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2014년 6회 월간 토마토 문학상 수상작

- 아니요, 그런 거엔 관심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우식의 눈을 나는 바라보았다. 그의 시각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해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보면서 말했지만 정작 그의 수정체에는 내가 맺혀있지 않을 것이 뻔했다. 신경병적인 기색이 서려있는 고동색 홍채는 무심한 거절의 권리를 행사하는 듯 결정적인 부분이 의도적으로 텅 비어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어떤 빛도 허무라는 그림 이외의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억세지 않아도 완고한 고집이 서려있는 눈이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려했지만, 그의 눈은 누군가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기묘하면서도 불편한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내 앞에 있지만 그는 그의 안에 있어서 나는 결국은 유령에 가까운 것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그는 형체가 있으나 영혼이 없어서 최대라고 해봤자 사물로서의 질감이 느껴질 뿐 그 외의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 그럼, 이렇게 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처음에는 우식의 행동이 조금씩 드러날 때, 그저 특이한 유형의 인간인가 보다고 일부러라도 가볍게 생각하려 했었다. 아니다. 사실, 정말 처음 그를 보았을 때에는 어떤 낌새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눈꼬리가 아래로 길게 처진 순한 인상의 소유자였고, 부산에서 자랐지만 질박한 억양이 거의 없어서 뭐랄까, 사투리 특유의 친밀한 공격성이 주는 피로감이 들지 않아 좋았다. 말을 잘 이어갔으며,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려는 가벼운 강박을 감지하긴 했지만 그 때는 딱히 문제가 되는 상황이 그려지진 않았다. 어쩌면, 성급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력서를 봤을 때, 이미 호감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느끼는 탄산수 속 산란하는 포말 같은 경쾌한 호기심에 이미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축 늘어진 블라인드처럼 무료한 칸들의 연속일 뿐인 그야말로 이력서다운 이력서들 사이에서 그의 이력서는 당장에 눈에 띄었다. 다짜고짜 커다랗게 자신의 이름 ‘김우식’을 이력서라는 제목 대신 달아놓고 ‘표’에서 벗어나, 시각적이라고 해야 될까, 임의대로 자신의 이력을 한줄 단위로 띄엄띄엄 배치해놓아서 눈으로 밟아가다 보면 마치 링크를 타고 한 문장에서 다른 한 문장으로 이동하는 듯 신선한 공간감이 생기는 독특한 이력서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양식만 독특하고 내용은 그저 그런 것이었다면 시답잖은 객기로 보여서 일단 읽기는 하면서도, 어디다가 힘을 쏟아야 할지 모르는 인간이군, 생각하며 슬쩍 비웃었겠지만, 양식과 내용이 서로 호응을 하고 있다는 점이 어, 이거, 흥미롭다, 라는 기분 좋은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들어서 나는 그를 알기도 전에 이미 그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김 우 식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지금은 돈이 얼마간 필요한 것 같아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에 지원해 본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본적으로 중저음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내의 다져진 체력보다는 소년의 투명한 감각이 더 우세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이미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안경을 꼈을 것이다. 손가락이 섬세할 것이고, 마른 몸을 가졌을 것이며,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선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 로비에서 만났다. 그는 밝은 갈색의 뿔테안경을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가끔 들어 올렸고, 세월에 무너지지 않은 호리호리한 몸매로 상황 뒤에서 힘을 빼고 웃는 방식의 부드럽고 가볍지 않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 나이가 서른 살인데, 결혼해야 되지 않나. 자네 위해서 하는 이야기야.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낚아채며 말할 수도 있지만, 어쩐지 그런 템포가 자신과는 일치하지 않아 일부러 한 박자 쉬어서 말하겠다는 듯 천천히 웃은 다음에 말했다.

- 그런 거엔 관심 없습니다.
- 아니, 그냥 생각 없이 이야기하지 말고, 직장도 잡고 해야, 자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 아닌가. 이거 평생직장 할 건가. 그러기는 어렵지.

나는 그를 위해서 몇 가지의 이야기를 던졌다. 사실 나는 자네 같은 사람들을 좋아한다. 뭐랄까, 꿈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꿈이 있다는 거 그거 얼마나 좋은 건지. 글을 쓴다면 게스트하우스 매니저가 꽤 괜찮은 직업일 지도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까.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어쩌면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따져 보니 그를 위한 말도, 심지어는 그를 향한 말도 아니었다. 나는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시작해서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만 늘어놓곤 해서, 이 병신 새끼가, 하고 혐오했던 직장상사의 화법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어쨌거나, 말을 해 놓고 나니 꽤 그럴 듯한 논리이긴 했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경험이란 게 필요할 테니 말이다.

