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8호] 날숨에 두 걸음, 들숨에 두 걸음

대전충남녹색연합 녹색생태투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전충남녹색연합
녹색생태투어에 월간토마토가 동행합니다.
녹색생태투어는 도심을 벗어나
생태감수성을 살리고, 미래세대에 물려줄
자연의 생태적 가치를 일깨우는
생태체험교육프로그램입니다.
지난 5월 2일은 2015년 첫 번째 녹색생태투어로
가야산 내포문화숲길로 떠났습니다.

“충청도에서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에 가야산이 있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함께 내포(內浦)라 한다. 지세(地勢)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壬辰)과 병자(丙子)의 두 차례 난리에도 여기에는 미치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다. 또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이 많다.” (이중환의 『택리지』 중)
낯선 장소에 처음 도착하면 훅 하고 와 닿는 최초의 느낌이 있다. 대전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가량을 달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느낀 건 ‘여유’였다. 양옆으로 펼쳐진 푸른 논밭, 상가리를 낮게 빙 에워싸고 있는 가야산 자락이 만드는 풍경에 안온함마저 느껴졌다. 이 날은 내포문화숲길 4코스 중 일부를 걷기로 했다. (사)내포문화숲길 예산방문자센터가 있는 상가리마을이 그 출발점이다.

넉넉한 가야산의 숨결 느끼다

어디가 시작이랄 것도, 경계랄 것도 없었다. 바삭한 햇볕을 쬐며 마을을 걷다보니 숲의 초입에 들어서 있었고, 풀 냄새를 맡고 맛보며 어슬렁어슬렁 걷다보니 산길이었다. 견디며 오르는 등산이 아니라 느긋하게 숨 쉬며 걷는 숲길을 와 본 적이 있었던가. 내포문화숲길을 걸으며 드는 생각이었다. 걸음걸음에 머릿속도 조금씩 개운해졌다.

내포문화숲길은 내포 지역 중에서도 가야산 주변의 네 개 시군인 서산, 당진, 홍성, 예산의 옛길과 마을길, 숲길과 임도, 들길, 하천길을 이은 충남에서 가장 긴 트레일이다. 총 320km의 길로 국내에서는 세 번째로 길다. 2006년 가야산지키기시민연대 활동으로부터 비롯해 그동안 가야산 둘레길 역사자원, 문화유적, 자연생태자원 조사가 이뤄졌고, 2013년까지 내포문화숲길 전 구간을 네 개의 테마길로 조성했다. 백제부흥군길, 원효깨달음길, 내포천주교순례길, 내포역사인물동학길 등이다. 내포문화숲길은 단순한 숲길이 아니라 ‘내포지역이 지닌 역사, 문화, 생태적 가치를 바탕으로 지금의 우리네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나눔과 성찰의 순례길’이다.

(사)내포문화숲길 이지훈 국장은 “조사 과정 중에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서 옛길을 복원하기도 했다. 내포문화숲길은 지역, 사회, 역사적 자원을 활용해 숲길을 조성하고 활력을 불어넣은 현장”이라며 내포문화숲길을 설명했다. 

이 날 함께 걸을 코스는 원효깨달음길에 속한 4코스 중 일부 구간이었다. 남연군묘~단풍나무숲길~돌탑~잣나무 쉼터~상가리미륵불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넉넉한 가야산의 숨결을 잠시나마 느꼈다. 

그래서 저는 가야산이 참 좋습니다

예산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해 마을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논밭과 숲은 눈부시게 연둣빛을 띄었다. 보송보송한 햇볕이 뺨을 쬐면 그 자리를 살랑살랑 바람이 훑고 지났다. 운 좋게도 맑은 날씨다. 밭을 매고 있는 마을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도 건네며 15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지금은 남연군묘(충남기념물 제80호)가 있는 옛 가야사지다. 봉분이 자리한 거대한 푸른 언덕은 새파란 하늘과 맞닿아 그림과 같은 경치를 만들었다. 언덕을 따라 나선형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풍경은 절로 탄성을 지르게 했다.

그러나 여행자에게는 얼핏 아름답게만 보이는 풍경 너머에는 곱씹어보아야 할 씁쓸한 역사가 있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야욕을 품었던 흥선대원군이 어느 날 한 지관에게 명당자리를 알아볼 것을 부탁했고, 지관이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왕이 나는 자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곳은 가야사가 있는 자리였는데, 명당자리에는 금탑이 서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가야산 뒤쪽 산기슭에 임시로 옮긴 뒤, 이후 가야사를 불지르고 탑을 헐어 남연군의 묘를 옮겼다.

