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다 보면 살게 된다는 믿음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 
강영희 센터장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는 2013년 10월 개관했다. 
대전사회적자본지원센터가 개관하면서 가장 공을 들인 사업이 
‘마을 만들기’다. 마을 만들기, 마을 살이, 마을 활동가 등 
많은 낱말이 사회적자본지원센터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했다. 
강영희 센터장은 2015년 2월부터 업무를 맡은 
두 번째 센터장이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마을’이라는 의제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지니고 갔다.

                     

                                  


                          

 
내가 마을에 ‘살던’ 때에 관한 기억

이용원 요즘 마을에 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어요. 저 역시도 산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마을이 정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강 센터장은 정말 오랫동안 마을 관련 일을 하셨잖아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재미있으세요? 

이용원 요즘 마을에 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어요. 저 역시도 산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마을이 정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강 센터장은 정말 오랫동안 마을 관련 일을 하셨잖아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재미있으세요? 

강영희 난 그런 질문 받으면 제일 힘들어요. 사실은 대답을 못 찾았어요. 어느 때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렇게 물으면 본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계속 질문을 받으니까 어린 시절에 어떤 추억이 있었나, 생각해요. 마을에 관한 괜찮은 기억이 순간순간 있어요. 열 살 때까지 항상 아파서 학교에 못 가는 날이 반이었는데 마을에는 함께 놀아 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지금 아이들에게도 그때 제 곁에 있던 마을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용원 옛날에는 정말 그랬죠. 저도 좋은 기억이 많거든요. 그랬던 마을이 달라진 게 언제부터일까요? 

강영희 마을 공동체가 생생하게 살아 있던 때는 장례를 집에서 치를 때까지였던 것 같아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직도 어떻게 장례식을 치렀는지 모르겠어요. 병원에 있다가 돌아가신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가서 친구들에게 알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알렸어요. 어느 순간 누가 육개장을 끓이고, 손님맞이하고, 3박 4일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엄마 장례를 잘 치렀어요. 다 마을 사람들 덕분이었죠. 돈 걱정도 하지 않았고요. 이런 기억이 기본적으로 마을을 바라보는 시각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이용원 마을에 관한 기억만으로 마을 운동을 할 수는 없잖아요. 본격적으로 마을 운동을 하기 시작한 건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강영희 첫째를 임신하면서 완전히 집에 있게 됐어요. 계속 노동 현장에 있다가 집에만 있으면서 만나는 이웃 아줌마들이랑 한마디도 못 하겠는 거예요. 그때 정말 충격받았거든요. 대화 주제에 아예 낄 수가 없었어요. 애들 장난감, 남편 이야기 등과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너무 생소한 거예요. 노동 현장에서 고민했던 문제와 일상적인 삶의 괴리가 엄청 크다는 걸 깨달은 거죠. 한 2년 동안은 정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동네 아줌마들이 저를 어수룩한 아줌마인 줄 알다가 우리 애들이랑 제가 노는 게 심상치 않았나 봐요. 어느 날 학원에서도 잘 받아주려 하지 않는 아이를 제게 맡아 달라고 데리고 오더라고요. 마침 고민이 많은 때였거든요.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 싶은 고민이었죠. 그때 그 아이를 시작으로 네 명이 모였어요.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찾아오고, 급기야는 아이들 성적이 오르니까 과외를 부탁하러 오는 이웃도 생기더라고요. 그건 싫었거든요. 그때 이 활동을 집 밖으로 나와 마을 단위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용원 마을에 관한 좋은 기억과 마을에서 맞닥뜨린 실제 삶이 겹친 거네요. 

강영희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둘째 아이가 다녔던 학교 도서관에서 벌인 자원봉사활동 때문이었어요. 자원봉사를 하러 갔는데, 학교 책이 엉망인 거예요. 애들이 봐야 하는데 곰팡이가 잔뜩 슬어 있었어요. 그리고 자원봉사하러 오는 엄마들이 만 원씩 회비를 내는데 이걸 어떻게 쓰는지 안 알려 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건의 했죠. 도서관 책 다 폐기하자. 그리고 엄마들이 내는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공개해 달라. 완전 튀는 아줌마 취급 받았죠. 그까짓 돈 만 원 가지고 유별나게 군다는 소리도 듣고(웃음). 결국, 자원봉사를 그만두었죠. 그다음으로 생각한 게 동네 동사무소에 있던 문고였어요. 동사무소를 찾아가서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엄청 쌀쌀맞게 딱지를 맞았어요. 좌절하고 있을 때 몇몇 엄마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자원봉사하면서 늘 주장했던 것에 대놓고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 분들이었죠. 그래서 그 엄마들이랑 만나서 커피도 마시며 놀다가 정말 어렵고 힘들게 ‘우리 도서관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제안했어요. 근데 바로 ‘좋아요!’라는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저는 한 1년쯤 걸릴 거로 생각했거든요. 놀라운 일이었어요. 여하튼 알짬어린이도서관이 그렇게 태어난 거였죠. 