- 선생님.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그는 앞의 모든 말들에 대해서는 ‘틀리긴 해도 나와 상관없으니 넘어간다.’는 듯한 태도로 별다른 대꾸 없이, 시간의 궤적만 물끄러미 좇는 무료한 낚시꾼의 한가한 찌처럼 이따금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내 마지막 말에 대해서만큼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분연하다고 해도 될 만큼 강한 감정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그때가 사실상 그가 맨얼굴의 그를 드러낸 마지막 순간이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은 말 그대로 아주 순식간에 지나가서, 나는 방금 본 거친 경계선의 주변과 어긋나게 그려진 자화상 같던 사내와 지금 내 눈 앞의 희뿌연 안개 같은 공기 속에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 사이의 커다란 간격을 쉽사리 해결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 선생님. 경험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불쑥 드러난 자기 자신을 주워 삼키기라도 하듯 천천히 목소리에 들어간 뻣뻣한 경직을 이완시키며, 불안정해진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그의 시선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손끝을 향해 있었는데, 손끝에는 미세하게 땀이 맺혀 있었다.

나는 그가 절대 무언가를 용납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저버리고서라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태도가 느껴졌는데, 나는 그것이 내심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도식적인 말들을 도식적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그의 능력 덕분에 해방감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래, 그러고 보니 “꿈이 있는 사람들이지.”라는 말부터는 내가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그냥, 그저 그런 말, 생각이 아닌 그저 중력이 작용해서 아래로 또 아래로 축 늘어져버리는 사슬 같이 이어지는 허접하고 쓰레기 같은 말이었다. 무관심해서 하는 무지의 말. 나는 그가 그간 축적되어 온 나의 지적인 피학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글을 쓰는 거지?” 묻고 싶었지만, 1 다음에 2가 나오는 정수들의 나열처럼 뭔가 빤한 것 같았다. 나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 현학적이고 사치스러운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었는데, 그러자면 1 다음에는 뭔가 다른 것이 나와야 했다.

그는 얼굴의 전체적인 균형을 해치지 않을 만큼 적당히 미간을 찌푸리고서 무언가를 골똘히 찾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 생각은 혹은 감정은 혹은 그 둘이 결합된 어떤 추상적인 질감의 ‘상태’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다만 그에 대응하는 적합한 언어를 찾으려 그는 그의 사유의 창고를 뒤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는 애초에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도 허투루 이야기할 수 없거나, 혹은 허투루 이야기하게 될 때 심한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임에 분명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언어와 분리된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그건 그가 언어를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지점에서 쓰기 때문인 것 같았다.

- 제게 필요한 건 그늘입니다, 햇빛은 하루에 15분이면 충분합니다.

1 다음에 a가 나왔다.

그는 이 문장을 ‘던진’ 뒤 자기 뜻과 들어맞는 단어들의 결합을 찾아냈다는 만족감과, 그렇다면 자기의 뜻이 전달되지 않겠냐는 안도감이 함께 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은유에 불과한 이야기로 상대에게 사실을 ‘다’ 전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건 그가 이미 언어를 즉각적인 상호작용의 세계에서 분리시켜 놓았다는 증거였다. 그는 언어를 내게 ‘보여주었다.’ 일종의 오브제처럼 그의 언어는 나와 그 사이에 놓여 있어서 나는 정신을 언어의 밖에 두어야만 했다.

