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6호]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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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동부창고34>_고정원 / <침묵의 비명>_이자연 / <13달인 어느 해에>_이도
   
 

세찬 비가 하늘을 쓸어 담았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에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은 부서진 창고 틈에서 새는 빗방울이다. 그곳은 떨어지는 빗방울도 기록으로 여긴다.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동부창고에서 ‘지금’의 동부창고를 기록하는 전시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이 열렸다.

  

“문화는 착상의 과정이 까다로운 생명체입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고 나면, 자연의 순리처럼 또 용수철처럼 나선을 그으면서 진화를 하기도 합니다.”

-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 기획의도 중

   

“오늘 같은 날에만 볼 수 있는 작품이죠.”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둔 깡통을 바라보며,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재생사업 담당 조송주 씨가 이야기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청주시,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이 주관한 이 전시는 옛 청주연초제조공장에서 담뱃잎을 보관하던 동부창고에서 열렸다. 입구에 설치한 간판은 고정원 작가의 작품, <동부창고 34>다. 시원하게 쏟아내는 빗물에 창고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푹 젖은 창고 안으로 들어가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그곳의 본래 주인인 비둘기였다.

2004년 문을 닫은 후부터 이곳은 비둘기의 서식처였다. 전시를 준비하려고 들어갔을 때 곳곳에 비둘기의 흔적이 있었다. 하늘 위 천장을 날아다니며, 제 영역임을 알렸다. 비둘기 덕분에 가장 먼저 본 작품이 이자연 작가의 <침묵의 비명>이었다.

이자연 작가는 동부창고 천장에 작품을 설치했다. 부엉이, 고양이, 작은 새가 목조 트러스 방식으로 지은 천장에 하나씩 자리했다. 동부창고는 붉은 벽돌과 금강송을 이용한 목조 트러스 지붕구조다. 담뱃잎에서 나오는 진 때문에 다른 어떤 목조 트러스 건축물보다 보존이 잘 되어 있다는 게 조송주 씨의 설명이다. 이자연 작가는 얼기설기 규칙적으로 배열한 나무 위에 하얀 플라스틱으로 작은 새와 고양이, 부엉이 등을 만들어 설치했다.

“바닥에 떨어진 애들은 대부분 비둘기 때문에 떨어진 거예요. 처음엔 얘들이 제 영역이라고 텃세를 부리는가 싶었는데, 얘네가 항상 다니는 길이 있었던 거예요. 항상 그 길로 다녔는데 작품을 설치해버리니까 부딪혔던 거죠. 설치하고 처음 한 3일 정도는 천장에서 작품이 떨어졌는데, 3일이 지나니까 더는 떨어지지 않는 걸 보고 생각한 거죠. 비둘기 길이 있었던 거구나. 3일 정도 지나니까 비둘기와 추돌사고로 작품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어요.”

“엄격한 아버지 같은 거칠고 야성적인 동부창고는 어쩌면 개방을 두려워하는 소박한 평야이고 외부와의 단절을 고수하려는 힘을 내재한 음과 양, 그리고 네거티브와 포지티브를 동시에 가진 다분히 중성적인 공간이라고 해석해 봅니다.”

-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 기획의도 중

    

동부창고가 위치한 옛 청주연초제조공장(이하 연초제조창)은 1946년 11월 1일 경성전매국 청주연초공장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1953년 서울지방전매청 청주공장으로 승격하고, 제조공장이 나날이 커졌다. 공장이 커지면서 창고를 하나씩 지었던 모양이다. 공장 주변에 남은 창고 일곱 개 동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하나씩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연초제조창은 청주 근대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했다. 솔, 라일락, 장미 등 연간 100억 개비의 내수용 담배를 생산하며, 17개국에 수출했다. 한때 종사자만 3천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변변한 제조시설이 없던 1960~1970년대에는 핵심 산업시설로, 연초제조창 월급날이면 청주 시내가 들썩였다고 한다. 담배 찌든 냄새가 온 도시에 퍼져 나갔고, 공장 주변 동네에서는 빨래를 말리다 보면 담배 증기에 누렇게 옷감이 변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 시절이 흐르고, 공장도 어려움을 겪었다. 1999년 담배원료공장을 폐쇄하면서 KT&G는 이곳을 과자 공장, 소파 공장 등에 임대를 주었다. 그리고 2004년 제조공장이 완전히 문을 닫으면서 공장 터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한 골칫거리로 남았다.

