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4호]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 이하준 교수

지난해 월간 토마토 9월호에서 ‘예술’에 관해 이야기 나누어 준, 한남대학교 교양융복합대학 이하준 교수를 다시 만나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이하준 교수는 사랑에 관해서는 합리적 논변이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연습이 필요하다고 자각한다고 말했다. 이하준 교수는 지난해 11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을 청소년들이 읽기 쉽게 소설로 쓴 책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를 펴냈다. 
Question 어떤 계기로 책을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Answer 4년 전에 이 책을 기획했던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한 철학자를 담당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쓰게 됐습니다. 다른 책을 내느라 바빠 작업하지 않고 있었는데 출판사가 바뀌고 다시 제의받아 하게 됐습니다. 에리히 프롬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대중적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프롬은 실제로 청소년이나 한국인이 숙고할 만한 철학적 단서를 많이 보여줍니다. 우리는 관계지향적인 자아관과 행동패턴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에 관한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롬은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 독자적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에 관한 생각을 아주 많이 보여 준 철학자입니다. 프롬의 사유를 철학 소설로 만드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uestion 에리히 프롬이 이야기했던 여러 주제 중에서도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에서 사랑을 주제로 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nswer 젊은이들에게 프롬 사상을 전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접근 통로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롬이 말한 사랑이 단순히 에로스로서의 사랑 개념만은 아닙니다. 사회적 사랑 개념도 있고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하는 인격적 사랑 개념도 있고 자기 존재에 대한 사랑도 있고, 무엇보다 실존적 자의식의 극복 측면에서의 사랑 개념도 있습니다. 프롬의 기본 테제는 ‘사랑을 오해하고 있다.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어떻게 나 자신과 관계하고 타인과 관계하고 사회와 관계할 것인가를 프롬은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Question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를 읽고, 쉽게 읽으면 한없이 쉽게 읽을 수 있고 어렵게 읽으면 한없이 어렵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어떤 생각을 유도하며 책을 쓰셨나요?
  

Answer 청소년 시기에 사랑에 판타지도 있고 자신만의 이해 방식이 있는데, 사랑은 굉장히 다양한 색과 맛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자기 자신에 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하고 사회와 어떻게 관계할 것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사랑 얘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반을 생각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는 프롬 인문학의 입문서로 성격 규정을 하고 쓴 책입니다.

  

  

Question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에리히 프롬이나 다른 철학자들의 생각 말고 교수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Answe r프롬 식의 얘기를 일상어로 표현하면, 사랑은 ‘고독과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한테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랑에 관해서는 합리적 논변이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굳이 얘기하자면 공감을 찾아가는 관계 맺기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Question 그 사랑이 이성과의 사랑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겠네요?
  

Answe 그렇죠 그런데 이성한테도 마찬가지죠. 사람은 자신의 외로움과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식을 취합니다. 누군가는 취미에 빠지고 육체적 사랑에 빠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만족감을 찾습니다. 하지만 더 고독하고 이기적이고 지적인 사람들은 그것도 곧 싫증이 나요. 근원적인 해결방안이 아닌 거지요. 사랑은 달리 말하면 자기 존재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을 찾는 과정입니다. 끊임없이 공감을 향해 움직이는 관계 맺기의 방식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Question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는 주인공 현우가 유진을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에서 사랑에 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내용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도 기술이라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소설 속에서 현우는 담임선생님을 통해 사랑에 관해 깨달아가는 과정을 겪습니다. ‘사랑의 기술’에 관해 설명 부탁드려요.
  

Answe ‘사랑의 기술’이라고 할 때, 기술이라는 개념이 연애 기술을 의미하는 건 당연히 아니에요. 흔히 말하는 ‘밀당’을 얘기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요. 그리스 사람들에게 ‘테크네’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프롬에게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은 사랑을 잘하는 법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사랑 잘하는 법은 누구에게 배우느냐. 프롬은 자기 자신에게 먼저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두 번째로 내가 사랑하려는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고요.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관해 카운셀링받는 것은 프롬한테는 마지막 방법이죠. 