이용원 그때는 마을 단위의 고민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도시의 고민으로 커져 버린 거잖아요. 마을어린이도서관이 마을을 변화시키는 데 유효한 가치로 여겨진 것이 마을어린이도서관협의회가 생기면서부터라고 보면 되나요? 마을에 관한 고민에 행정기관이 관심을 둔 건 사회적자본지원조례가 생기고부터죠? 

강영희 사실 그 전에 대전시장 선거할 때부터였어요. 어떤 후보는 직접적으로 ‘알짬’ 100개를 만들겠다고 공약했거든요. 그때 지역에서 의제로 떠오르면서 한밭도서관이나 시 담당과에서도 도서관 정책 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때에도 도서관이라는 거점에 관한 생각 차이는 확실했어요. 도서관이 마을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는가. 교육기관으로 한정해서 보는가에 관한 거였죠. 우리 마을에서부터 대전시까지 관심이 급속도로 확산된 결정적인 계기도 사실은 도서관 운동을 교육 아젠다로 봤기 때문이었어요. 그때도 마을 안에 도서관을 생각한 사람들과 도서관을 위해서 마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생각이 나뉘어 있었어요. 사실, 지금도 그렇고요.

                                        

                

마을은 만들어야 하는가

이용원 마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사업이 벌어지지만 정작 ‘마을 만들기’라는 이름 자체에 관한 거부감도 있어요. 마을이 만들어질 수 있느냐는 거죠. 

강영희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을 살이가 맞죠. 산다는 게 맞는데, 만들기라는 표현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정말 마을에서 살고 있냐고 묻는 거예요. 마을에 산다는 건 마을에서 유기적인 활동이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건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현재 우리의 삶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마을에서 살고 있지 않은 거예요. 신뢰가 무너졌다기보다는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면서 가족 단위로 파편화되었다고 생각해요. 단절된 관계를 다시 복원해야 해요. 그런 측면에서는 만들기라는 말이 맞죠. 

이용원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노동 현실을 보았을 때는 마을에서 산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긴 사람들은 직장 주변이 더 친밀하게 느껴지니까요.  

강영희 맞아요. 마을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업주부거나 자영업자예요. 이 시대에 아빠들은 마을 사람이 아니죠. 그건 도시의 팽창 속에서 문제가 생긴 건데, 일하는 시간 자체를 줄이지 않는 한 해결이 안 돼요. 그게 한계라면 마을 만들기를 통해서 그런 사실 자체를 자각하도록 하는 것 역시 마을 만들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용원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인식하게 해야 한다는 건데, 궁극적으로는 노동법이나 관련법에 영향을 줘야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강영희 어쨌든 변한다고 생각해요. 처음 주민 운동할 때만 해도 엄마들이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주민’이라는 말에도 거부감이 있었어요. 오만 단어가 다 자극이었어요. 자원 활동가라는 말도 의식적으로 만들어서 사용했어요. 자원봉사는 일방성이 있고, 공급자가 되는 개념이라서 활동가라는 말을 붙인 거죠. 이걸 바꾸지 않고는 마을에서 인적자원을 발굴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말도 엄청난 시시비비가 있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자원 활동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엄청 많은 거예요. 이런 식으로 변하는 거죠. 

이용원 사회적자본지원센터를 맡기 전에는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자유로웠잖아요. 그런데 중간지원조직에 있다 보니까 차이나 답답함이 있을 것 같은데요. 

강영희 지금 많이 바뀌긴 했는데, 견해차가 있는 건 분명해요. 예를 들어 시나 우리나 똑같이 주민 중심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 수준의 정도가 좀 다른 거예요. 우리가 볼 때는 주민 참여 정도인 거죠. 우리는 참여 정도가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되는 걸 말하거든요. 그러면 시에서는 억울하죠. 지금껏 그렇게 주민 참여를 보장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것도 변화의 과정이라고 봐요. 사회적자본지원센터의 경우는 책임은 공무원이 져야 하고, 실행은 우리가 해야 하는 구조니까 결재 과정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체계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으니까 자기네 행정 시스템에 따르길 요구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건 거버넌스 위원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공무원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이요.

이용원 책임 주체와 실행 주체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네요. 그런데 현실에서 거버넌스 위원회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강영희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꿈 같은 이야기 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꿈 같아도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버넌스라는 개념에 관한 이해도 관과 민간이 정말 달라요. 관의 입장에서는 옛날에는 관이 위에 있고 민간단체가 아래에 있었다면, 지금은 나란히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는 나란히 서 있긴 하지만, 양 측의 규모가 달라요. 세 살 꼬마와 마흔 살 아버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라는 말이에요. 두 사람 주장이 어떻게 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겠어요. 

                       

                   

모두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이용원 실제로 3년간 마을 만들기를 지원하면서 지원했던 마을 공동체가 300여 개가 넘을 것 같은데요. 보람을 느끼세요? 