여기까지 생각에 미쳤을 때, 나는 최근 몇 년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대략 마흔을 임계점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의 활공을 멈춘다. 언어가, 중력이 그들을 완전히 낚아채버리고 그들은 어느 순간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서로 다른 이들이 하나의 규칙에 꿰뚫려 같은 세계 속으로 포섭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상호작용을 하지만 상호작용만 한다, 신물 나게도.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대화하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놓인 서툰 언어로 만든 재미난 조각 같은 걸 바라보며 소통한다. 아직 언어에 잡아먹히지 않은 것이다, 아직 이 세계에 완전히 착륙하지 않은 것이다. 상호작용은 없다. 하지만 개별적인 작용이 동시에 일어나서 아이들은 각자에게 일어나는, 신비한 마음의 변화를 감지한다. 어른들은 그것을 대화라고 하지 않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대화란 그런 방식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마흔이 된 나는, 2014년의 나는, 내 주변의 마흔이 되어버린 것들에게, 더 이상 언어와 간격이 없는 이들에게, 대화는 가능하지만 진짜 작용은 없는 이들에게 조금은 질려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래도 나는 그들과는 조금 다른 부류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왔다. 회사에 취직한 지 10년이 넘었으니, 시스템이랄까 뭐 세상 돌아가는 걸 대충 알게 되어서 어느 정도 속물이 된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뭐랄까, 예전의 시간들에 대한 나름의 예의를 놓지 않고 살아왔다. 직장인밴드라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밴드라는 이름으로 취미 생활을 계속하면서 대학교 밴드부 시절의 기억들을 추억으로 날려버리지 않았고, MLB 모자를 눌러쓰고서―가끔은 뒤로도 써가며―야구장에 가서 아사히 슈퍼드라이의 정확하고 명쾌한 맛을 이따금 즐기기도 했고, 핸드폰 케이스 뒷면에는 내 시그니처를 박아 넣었으며, 스타벅스에 꽂혀있는 남성 잡지들을 자연스럽게 꺼내들어 ‘나의 이야기’로 읽으며 파스텔 톤 바지에 삐걱거리지 않는 양말을 신을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꽤 괜찮았던 거다. 낭만이라고 해야 할지 문화라고 해야 할지 정확한 단어를 갖다 붙이긴 힘들지만 어쨌거나 꽤 그럴 듯한 게 바로 나였다.

게스트하우스를 인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그랬다. 마흔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늙었기도 했지만 낡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몇몇 상사들을 보고 있자니,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런 게 되고 말겠구나 싶었던 거다. 그래서 뭔가 ‘그럴듯한’ 걸 찾았다. 일단 부동산에 관심이 갔는데, ‘○○곶’들 주변에 기이하리만치 식상하고 반듯한 모양새로 자리 잡고 있는 펜션은 싫었고, ‘○○만원 보장!’이라는 싸구려 술집의 네온사인 같은 원색적인 광고문구로 도배된 원룸 임대 사업도 별로였다. 그러다가 흥미가 간 게 게스트하우스였다. 건축사무소 소장인 학교 선배가 인테리어를 해 준 L 게스트하우스 사장들이 가게를 내어놓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라.

그때부터 시장조사를 해봤는데, 괜찮았다. 아직 성숙기에 접어든 사업도 아니었고, 설사 성숙기에 접어든다고 해도 갑자기 손님이 끊길 사업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스트하우스란 단어를 입에서 되뇌었을 때 느껴지는 신선하고 젊은 감각이 좋았다. 호텔도 아니고 모텔도 아니고 펜션도 아닌 지점에 위치하는 독특한 포지션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거다. 그래서 L 게스트하우스 사장들을 만났다.

L 게스트하우스는 그전에 세 명의 사람들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 그들 중 두 사람이 부부인 건 알고 있었는데, 대체 어느 쪽이 부부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어서 곤혹스러웠다. 두 남자 모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는 그 주제를 애써 피해가려했지만, 세 사람이 엉겨붙어있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떨쳐내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몇 가지 조건에 관해서 협상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세 사람은 이제 일에 질려버렸다며 빨리 떠나고 싶으니 조건 같은 건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알아서 해서, 게스트하우스를 싸게 인수했다.

2인실 다섯 개. 4인실 네 개. 6인실 한 개. 8인실 두 개. 하루 최대 숙박인원 60명. 모든 방은 벙크침대로 된 도미토리 형식이었고 화장실과 욕실―정확히 말하면 화장실 안에 있는 은색의 촉수 같은 호스―이 각 방마다 있었다. 특히 8인실 방에는 화장실이 두 개 있었는데 손님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호혜적인 자부심 같은 것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적어도 날강도는 아니지 않나 하는, 사회적 마지노선 보다 조금 더 앞쪽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사업가가 아닌가 하는, 유치하지만 언제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얄팍한 자만심을 가질 수 있어서 꽤 기분이 좋았다.