“여기를 명당자리라 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우의정, 왼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좌의정으로 비유해 이 터를 기준으로 주변 산세가 이곳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남연군의 묘를 옮긴 후, 결국 고종과 순종이 2대에 걸쳐 왕이 됐지만 이를 마지막으로 조선이 망했으니 여러 생각이 듭니다.”

이지훈 국장은 남연군묘 앞에 서서 망이·망소이의 난, 동학혁명 때, 최초로 빨치산이 활동했던 사실 등 가야산에 얽힌 민중봉기의 역사를 들려줬다.

“부당한 권력에 대항해 늘 도망치고 싸웠던, 그러다가 늘 패했던 사람들의 역사가, 혼이 서린 곳이 바로 가야산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야산이 참 좋습니다.”

시어서 시엉일까

남연군묘를 내려와 푸르른 밀밭이 너르게 펼쳐진 마을길을 지나, 비로소 숲길로 들어섰다. 봄의 중턱에 들어섰음을 여실히 보여주듯 길 양옆으로는 무성하게 자란 수풀과 나무가 가득하다. 평소라면 앞만 보며 오르고 또 올랐을 텐데, 참가자들은 우연히 눈에 닿고, 손에 닿는 이름 모를 풀, 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덕분에 으름덩굴이며 찔레나무 같은 식물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따라 불러본다.

“찔레나무는 줄기를 먹을 수 있어요. 우리는 어릴 때 많이 먹었는데, 단맛이 나요.”

한 아주머니의 말에 건네받은 찔레나무 줄기를 씹었다. 달큼하고 시원한 맛이 신기해 괜스레 호들갑을 떨었다. 식물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대전 경실련 이현호 사무국장의 안내에 따라 살아있는 식물공부가 계속됐다. 이현호 국장의 손짓에 작은 풀꽃 이름도 놓칠세라 눈동자가 분주해졌다.

“이건 시엉이라는 건데, 줄기를 씹으면 시큼해서 입에 금방 침이 고여요. 그래서 산을 오르다 목이 마르면 사람들이 이걸 씹곤 했어요.”

나눠받은 줄기를 아삭 하고 씹으니 시큼한 맛이 느껴지다 정말로 금세 입 한가득 침이 고였다. ‘시어서 시엉일까.’ 남몰래 ‘시엉, 시엉’하고 재밌는 이름을 몇 번이고 읊는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자연이 재미나게 느껴지면서도, 숲길을 걷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거란 사실이 조금 억울하게도 느껴지는 시간이다.

이 걸음이 나를 살린다

30여 분쯤 걸었을까. 오르막길에 조금씩 호흡이 가빠올 무렵 이윽고 평지 길에 들어섰고, 참가자를 인솔하던 이지훈 국장이 주의를 집중시켰다.

“오르막길 때문에 조금 힘드시죠. 제가 지금부터 숲길 걷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호흡이 가빠지는 건 자기 호흡과 발 박자가 맞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지금부터는 내쉬는 숨에 두 걸음, 들이마시는 숨에 두 걸음 이렇게 걸어보세요. 그러다 조금 익숙해지면 내쉬는 숨에 한 걸음, 마시는 숨에 세 걸음으로 계속 걸으세요. 그리고 ‘이 걸음이 나를 살리는구나.’하고 생각하며 걷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힘들지 않으실 겁니다.”

이지훈 국장의 얘기를 들은 후 웃고 깔깔대던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걷는 모습은 조금 진지해졌다. 가르침에 따라 천천히 걷다보니 수풀 내음이 좀 더 진하게 다가온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잣나무 쉼터에 다다랐다. 하늘을 향해 시원시원하게 일자로 뻗은 잣나무 숲의 그늘에서 마지막 숨을 골랐다. 사람들은 걸으며 못다한 이야기를 서로에게 다정하게 풀어냈다. 잣향이 물씬 풍겨나오는 숲에서 머릿속이 맑아지고 있다는 걸 선명히 느꼈다.

“편백나무 다음으로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나무가 잣나무예요. 도시에 있는 잣나무랑 달리 이 잣나무에는 열매가 달려요. 그런데 이곳을 수없이 오가면서도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다람쥐한테 양보해야죠.”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와 숲길을 벗어나자, 판판하게 다져진 백제미소길이 반겼다.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백제미소길을 따라 죽 걸었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없애고 남연군묘를 만들자 북쪽으로 등을 돌려버렸다는 재미난 설이 있는 상가리 미륵불을 마주치는 지점에서 다시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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