덩그러니 놓인, 이 터를 두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산업단지를 만들어야 한다, 영화세트장을 조성해야 한다는 둥, 한 시대 미련없이 써버린 이곳은 그저 골칫거리일 뿐이었다. 계획 중 일부는 기본설계 수준까지 진행되었으나 모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후 연초제조창의 활용방안은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의 단골 주제로 자리 잡았다. 순식간에 사람이 빠져나간 곳에서 느껴지는 헛헛함과, 그로 인해 주변에까지 스며드는 가라앉는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시민이 어서 이곳이 어떻게든 채워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길 바랐다.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청주시 역시 해결하고 싶은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 KT&G와 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청주시가 350억 원을 들여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본격적으로 이곳이 문화공간으로 주목받은 건 2011년부터다. 9월 21일부터 10월 30일까지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이하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열렸다. 65개국에서 3천2백여 명의 작가가 참가했으며, 40여 일간 42만 명의 관객이 찾았다. 당시 청주공예비엔날레를 다룬 기사를 찾아보면 “세계 여러 나라의 미술전문가들 역시 담배공장을 비엔날레 행사장으로 활용한 것에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국토해양부가 연초제조창을 2011 최우수 공공 건축대상으로 선정했다.”라고 전한다.

    

(위쪽부터) <덧없음....일시적 풍경 series>_유현민 / <공기채집>_복기형
    

“그래서 민들레와 같은 기획을 하려고 합니다. 민들레는 제 스스로 씨를 뿌립니다. 거창한 비행보다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작고 부드러운 연착륙으로 동부창고를 아프지 않게 했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씨는 뿌리되 평야를 개간하고 경작하는 일은 서두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 기획의도 중

        

청주공예비엔날레를 통해 많은 사람이 이곳의 쓰임을 ‘문화’로 다시 생각했다. 청주공예비엔날레 이후 2012년 1월,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까지 이곳 연초제조창에 ‘국립현대미술관 국립미술품 수장, 보존센터(가칭)’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이후 추진이 지연되어 건립계획은 2016년까지로 미루어졌지만, 어쨌든 그 일대가 ‘문화로 재생’되어야 할 명목이 마련된 것이다. 이후 청주시는 문화재생사업에 많은 우수사례를 남겼다. 상당구 중앙동이 도시재생 선도 지역으로 지정되어 전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가 하면,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를 기획한 653예술상회의 이종현 대표와 같은 지역 예술인이 주축이 되어 도시에서는 꾸물꾸물 작은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동부창고도 빛을 보게 된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2014 산업단지 및 폐 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예술로 공간 재창조’ 사업에 선정되어 일곱 개 동 중 34동과 35동, 두 동이 문화예술체험 공간 및 창작활동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동부창고 34동은 문화예술플랫폼으로 고칠 예정이고, 동부창고 35동은 공연예술종합연습공간으로 변화할 예정이다.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은 문화예술플랫폼으로 탈바꿈하기 전 동부창고의 문화재생서식처로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반짝 전시다. 전시 기획자인 653예술상회 이종현 대표는 전시기획의도에 “문화재생의 서식처로 성장해 나갈 동부창고34에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리는 파종기를 맞이한 지금 어떻게 씨앗을 뿌려야 하는지 전시 기획자로서 깊이 생각해봅니다.”라고 밝힌다.

“두 개 동은 겨우 지켰지만, 최근 청주시가 이 주변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해서 개발할 예정이라고 해요. 민간자본을 유치해서 대기업 유통시설을 세우고, 동부창고 뒤 공터에 행복주택을 건립하겠다는 거예요. 청주시 많은 단체와 상인단체가 반대하기 때문에 주춤하긴 하지만, 국토부에 승인되면 막을 수 없는 노릇이거든요. 여길 그렇게 바꾸면 안 돼요. 지금 남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자원이 되는 데요. 그대로 살리면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뭔가 자꾸 하게끔 해야 해요. 멀리 보면 그게 더 도시의 이익이 될 거예요.”

    

행복주택 건립을 논의하고 있는 동부창고 뒤 공터, 제빵왕 김탁구 촬영장으로 유명세를 타던 시절 설치한 놀이기구가 쓰임을 다한 채 쓸쓸하게 비를 맞는다.

   

조송주 씨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청주시는 지난 3월, 연초제조창 인근 지역의 ‘도시재생 선도지역 활성화 계획’을 수립해 국토교통부에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초제조창 일원 4만㎡를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해 개발할 예정이다. 충북청주경실련, 성안길 상가번영회, 충북민예총 등 많은 단체가 청주시의 연초제조창 도시재생 선도지역 활성화 계획을 전면 재검토 할 것을 요구했다.

