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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4호] 카페 37.2℃ 한기종 씨
“원래 업은 배우예요. 스물하나에 상경해 신촌에 있는 동방 극단에서 연극을 하며 배우로서 첫 발을 디뎠죠. 수입이 일정치 않은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됐는데, 그러다가 10여 년 전 대흥동에서 카페와 함께 여러 가게를 하게 됐죠.”
한기종 씨는 연극을 하던 동료들과 함께 대흥동에서 카페를 비롯해 여러 가게를 운영했다. 당시 대흥동은 지금보다는 훨씬 북적였다. 가게들도 발디딜틈 없이 장사가 잘됐다. 그러다보니 어느 샌가 주객이 전도된 듯했다. 결국, 그맘때쯤 한기종 씨가 처음으로 찍게 된 상업영화는 동시에 마지막 영화가 됐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약 8년 전이다. ‘가게 탁자에 프림과 설탕이 있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커피 만드는 일을 했던 그는 일찍이 커피에 애정을 갖고 있던 터였다. ‘커피를 직접 볶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100여 군데가 넘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렇게 다녀본 결과 내로라하는 카페들은 공통점이 있었어요. 바로 자신만의 커피를 강요한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해요. 저는 강요하지 않는 커피, 그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믹스커피도 많이 마시는 ‘커피를 가리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지금까지 커피에 관한 한 그의 모토는 ‘맛있는 커피’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세계적인 커피장인 히로세 유키오가 쓴 책의 한 구절의 영향이 컸다. 커피를 내리는 데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도, 금기도 없다는 것이었다. 한기종 씨는 무릎을 쳤다. 그의 커피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일본 야마구치현 시골에서 노인 부부가 하는 작은 카페에 갔던 게 잊히지 않아요. 할아버지가 손을 떨면서 드립을 했는데, 사실 맛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그 커피 한 잔에 지극한 정성과 인생이 다 담긴 느낌이었어요. 그 때 생각했죠. ‘아, 커피란 게 별 것 아니구나.’라고요.”
결국 그는 정성스레,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됐다. 진부한 말이지만, 그런 이유로 그의 커피는 진부하지가 않다. 두 사람이 와서 같은 커피를 주문해도, 그는 각각의 커피를 내리고, 최대 400g을 볶을 수 있는 소형 로스터기로 매일매일 원두를 볶는다. 2년 전에는 손님이 오면 그에게 어울리는 드립커피를 내어주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은 원두의 종류도 많고, 스스로 드립커피를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 망설이다 ‘아메리카노 주세요.’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커피를 내가 추천해 보자고 생각한 거였어요. 손님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지금은 조금 힘들어서 그만뒀죠(웃음).”
한기종 씨는 커피에는 쓴 맛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맛이 있다는 걸 공유하고 싶어 카페 37.2도씨를 핸드드립 전문점으로 운영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다섯 종류의 원두를 판매했지만, 다양한 종류의 드립커피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최근 여섯 종류로 줄였다. 현재는 케냐, 콜롬비아, 과테말라 안티구아, 만델링, 예가체프, 코스타리카 따라주를 판매하고 있다. 드립커피는 원두의 종류를 불문하고, 예나 지금이나 4천 원이다. 누군가는 더 비싼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더 싼 커피를 마시는 일 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맛있는 커피로 같은 대접을 하겠다는 한기종 씨의 생각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