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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8호] 모정에 걸터앉아 마을을 바라보다
안동권씨유회당종가일원(이하 유회당종가일원)은 중구 무수동 무수천하마을 안에 자리한다. 행정구역상 대전시에 속하지만, 대중교통으로는 들어가기 까다로운 농촌마을이다. 왁자한 시내에서 벗어나 마을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모든 살가운 풍경이 유회당종가일원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한다.
버스를 타고 산성동에 내렸다. 무수동까지 간다는 외곽버스 탈 계획이었으나, 좀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릴 수 없어 곧 택시를 잡아탔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좁은 산간도로로 접어들었다. 오른쪽으로 유등천을 끼고 푸른 나무들이 시원하게 우거진 길을 10여 분 정도 지나자, ‘무수천하마을’임을 알리는 마을안내도와 함께 장승들이 죽 늘어선 마을 입구가 보였다. 곧이어 오른편으로 연둣빛 들판이 펼쳐졌고, 왼편으로는 드문드문 작은 집이 모여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 나타났다.
유회당종가일원은 하마터면 지나칠 법한 마을 어귀에 자리하고 있었다. 공사 중인 요란한 모습 덕분에 종가일원임을 알 수 있었다.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문화재는 행여 해를 입을까 빗장을 걸어 잠가두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 유회당종가일원은 거리낄 것 없다는 듯 대문도 담장도 없이 개방돼 있다. 마을과 자연스레 어울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장에 있던 목수의 말에 따르면 보수공사를 시작한지 열흘 남짓 되었다 했다. 찾은 당시는 사랑채를 공사하던 중으로 건물이 철근들로 가로막혀 있어 자세히 둘러보기는 어려웠다.
유회당종가는 조선 후기 문신인 유회당(有懷堂) 권이진(權以鎭, 1668~1734)이 세웠다. 권이진은 만회 권득기의 증손이자 우암 송시열의 외손으로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인물이다. 처음 세웠던 종가는 훗날 화재로 소실되고 1788년 후손들이 현재 자리에 옮겨 지었다.
유회당종가는 보문산 남쪽 기슭의 아늑한 곳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총 5동으로 되어 있고 사랑채, 안채, 사당 등 세 채의 건물과 초입에 있는 모정, 작은 연못 등을 포함한다.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돼 있으며, 안동권씨 유회당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관리한다.
유회당종가에 들어설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초입 오른편에 자리한 모정(여름철 마을주민이 더위를 피해 휴식하기 위해 세운 마을의 공유·공용건물)이다. 모정은 초가지붕을 얹은 한 칸 규모의 단순한 형태로, 양옆에 보호수로 지정한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든든히 버티고 있다. 덕분에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것 같은 날씨임에도, 모정 안은 다른 세상인 듯 서늘한 바람이 분다. 모정 안 위쪽을 빠꼼히 들여다보니 광영정(光影亭), 수월란(受月欄), 인풍루(引風樓), 관가헌(觀稼軒) 등 네 개의 편액이 걸려있다. 모정 뒤편으로는 작은 연잎이 빼곡히 떠있는 크지 않은 연못이 있어 한결 운치를 더한다.
입구에 놓인 표지석과 문화재 안내판을 지나 들어서면 왼편으로 안채, 오른편으로 사랑채가 보이고 사랑채 뒤편으로 자그마한 사당 건물이 자리했다. 건물들은 비교적 소박한 모습이고, 건물 사이 간격이 넓어 여유가 있다. 안채는 ‘ㄱ’자형 모양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대청공간을 중심으로 좌측에 안방, 우측에 건넌방을 들이고 안방의 앞쪽으로는 부엌이 있다. 지붕은 홑처마 우진각지붕을 올렸다. 건물 뒤쪽을 따라 죽 돌아보니 뒤편과 왼편에 각각 두 개의 굴뚝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창 공사 중이라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던 사랑채는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규모이다. 좌측 한 칸은 대청, 중앙의 두 칸은 온돌방, 맨 우측칸은 전면에 한 칸의 방을 들이고 후면에는 다락과 함실을 들인 구조다. 사랑채 뒤편 언덕진 곳에 있는 사당은 세 칸의 아담한 크기이며, 문짝과 처마 등에는 불에 탄 흔적이 남아있다.
유회당종가일원은 첫인상으로는 다소 소박해 심심하게 생각되나, 찬찬히 살펴볼수록 아기자기한 공간구성이 돋보여 정감이 갔다. 오래도록 종가 안을 들여다보고 나서는 길, 아쉬운 마음에 모정에 걸터앉았다. 땡볕 아래에 있느라 이마에 맺힌 땀이 금세 식었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마을을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이곳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