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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8호] 구석구석 볕 잘 드는 동네
늘 도심을 가득 채우는 건물 ‘속’에 혹은 ‘앞’에 있었다. 버스를 타도, 지하철을 타도 또 뚜벅뚜벅 걸어도 언제나 도심을 화려하게 수놓는 대로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익숙하게 오가던 길이었다. 아마도 대형 백화점과 지하철역이 있어 더 그렇게 느꼈을지 모른다.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높이 솟은 건물 ‘뒤’로 걸음을 옮겼다. 대형 백화점 뒤에 숨은 듯 자리한 동네, 용문동과 경계를 맞댄 동네, 대전시 서구 괴정동을 찾았다.
용문역 4번 출구로 나오니 큰 도로와 대형백화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그냥 큰 도로를 따라 걸었을 텐데 이날은 높이 솟은 건물을 새침하게 흘겨보다 바로 건물 사이 작은 샛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용문종합사회복지관을 지나 롯데백화점 뒷골목부터 천천히 동네를 거닐었다.
괴정동은 용문동, 탄방동, 갈마동, 내동, 가장동까지 다섯 개 동네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남쪽으로는 내동과 가장동을, 용문역과 가까운 동쪽은 용문동을 KT대전인재개발원을 끝으로 둔 서쪽은 갈마동을 경계로 두고 북쪽은 둔산동과 탄방동에 닿아있다. 1963년 용문동에 속했던 동네는 1970년 가장동과 괴정동으로 분리되면서 독립된 동네로 자리 잡았다.
‘괴정’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이름이다. 당시 괴정동 중심 마을이던 가장골에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은 샘이 있었는데 그 옆 정자에 잘 자란 괴목나무(느릅나무 과의 한 종류로 주로 느티나무를 칭하며 귀목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한 그루가 있었다. 괴목나무의 ‘괴’와 정자 ‘정’ 자를 한 글자씩 따 ‘괴정’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들쑥날쑥 키가 다른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식당과 술집이 자리한 낮은 빌딩, 주변 건물보다 2~3층은 더 높을 숙박업소, 상점과 주거공간이 함께 있는 복합오피스텔도 보이고 보통의 원룸 건물도 골목 곳곳에 자리했다. 들쑥날쑥한 건물 사이로 희멀건 분홍색 타일에 둘러싸인 대형 백화점이 반쯤 얼굴을 드러냈다. 완전한 상업공간도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주거 공간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모습을 한 괴정동 동쪽을 지나 남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도로는 아니지만 버스도 다니고 차가 제법 많이 지나는 동네 ‘큰길’이라 부를만한 도로를 건너자 괴정동 동쪽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동네가 이방인을 맞는다. 낮고 허름하지만 정겨운 건물이 도로를 따라 듬성듬성 서 있다. 낮은 건물에는 오래된 이용원, 맞춤 양복점, 작은 동네 슈퍼가 앙증맞게 자리 잡았다.
“옛날에는 다 논이고 밭이었지 뭐 별거 있어? 특히 포도밭이 많은 동네였어. 인가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와 집 짓고 살기 시작했지. 군부대도 몇 있었어. 지금 한신아파트 자리에 806부대가 있었는데 90년대 초반에 아파트 들어서면서 부대가 없어졌지. 공무원 연수원도 있었고… 롯데백화점 자리가 원래 특수금속공장이었어. 군에 납품하는 총 부품도 만들고, 자동차 부품도 만들고 그랬다는 것 같아.”
도로변 낮은 건물에 자리한 로얄이용원 권석주 사장은 단골손님의 머리를 다듬으며 무심하게 옛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괴정동에서 나고 자랐다. 젊었을 때 동네를 떠나 이곳저곳 옮겨 다니긴 했지만 다시 동네로 돌아와 이용원을 차렸다. 1990년 3월에 문을 연 이용원은 벌써 25년째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골목을 따라 동네 더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듯하게 난 골목길을 따라 단정한 주택과 원룸이 교차로 자리 잡았다. 골목을 거닐다 동네 작은 공원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다시 공원 안에 있는 괴정노인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첫애 낳고 바로 이 동네로 이사 왔으니까 60년이 넘었네. 선화동 살다 공기 좋은 데로 찾아 이사 온겨. 그때는 뭐 다 논이고 밭이었지. 저기 백운교회 알어? 그 부근에 집 몇 채 있었던 것 말고는 사람도 별로 안 사는 동네였어. 동네로 천이 흘렀는데 복개공사를 했지. 처음에는 너무 높게 복개해서 사람이 많이 떨어져 다쳤어. 롯데백화점 앞 큰길은 원래 있던 길이야. 거기로 시내버스, 시외버스가 다 다녔지. 그길로 중앙시장에 장보러 다니고 그랬어. 공군 부대 있어서 군인 가족들도 좀 살았고. 뭐 별다를 게 있나. 옛날 동네가 다 그렇지. 둔산동 개발하고는 동네 사람들이 다 그짝으로 빠졌지. 우리야 뭐 계속 살던 디니까 그냥 사는 거야.”