먼저 파악한 건 광고 및 홍보 상황이었다. 국내 최대 포털과 세계 최대 포털에 ‘부산여행’ ‘부산 게스트하우스’ ‘남포동 숙박’ 같은 검색어에 자동 연계될 수 있도록 이미 시스템이 잘 짜져 있었고, 특히나 인상적인 건 파워 블로거들에게 무료 숙박을 제공하면서 최근 3년 동안 잘 축적해놓은 ‘L 게스트하우스 후기’라는 제목으로 포스팅 된 많은 글이었다. 글들에는 ‘남포동’ ‘부산’ ‘게스트하우스’ ‘여행’ 같은 단어들이 알게 모르게 틈틈이 박혀있어서, 별 생각 없이 검색해 보는 사람들 혹은 게스트하우스에 한 번 묵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의식적으로 검색어를 쳐보는 사람들 모두 무의식적으로 포스팅된 글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들은 햇볕을 쬐고 싶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햇살을 맞아야만 했다.

조직은 이랬다. 세 명의 사장님들은 각자 역할을 맡고 있었다. 두 명의 남자는 한 주 단위로 번갈아 매니저 역할을 했다. 매니저 역할이란 건 이랬다. 한 마디로 모든 걸 다하는 거였다. 돈을 관리하니 재무, 고객을 응대하니 서비스, 사이트를 운영하고 홍보하니 영업, 시설을 보수하니 관리, 그리고 두 명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지시 및 감독해야 하니, 이를테면 인사까지.

가슴이 크고 분명히 담배를 피우는 게 분명한 피부톤이지만 세련된 메이크업으로 피부 변색을 감추고 있는 나머지 한 명은 식사와 게스트하우스 청소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특출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여자니까’ 라는 무의식적이고 무지하면서도 어쨌거나 간편해서 일은 돌아가게 만드는 명분에 따라 그 역할들을 맡은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노예였는데, 면화 농장으로 흑인노예들을 불러들이는 듯한 과도하게 사려 깊은 아르바이트생 공고문에 조금은 속아 넘어간 상태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L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를 모집합니다.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문화’경험을 쌓을 수 있고, 세계에 대한 열정을 키워 갈 수 있어요^^

일은 간단해요.

11시부터 오후 2시 정도까지, 하루에 세 시간만 객실정비를 해주시면 됩니다. \

숙식제공하구요~

   

  

‘임금은 제공하지 않아요^^;’ 라는 말은 적혀있지 않아서, 공고문을 본 아르바이트 지원생들이 “시급은요?” 라고 물으면, 숙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별다른 임금은 제공하지 않지만 숙식비만 해도 최저임금 이상은 충분히 된다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고 했다.

맞는 말이긴 했는데,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슴 크고 담배 피는 여자를 따라 청소를 한 뒤에 로비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는 아르바이트 생 두 명의 표정을 보니, 신나게 면화를 채집한 뒤에 허망한 표정으로 어디 담배 없나 하고 자신의 호주머니를 기웃거리다, 역시 한 개비도 없다는 걸 깨달은 뒤 그렇다면 절망이라도 하자, 하며 자기가 앉은 자리 위에 또 다시 눌러앉아 스스로에게 뭉개져버리는 노예의 표정과 거의 똑같아서 그저 말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숙식이 제공되지만 바로 그놈의 숙식이 제공되기 때문에, 일하는 곳이 곧 생활하는 곳이 되어버려서 잠깐 한눈을 팔고 휴식이라 해야 할지, 혹은 그늘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고요한 상태 속으로 들어가 있으려 하면, 의문이 생길 때엔 일단 관계자를 찾는다는 단순한 기제로 일관하는 손님들에게 노출되어 어쨌든 스태프라는 명목 때문에 남포동 근처 관광지를 설명한다거나, 수건을 갖다 주거나, 화장실 휴지를 갈아주는 잡스런 일들에 시달려야 해서 뭐랄까, 실질적으로는 무보수로 하고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나는 인사조직을 개편하기로 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걸 조금 더 다듬어 보기로 했다. 우선 매니저가 필요했다. 재무, 인사, 시설관리, 서비스, 모든 것을 해줄 한 사람이 필요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데스크에 있으면서 잠도 이곳에서 자 줄 사람. 기본적으로 딱히 힘든 일은 아니고, 또 외국어 실력도 키울 수 있으니 어쨌거나 나쁜 일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나.