자기 자신에게 배우는 방법은, 자신에 관해 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지? 어떤 사람이지? 어떤 성향을 가진 인물이지? 내 성장에 대한 욕구가 어떤 것이지? 나는 왜 이렇게 고독하고 외롭지?’ 계속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자기 객관화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프롬은 타자를 통해 자기를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상호적인 거예요. 타자를 통해 자신을 보면서 자신의 다른 면을 발견하는 거예요. 이것이 사랑의 변증법적 운동이에요. 자신을 향하면서 동시에 거울 역할을 하는 거예요.

  

  

Question 소설 속 담임선생님은 현우에게 ‘사랑한다는 건 사랑의 대상, 그의 주변 사람, 그의 환경, 그를 둘러싼 세계 전체를 수용하고 그것이 그 속성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관심 기울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을 둘러싼 세계 전체를 수용하고 그것이 그 속성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어렵게 느껴졌고 이 이야기를 실현하는 것 또한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Answe 간단한 얘기예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 당신만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엄마,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했던 추억들, 당신의 미래 계획이 전부 내 마음속에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한테도 소중하다는 얘기예요.

  

  

Question 사랑한다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듯,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는 두 사람의 사랑 이외에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소설 속 현우 부모님도 처음에는 여러 이유로 유진이와 사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또 교수님은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 머리말에서 ‘사랑의 경제학’을 언급하면서 사랑이 포장되고 상품화되고 교환의 형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씁쓸한 마음을 표하셨습니다.
  

Answe 사람들이 흔히 어떤 사람의 상황을 보고 결혼하기 힘들겠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 말 뜻이 뭐냐면, ‘나는 너만 사랑할게.’예요. 나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관계 맺기만을 허용한다는 거죠.

  

  

Question 사랑하는 사람이든,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든, 관계 맺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Answe 사는 것도 관계 맺기도 수련 과정이에요. 지금 결혼 준비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사랑을 이벤트로 생각하는 사람이 수두룩해요.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을 찾는 거예요. 가식과 허례허식을 다 벗은 상태에서만 상대방을 그대로 볼 수 있어요. 내가 옷을 잘 입어서, 우리 집에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목소리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거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을 찾는 거예요."

  

  

Question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에서 담임선생님은 진정한 인간관계로서의 사랑, 상품이 아닌 사랑, 교환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사랑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사랑에 대한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현우에게 조언합니다.
  

Answe 그렇죠. 거의 불가능하죠. 우리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나아가야 해요. 자신의 인격적 성장을 위해서요. 그것을 전제하지 않고는 나 자신과 타자를 사랑할 수 없어요. 자기 훈련을 스스로 배워나가야 해요. 사랑을 배울 때 첫 번째로, 폭풍과 같은 감정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외롭고 고독한 마음은 존재의 근원적 불안감에서 오는데, 그 불안감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광신도가 되고 어떤 사람은 술과 마약에 빠지죠. 프롬은 그런 방식이 아닌 사랑을 배우는 방식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원적 불안감의 해결을 위한 한 방식으로 타자를 만납니다. 불안감을 지니고 단순히 타인을 만나면 불안감이 확대 재생산되거나 왜곡된 사랑, 세속적 사랑을 하게 되겠죠. 그래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롬은 배워야 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사랑에 대한 이성적 각성이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Question 『프롬, 사랑의 고수가 되다』에서 보면 유진이가 ‘진정한 사랑은 홀로 서 있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각자의 개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서로를 위하여 살아갈 수 있을까요?
  

Answe 유진이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완전한 의미의 자율성, 독립성을 갖지 못합니다. 개별 주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완벽하게 유지하려면 누군가와 관계할 수 없습니다.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어느 정도 차원에서 조종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너는 꼭 그렇게 해야 하니? 사랑하는 사람이 얘기하면 귀담아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태도는 사랑을 앞세운 폭력입니다. 관계 맺기는 일종의 공유의 장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공감의 장을 만들어가는 협상의 과정이 사랑이에요. 또, 사랑이 공감을 향한 관계 맺기라고 한다면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예요. 자기 자신에 관한 신뢰, 자신과 관계 맺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죠.

  

  

이하준 교수가 운영하는 독서 클럽을 소개합니다. 전통 고전, 현대 고전을 막론하고 읽을 만한 책들에 관한 해설, 서평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비공개로 운영되던 독서클럽 인터넷 카페가 2월 둘째 주에 공개됩니다.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  cafe.naver.com/studia1

글 사진 성수진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