노인회관에서 만난 최순여 할머니는 60여 년 세월을 괴정동에서 살며 다섯 아이를 낳고 시집, 장가를 다 보냈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괴정동은 아이를 키우며 먹고 살만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동네였다.
“처음 이 동네 왔을 땐 깔끔한 단독주택이 많은 동네였어. 가게도 드문드문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원·투룸 건물 짓는다고 다 없애 버렸잖아. 괜찮은 주택들이 제법 있었는데 남은 게 몇 개 없지. 한 15년 전부터 그랬든가? 백화점 들어오고부터였으니까 얼추 맞을 거야. 동네는 훤해졌지. 대신 거리는 지저분해졌고. 젊은 사람들이 어디 동네 작은 이용원, 슈퍼 같은 데 오나. 다 크고 좋은 데로 가지.”
괴정동에서 25년간 양복점을 운영한 라이프양복점 권 사장님은 잘 가꾼 마당을 낀 넓고 깔끔한 단독주택이 많은 한적한 동네라고 괴정동을 이야기했다. 백화점이 들어서고 동네가 조금씩 변했다. 주택을 부수고 건물을 올렸다. 건물에는 술집, 식당, 원룸 등 ‘장사꾼’들이 자리 잡았다. 동네에 드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작은 이용원, 동네 슈퍼를 이용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조금 더 천천히 골목을 걸었다. 그제야 다정하게 자리한 이층주택에 눈길이 간다. 드라마에서 본 아주 화려한 단독주택은 아니지만 제법 큰 대문과 잘 가꾼 정원이 인상적이다. 담벼락 너머 가지를 길게 뻗은 나무를 보며 오랜 세월을 슬쩍 짐작할 뿐이었다.
권 사장님 말대로 동네에 단독주택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골목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결국 회색 시멘트로 지은 원·투룸 건물이었다. 골목을 따라 원룸이 그 끝을 알 수 없게 늘어섰다.
단정한 주택을 지나 탄방동과 둔산동 방향, 그러니까 북쪽으로 걸으며 동네를 살폈다. 완만한 경사가 죽 이어진다. 골목이 많은 동네지만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누군가 자를 대고 선을 그은 듯 골목길이 반듯반듯하다. 동네를 구석구석 걸어본 결과 괴정동은 가운데가 볼록하게 솟은 낮은 동산 같은 지형이다. 그래서인지 동네 구석구석까지 볕이 깊이 들었다.
경사가 끝나갈 무렵 로얄 이용원 권 사장님이 어릴 적 다녔다던 백운초등학교를 발견했다. 학교는 북쪽에서 동쪽으로 살짝 비켜나 있다. 1949년 개교해 올해 67회 졸업생을 배출한 오래된 학교다. 가장초, 서부초, 둔원초, 내동초등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괴정동과 그 주변 동네 아이들이 모두 백운초등학교에 다녔다. 1979년 백운초등학교 7개 학급이 내동초등학교로 분리 개교하기 전에는 수업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 하기도 했다. 내동초등학교를 시작으로 1983년 가장초등학교가, 1990년대 초 서부초등학교와 둔원초등학교가 차례로 개교하며 학생 수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오랜 세월을 입증하듯 낮은 2층 건물이 학교 중심에 자리한다. 그 옆으로 신축 강당과 건물을 한두 채 더 지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었던지 운동장에 아이들이 많았다. 조그마한 문구점 앞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아이도 몇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괴정한신아파트와 KT서대전지사를 지나 탄방동과 맞닿은 괴정동 서쪽을 돌아보았다. 괴정중학교와 고등학교 앞은 더 조용하고 한적하다. 원룸이 몇몇 보이긴 하지만 많지 않았다. 주택 모습도 다양하다. 백운초등학교 근처 골목에서는 보지 못한 기와를 인 허름한 주택도, 마당이 없는 일반 주택도 제법 눈에 띈다. 안도감이 들어서였을까. 따뜻한 볕을 맞으며 전보다 더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