그 다음은 담배 피고 가슴 큰 여자 대신 청소를 해주고 스태프들 식사를 해줄 억척스런 아줌마가 필요했다. 인력업체에 문의를 해봤더니 조선족 아줌마부터 돈이 필요한 혼자 사는 아줌마들까지 넘쳐나서 사람 구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했다. 총 열두 개의 객실을 청소하려면 그래도 두 명은 필요했다. (전임자들의 세팅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순이익을 고려했을 때, 아르바이트생은 숙식을 제공한다는 조건을 통해서 이용, 아니 사용, 아니 고용해야 했다. (전임자들의 세팅에는 역시 이유가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이렇게 차려라’ 라는 책을 읽어보니, 휴학을 하거나 워킹홀리데이에 합격되었는데 그 사이 남은 시간이 비게 되어서 여행도 할 겸, 또 시간도 죽일 겸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에서 숙식하며 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는 웹사이트가 있었고 나 또한 이곳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래도 사장인데, 내가 청소아줌마가 될 순 없었다. 아르바이트생 역할은 더더구나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매니저 일은? 사실 매니저 일은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매니저 일을 할 수 없었다. 다니는 회사도 계속 다녀야 했고, 무엇보다 그런 건 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사장이고, 그러니까 계획해서 틀을 짜주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 ‘틀’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틀린 부분을 메워줄 사람을 쓰면 틀린 게 사라지니까 상관은 없었다. 그러려고 돈 주어가며 사람을 쓰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성가신 일들을 더 이상 생각 하지 않아도 되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매니저’라는 만능열쇠 같은 직책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나는 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사장-매니저-청소아줌마-아르바이트생 두 명. 매니저가 팀장이라면 청소아줌마는 계장이다. 시스템은 잘 짜놓은 것 같다. 앞으로 큰 돈 안 바라고, 좀 낭만 있게 살고 싶다. 힐링이 대세지 않냐.

이렇게 말하는 동안 친구들은 역시 너답다, 너 괜히 대학교 때 밴드부에 있었던 게 아니었어, 하며 나를 칭찬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녀석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더니, 뭐, 당연한 거긴 하지만, 그냥 아저씨였다. 오고가는 아이들 이야기는 언제나 상대의 아이에 대한 칭찬으로 끝이 났지만 규격화된 제도 안에서 평가를 받기 전, 정확히는 입시의 세계에 포섭되기 전이라 언제 서로의 아이들을 숫자단위로 환산하여 말하게 될지 모른다는 예정된 불안감이 서서히 공기 속에서 차오르고 있었고, 집, 담보, 월급, 퇴직, 주식, 그리고 가끔씩 끼워다 넣는 야구 이야기가 대화의 전부에 근접하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친구들은 서른 살쯤 때부터는 자기 자신에게서 은퇴한 것 같았다. 이립의 나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때부터 녀석들은 분명히 뭔가 질이 달라져 있었다. 불안하지만 총명했던 녀석들도 안정되고 멍청한 이야기에 능숙해져 있었고, 어릴 때부터 안정되어 있고 영리했던 친구들은 이제는 아예 변화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안정 속에서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또, 더, 영리해져서 기품은 있되 영민한 감각은 보이지 않는 세련되고 우아하고 메스꺼운 보수층 엘리트의 냄새를 풍겨댔다.

그래서 나는 이 모임이 역겨우면서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 정도면 나는 나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완전히 ‘저쪽으로’ 가버린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얄팍한 자만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너는 진짜 그래도 재밌게 산다.”

“게스트하우스? 이야, 그거 매력 있는데?”

“아니 게스트하우스 해 보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냐?”

녀석들은 호의 어리고 호기심 어린 언사들을
내어놓았고,

“우와, 낭만 있어요.”

“저희 부부 가면 공짜로 재워 주시는 거죠?”

“언제 그렇게 돈을 모았어요, 역시 대기업이 좋네요.”

제수씨라 통칭되는 남성사회의 부산물들은 호들갑이 반쯤 섞인 목소리로 내게, 나의 인생에 호감을 표했다. 나는 그 말들에, 에이 별 거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짐짓 쑥스러운 듯 손사래 치면서도, 역시 나는 잘 살고 있다, 저들과 다르다, 하는 뿌듯한 자부심을 한 줄 또 한 줄 차곡차곡 올려나가다 문득 정민을 떠올렸다.

  

  

그 녀석이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나는 이 기분 좋은 부유감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 황급히 다른 대상으로 생각의 방향을 돌렸다. 아내에게로, 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로.

