더했다. 그러다 보니 그것들은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라 마음에 파문을 주는 ‘작품’이었다.
“처음 갤러리를 만들려했던 가장 큰 이유는 고객 서비스 차원이었어요. 미용실에 와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품격 있는 서비스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는 이유였죠. 그림을 보다 보니까 저 자신부터 생각이 변하더라고요. 미용한 지 20년이 넘었고, 루나헤어를 운영한 지는 햇수로 5년 차예요. 여기까지 오면서 받은 것을 하나씩 돌려줘야 한다고 여겼어요. 저 혼자 잘나서 이룬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욕심만 가득했는데 요즘엔 조금씩 뒤돌아보게 돼요.”
오뉴월 갤러리 전시를 기획하는 강혁 작가에게 이보연 대표가 요구한 것은 ‘고객이 보기에 거부감이 들 정도로 비싸지 않은 작품’이다. 오뉴월 갤러리에서는 작품 판매 수수료도 붙이지 않는다. 전시할 때마다 이보연 대표가 한 점씩 작품을 사들인다. 나중에는 소장전을 여는 게 이 대표의 소망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어요. 상업 갤러리처럼 많이 팔리는 건 아니지만, 가끔 고객들이 사고, 저희 직원들도 마음에 드는 작품은 구매하더라고요. 작지만 이런 변화가 환경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고 여겼어요. 제게도 도움이 되죠. 사물을 관찰하고, 집중해서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루나헤어 이보연 대표
지난 1월엔 손미 시인의 사진전이 열렸다. 미용실에 온 손님 중 전시에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전시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제각기지만, 가장 큰 변화는 미용실에 갤러리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의 태도다. 매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미용실을 찾는 단골인 경우 일단 관심을 두게 되면, 올 때마다 바뀌는 전시에 흥미를 느낀다.
지정된 자리에 앉아 분주한 손길에 머리를 맡긴다. 드라이기 돌아가는 소리, 음악 소리, 또각또각 구두 소리 등 각종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누군가의 손길에 머리를 맡기기만 하면 되는데, 어쩐지 멍하게 앉아만 있는 게 멋쩍어 이것저것 손에 집어 본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기도 하는 데 오래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자리에 멍하니 앉아 거울을 바라보다가 거울 뒤편에서, 혹은 앉은 자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걸린 그림을 본다. 무심히 지나가다가 올 때마다 바뀌는 그림에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지난 1월, 두피에 영양을 공급하는 크리닉을 받으러 미용실에 방문했다는 이아름 씨의 이야기다.
“두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와요. 미용실에 있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긴 시간인데, 그동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뭔가 집중해서 처리할 수도 없고, 시간을 보내기 모호한 곳이에요. 처음엔 저도 그냥 ‘벽’에 걸린 장식으로 알았는데, 올 때마다 바뀌더라고요. 물어보니까 전시라고 해서 재미있었어요. 기다리면서 조금만 움직이면 볼 수 있고, 이런 데서 전시를 본다는 게 색다른 경험이기도 하고요.”
오뉴월 갤러리는 친근하다. 한 번도 그림을 보러 가보지 않은 사람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일반 갤러리나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루나헤어 2호점 방금식 원장 역시 그전까지는 한 번도 미술관에 가본 일이 없었다.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가족과 함께 시립미술관도 가보고, 조금씩 재미를 붙이는 것 같아요. 전시하면서 처음 그림을 사봤어요. 그렇게 비싼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림을 사는 것 자체만으로 뿌듯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바른 소비를 했다는 생각도 들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랄까요?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이 우리 갤러리를 통해 미술을 접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