강영희 340개 정도 돼요. 처음에 센터장 맡으면서 각오한 양이 있었어요. 마을을 만드는 건 망하든 흥하든 어쨌든 경험을 계속 만든다는 의미가 있어요. 센터장을 하겠다고 했을 땐 마을에서 좌우를 없애자고 다짐했어요. 예를 들어 선거 때는 정말 야당과 여당 쪽이 적나라하잖아요. 그리고 그 골이 굉장히 깊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마을에서는 좌우가 아니라 위아래여야 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마을 단위는 좌우와 상관없이 모두 피해자거든요. 대한민국은 마을이 모두 망가졌잖아요. 그래서 좌우를 흐트러뜨리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게 마을에서 리더를 만드는 일로 귀결되는 거였어요. 그런 면에서 마을 활동가 포럼을 보면 만족스러워요.

이용원  마을 활동가 포럼이 토대 정도는 만들었다고 평가하시는 거네요. 그런데 한동안 마을 만들기 심사를 하면서 느낀 건 마을 만들기 사업이 교육과 결부되면서 왜곡되고 과열화된 교육지상주의에 활용되는 경향도 있거든요. 이건 부작용 아닌가요? 

강영희 성장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인데, 일단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일단 마을을 변화시키는 혁신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마을이 좌우로 심하게 나뉜 것도 왜곡된 정보가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교육 과열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정보 왜곡이 심하게 들어가면서 생기는 거고요. 정보가 왜곡되지 않는 구조 체계를 만드는 건 마을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그런 사람이 이끌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도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시작했든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이 마을에서 중요한 자원 활동가로 자리를 잡아 가니까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용원 제대로 된 활동가가 있어야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그 마을 활동가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이 현재 벌이고 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가장 핵심이라는 말씀이신 거죠?

강영희 마을에서 활동가를 키우는 일이 공모사업이어도 관계없다고 생각해요. 공모사업 같은 게 사업만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세금을 잘 쓰는 집단이 넓어지고 규모가 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마을에 투자하는 단위도 고민해야 하고요. 그렇다고 계속 사람만 발굴하고 공모사업만 무리 없이 진행되도록 신경 쓰는 것에 머물면 안 되지요. 실제로 내년부터는 질을 담보하는 시스템을 생각해야 해요. 2~3년 동안 활동하면서 드러난 사람들이 이제는 질적 성장을 해야 할 때죠. 내년 사업은 그게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하지 않았을 때는 변했는가’라고 묻고 싶다

이용원 그럼에도 마을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포괄하는 게 너무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을 문제뿐만 아니라 청년, 여성 같은 문제가 너무 기준 없이 망라되어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강영희 ‘마을’이 주요 아젠다가 된 이후로 대전시 예산을 살피면 부서마다 마을 관련 예산이 산재되어 있어요. 부서마다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한편으로는 다양성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문화, 교육, 도시 정비 모두가 마을에는 필요한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서로 모르는 상태로 진행되는 거예요.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거버넌스 위원회나 지원센터라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그렇게 해서 종합적인 계획설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떤 마을에 어떤 문화가 들어가야 하고, 마을 고유의 색을 입히는 작업이 작은 단위로 계획될 수 있도록 작은 단위의 센터가 쪼개져서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기능이 더 작은 단위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용원 그러니까 시 단위로 하는 것보다는 구 단위로 내려가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죠. 

강영희 구 단위, 마을 단위, 이렇게 작은 단위로 있는 게 좋겠다는 거죠. 지금 행정체계로는 안 돼요. 마을 만들기 지원 기관인 우리도 일부러 찾아 봐야 알 수 있는 거거든요. 

이용원 지금까지 대전시가 벌인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한 도시의 변화가 눈에 보이기는 하나요? 좀 조급한 질문이지만 무척 궁금한 지점인데요. 

강영희 3년 차인데, 사람을 드러나게 했다는 건 확실해요. 또 마을에 있었던 왜곡된 진보와 보수의 시각도 바뀐 부분이 있고요. 대표적인 것이 마을 활동가들과 주민자치위원회 위원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거죠. 또 최소한 서로의 활동이 어떻게 필요한지에 관한 고민을 시작했고 교류와 협의, 함께하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생긴 거죠. 이런 것이 성과이자 변화라고 생각해요.

이용원 그러나 그런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마을 만들기에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각도 많잖아요. 

강영희 나도 있어요. 나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방향이 있는데, 그게 되느냐는 우려가 동시에 있어요. 또 직접적인 고민은 마을 활동가를 직업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맞냐는 고민이에요. 마을 지원 기구가 생기면 직업 활동가가 되는 건데, 그 사람들은 마을에서 활동하다가 올라온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게 분명하고요. 그럼 직업이 되는 거죠. 지속해야 하는 건 분명한데, 어떤 것이 옳은 방법인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고민 중이에요. 또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요. 그럴 때는 되묻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세상이 바뀌느냐고요. 어떻게 플랫폼을 만들고 마을 리더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지 많은 고민이 남아 있지만 아직은 가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글 사진 이수연 /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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