부모님의 강박적인 의무감과 싸워 가며 서른여덟이라는 빠르지는 않은 나이에 서른 살 직장 동료와 결혼했는데, 여러 면에서 우리는 괜찮은 사이였다. 비슷한 인테리어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활자에서 완전히 멀어지지 않은 사람들이라 문어체적인 공통사를 유지할 수 있는 나름의 유대감이 존재했으며, 아이는 천천히 가지는 걸로 하자는, 즉 개인의 삶에 대한 가치를 놓지 말자는 종교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세계관도 공유했다. 결혼식도 주례없이 하자는 데 서로가 태연히, 또 당연히 동의했는데 그건 사회규칙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간격이 비슷하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특히나 내가 좋아한 건 고전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반듯한 그녀의 하얀 얼굴과 서글서글한 눈매, 그리고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는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였다.

친구들과 제수씨들의 말들이 계속되어, 더 이상 쌓아둘 자리가 없을 정도로 뿌듯한 만족감이 차올랐을 때, 나는 자리를 떠나 오로지 예쁘기 때문에 산 하늘색 박스카를 타고서 집에 도착한 뒤 아직 자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던, 얼굴이 하얗고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아내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기다랗고 균형 잡힌 다리를 쓰다듬다가 내 아내의 그곳에 내 그것을 박아 넣었다.

요약하자면, 완벽한 하루였던 것이다.

그렇게 L 게스트하우스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매니저는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온 뒤 구직중인 스물일곱 남자 녀석이었다. 6개월을 하기로 했고 4개월을 하고 떠났다. 뭔가 크게 데이기라도 한 듯 단 한 시간만 인수인계를 하고 떠나는 바람에 두 번째 매니저가 상당히 고생을 했는데, 그렇게 백지상태로 일을 했기 때문에 역으로 전체 과정을 하나하나 자기 걸로 소화해가면서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서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나에게는 편한 일이 되었다. 아무런 전달사항이 없으니 스스로 업무분장을 만들고, 일과표를 만들고, 물품목록을 만들어서 엑셀 스프래드 시트에 떡 하니 저장을 해놓으니 이제 일에도 체계가 잡힌 셈이었다. 그 사이 청소 아줌마는 바뀌지 않았다.

- 사장님, 내 자르지 마이소, 내 잘합니다.

과연, 아줌마는 자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억척스러워서 노예, 아니,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잘 굴려 체크아웃 후 체크인 시간까지 청소를 잘도 해냈고, 조미료를 많이 쓰는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삼시 세끼 식사도 척척 내어 놓았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 두 명은 두 달 단위로 뽑아 썼다. 녀석들은 해당 사이트에서 이야기한 것대로 휴학 중이거나 워킹홀리데이에 합격해서 한국을 뜨는 날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그 둘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스태프 룸 2번방에서 함께 지냈다. 혹시나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아르바이트생은 남자 두 명 혹은 여자 두 명으로만 뽑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4월 1일부터 내가 사장님이 된 거긴 했지만 (사업자 등록은 아내 명의로 마쳤지만) 전임자들이 흥미를 잃고 관리소홀, 아니 그저 방치했던 구석구석의 공간들을 청소하고 다시 필요한 비품들을 채우는 데에만 한 달 정도가 걸렸다. 그 한 달만큼은 퇴근을 하고서도 꼬박꼬박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일을 해 나간다는 건 어떻게 보면 야생동물을 길들이는 과정과 비슷하다. 억센 손으로 목덜미를 움켜잡으면 그때부터는 끝나는 거다. 하지만 그 날뛰는 생명을 관리 가능한 사물과 유사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연 어디가 머리인가 하고 궁리하고 탐색하는 데 한 달은 걸린다. 그 시간 동안만큼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체계가 잡히고 어느 순간 일을 장악한 것 같은, 야생마의 등에 올라탄 카우보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을 길들이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가축은 가축이다. 알아서 움직이게 된다.