    

“2011년 동부창고 주변의 콘크리트 바닥에서 피어있는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수줍은 모양으로 자신의 몸 크기와 맞먹는 뿌리를 내렸는지 그러면서도 목화 솜 같은 모양으로 100개 이상의 씨앗을 공중으로 날려 보냅니다. 그들이 안착하는 곳은 어디든 손가락보다도 작은 땅이면 족합니다. 문화예술이 민들레를 닮았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참여 작가들 한 명 한 명이 하얗고 가벼운 민들레 홀씨가 되었으면 합니다.”

-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 기획의도 중

      

공간의 가치를 ‘쓰임’의 가능성으로만 판단하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동부창고에서 창고 그 자체를 기록한 작가들은 동부창고를, 세상이 말하는 쓰임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동부창고 아카이빙>과 <순환하는 도시-도시의 재생>이라는 작품을 설치한 여상희 작가는 동부창고에서 날지 못하는 새끼 비둘기를 만났다. 비둘기는 다리에 엉킨 끈 때문에 날지 못했고, 여상희 작가는 비둘기의 다리에 묶인 끈을 풀어줬다. 그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또 창고 곳곳에서 만난 비둘기의 털, 비둘기가 부화했을 것으로 보이는 알껍데기 등을 모아 함께 두었다. 2004년부터 그곳에서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비둘기들의 흔적, 그 자체가 동부창고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을 <동부창고 아카이빙>이라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복기형 작가는 창고를 가득 채운 공기를 모으는 ‘채집기’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공기로 공간을 기억하는 작품 <공기채집>이다. 작가는 일상적으로 그곳에 있지만, 누구도 그 쓰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공기를 모아 공간을 남겼다.

3일 동안 창고를 샅샅이 살피던 유현민 작가는 네 점의 사진을 남겼다. 그의 작품에는 <덧없음…. 일시적 풍경 series>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고가 보여주는 일상적 풍경이 아닌 창고의 한 부분, 한순간을 생경한 풍경으로 담았다.

    

(시계방향으로) <순환하는 도시 - 도시의 재생>_여상희 / <채집적 구성2>_이소 / <노동>_민병동 / <의미의 유령들>_김기성 

   

세모 모양 프레임으로 바닥의 먼지를 공간의 기억으로 남긴 이도 작가는 <13달인 어느 해에>라는 작품으로 먼지를 기록했다. 1970~1980년대에 출판된 백과사전에서 발췌한 1만 8천여 이미지를 교차해 보여주는 김기성 작가의 <의미의 유령들>은 과거 호황기를 누리던 이곳을 어떤 의미로 남길 것인가에 관해 고민하게 한다. 민병동 작가의 <노동>은 동부창고에서 읽은 수많은 노동의 흔적을 거미집으로 표현했다. 작가가 직접 풀로 하나하나 만든 거미집은 견고하게 쌓여 동부창고의 또 다른 노동의 흔적으로 남았다. 정유진 작가는 동부창고가 가진 한을 풀어내는 <108배>와 <삼도천>을 설치했으며, 성정원 작가는 라는 작품으로 이 공간에서 고민할 수 있는 키워드를 낱말로 뽑아 유리 상자에 담았다. 별, 길, 하늘, 땅, 시작, 끝 등의 낱말이 작가가 뽑은 키워드였다. 누군가는 하나씩 키워드를 뽑고, 누군가는 공간의 모든 ‘물건’을 채집했다. 이소 작가는 이곳에서 발견한 사소한 물건 하나까지 모두 모아 <채집적 구성2-동부창고34>라는 작품으로 승화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수많은 것이, 쓰임을 다했다고 여겨져 방치된 무언가가 모두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동부창고 전체와 전시가 어우러져 금방 쓰고, 금방 버리는 문화가 자리 잡은 세상이 두려워졌다.

“전시에 참여한 열세 명의 작가 말고도 청주 한 방송사에 다니는 PD가 이곳을 기록한 작품을 기증해주셨어요. 설치되기 전 비둘기의 소리를 녹음한 거예요. 그 PD가 이 소리를 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신 역시 문화재생으로 이 공간이 지켜지길 바란다는 거예요. 때가 되면 결국 자기도 행동할 건데, 그전까지는 작가들이 예술로 이 공간을 풍요롭게 해줬으면 한다는 말이었어요.”

조송주 씨는 그 PD의 이야기를 전하며 덧붙였다.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다음 세대를 위해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우리가 낡아서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 모두가 어쩌면 다음 세대에게는 아파트보다는 훨씬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쓰고 버리는 것, 낡아서 못 쓰겠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그것 역시 새것이라는 강박, 그 프레임 안에 우리가 갇혀 있는 건 아니었을까. 버려질 모든 것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 《문화재생서식처 동부창고34》에서 그 마음을 느꼈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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