체계란 건 자기 마음대로 날 뛰는 생명을 관리 가능한 형태로 장악할 수 있는 도구다. 한 달 동안, 나는 게스트하우스의 머리를 찾아내서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1년간 회전율을 찬찬히 살폈고, 광고효과를 검토했으며, 정비되지 않은 객실을 수리했고, 매니저-청소아줌마-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인사조직도 확립했다. 구인도 끝났고, 구조파악도 끝났고,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내가 나를 구하는 것뿐이었다. 그 한 달이 지나고 난 뒤 부터는 가끔씩 느지막하게 게스트하우스에 들러 입출금 정도만 확인했다. 사실 결국 그걸로 귀결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 과정을 김우식은 일주일 만에 끝냈다)

그리고 내 몫은 이제 확립되었다는 확신이 든 이후부터는 직원들한테 좋게 대해주고 싶었다. 회식도 자주 했고, 매니저한테 아르바이트생 간식 안 떨어지게 잘 챙겨 두라는 말도 해 두었다. 걔네들 객지 와서 고생이다. 그러니까 매니저 니가 잘 해야 된다. 매니저라는 역할이 원래 양쪽 다 신경 써야 되는 거다. 사장하고, 평사원들, 하하, 이렇게 말하니 좀 우습지만 아무튼 사장하고 밑에 사람들, 이 두 집단에 낀 사이니까 그걸 잘 연결하는 게 니 역할이다. 완충지대가 되는 거지. 아줌마나, 알바생들 불만 있으면 잘 들어주고, 또 불만 안 생기게 잘 챙겨주고, 또 좀 아니다 싶으면 뭐라도 하고, 또 내 전달사항 잘 전해주고. 그러니까 매니저라는 게 책임이 있는 거다.

이렇게 말했을 때 두 번째 매니저 혜진이는 아 씨발 또 이 소리냐, 그런데 그게 맞긴 하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빨리 사회적인 언어에 노출된 혜진이는 ‘다 아니까, 빨리 말하셔.’ 라는 언짢은 기색을 적당히 숨기면서 또 일부러 살짝 드러내면서 조금은 거친 형식으로 자기주장을 했고, 나는 그녀의 영역이 어느 정도인지를 감지하면서 일을 시켰다.

  

  

그녀의 영역은 제로였다.
싫어하지만, 어쨌든 할 게 뻔하니까.

  

  

게다가 그녀에게는 일종의 가부장적인 태도가 존재해서, 청소아줌마를 이모님이라 호칭하며 성가시지만 그래도 정 많은 친척 정도로 생각하고, 아르바이트생들을 직계혈족처럼 껴안을 줄 알았기 때문에 문제랄 것이 생기기가 어려웠다. 그들 간에 가족 유사한 관계가 성립되어버리면 사실 웬만한 문제는 가족 내부의 문제가 되어버려서 탈은 있어도 결국은 조용한 걸로 간주되는 형식으로 해결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8개월이 흘렀다. 그녀는 처음 2개월 동안에는 반복되는 문의전화와 끊임없는 광고전화들, 해외 여섯 개 사이트에서 산발적으로 흘러들어오는 예약안내 메일과, 해외 수만 개의 사이트에서 흘러들어오는 필요한 건 아무것도 안내하지 않는 스팸 메일들, 본질은 무임금 노동에서 비롯된 피로감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지만 아직 사회를 잘 모르는 탓으로 대체 무엇 때문에 피곤한 건지 파악 못한 채 축 늘어지기 일쑤인 알바생들 챙기기, 멍청한 홈페이지 제작자 때문에 예약 초과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홈페이지 관리, 부족해 보이는 임금을 각종 비품들(휴지, 샴푸)에서 충당하려고 하는 이모님(청소아줌마), 저 먼 곳에서 지시만 내린 채 얼굴은 잘 안 비추는 사장님 사이에서 힘들어했지만, 역시 다년간의 사회 경험자답게, 이미 햇빛에 노출된 자답게, 어차피 탄 얼굴 좀 더 그을려도 되지 않나 하는 듯한 태도로 어딘가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보다는 조금 과도해 보이는 억척스러움으로 상황을 돌파해나가더니 3개월째부터는 그야말로 안정세였다.

그 사이 날마다 손님이 꽉 차는 7월에서 8월간의 신나는 성수기도 지나갔고, 서로 얼굴을 익히고 또 억지로라도 빠르게 친해져서 일하는 데 필요한 신속한 의사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회식도 틈틈이 하였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입구에 트리도 하나 멋지게 놔두어서, ‘이곳은 문화적이다’라는 걸 은연중에 과시한 사진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나-매니저-청소아줌마-알바생’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아버지 없는 집안을 지키는 아버지 같은 어머니-모성이 부족한 엄마를 보완하는 억척스럽고 질박한 이모님-노동하는 자식들’의 관계로 변해서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존재만은 명백한 ‘정’이 밴 관계가 되어 있었고, 충분치 않아도 생활은 가능한 월급 지급과, 숙식제공이라는, 일단은 본능적인 안정감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환경조성으로 나 또한 그리 욕먹지 않는 아버지 비슷한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백퍼센트 자신은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나는 나쁜 사장님은 아니었다. 최저임금법을 어기지 않았고, 밥도 빠트리지 않고 먹였고, 회식 자리에서는 늘 직원들이 고르고 싶은 걸 고르게 했다. 아니, 어떤 때는 먹고 싶어 하지 않아도 술도 사주고, 회도 사주곤 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있어서도 이 사업을 원룸 임대처럼 생각하며 그저 돈만 노리는 늙어빠진 수전노처럼 굴지도 않았다. 로비 입구에는 ‘연금술사‘ 같은 꽤 그럴 듯한 제목의 책들을 꽂아 두었고, 군데군데 외국원서도 사 놓아서 최소한의 분위기만큼은 늘 유지했다. 조명도 멍청하고 맥 빠진 하얀 형광등 대신, 전구색 형광등을 배치해서 ‘카페’스러운 톤을 만들었고, 장난감이라든가 미니어처 같은,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한 사람의 외곽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소비문화적인 허영심에 강하게 호소할 수 있는 물건들도 가져다 두었다.

그러니까, 괜찮은 거였다.

3월까지도 괜찮았다. 3월 초에 혜진이가 친척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며, 매니저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에도, 3월 10일날 김우식을 비롯한 일군의 지원자들과 면접을 나누었을 때에도, 선해 보이는 김우식이 친절한 매니저가 되어서 큰 사고 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면, 게스트하우스 평판에도 (혜진이는 특유의 억척스러움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친절해 보이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여 결국 그를 매니저로 채용했을 때에도, 한 시간만 인수인계를 하고 떠나버린 전임자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1주일은 같이 일하며 차근차근 일을 가르치겠다는 혜진이의 의사에, 그거 참 좋다, 그래야 마치 매니저가 바뀌지 않았던 것처럼, 볼트를 뺐다가 새로 끼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매끈하게 일이 돌아가겠구나 싶어, 3월 24일부터 김우식을 매니저 교육에 투입시킨 때까지도 괜찮았다. 하지만 김우식이 정식 매니저로 일하게 된 4월 1일부터는 뭔가, 이상했다.

아니다, 다시 말하는 편이 낫겠다. 3월 30일까지 괜찮았다. 혜진이 송별회 및 김우식 환영회 및 정기적인 결속 확인을 위한 회식을 실시한 3월 31일은 좋지 않았다.

우선 김우식에게 ‘환영회를 3월 31일 하겠다.’라는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내려 했을 때 그가 카톡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당연히 그가 나의 친구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카톡이라는 필드에,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문자를 보냈을 때, ‘환영회3월31일하자.먹고싶은거말해.’ 하며 다정한 배려를 그에게 비추었을 때, 돌아온 문자는 ‘그런 거엔 관심 없습니다.’ 이었다. 어? 하는 당혹감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로 화면을 보다가, 그 글자들에 깃들어 있는 백퍼센트의 진실한 기운이 느껴져서 가벼운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뭐 일이 있나 보지, 어머니가 아프실 수도 있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뒤 혜진이 송별회 및 정기적인 결속 확인을 위한 회식을 3월 31일 저녁 열 시에 게스트하우스 로비에서 실시하기로 했다. 내 머릿속 생각은 이랬다. 아마, 김우식은 열 시면 어디론가 나갈 것이고,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을 테니, 무언가 사정을 이야기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를 이해할 것이고, 다시 나의 가족과 유사한 사람들과 가족처럼 이야기하며 맥주도 마시고 치킨도 먹으며 이만하면 좋다, 라는 감정에 다 같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3월 31일 날 실제의 풍경은 내가 머릿속에 그려 놓았던 장면들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은 틀려있었다. 가장 두드러지게 달랐던 틀린그림찾기 속 틀린 그림은, 김우식이 게스트하우스 안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어떠한 변명도 대지 않았다. 로비에는 나, 사장, 이모님, 알바생 둘이 미리 배달된 통닭과 병맥주들 앞에 앉아 있었다. 이 그림은 옳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김우식은 데스크에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첫 번째 서랍을 열고 물건을 죄다 꺼내놓고 정리를 한 뒤, 두 번째 서랍을 열고 물건을 죄다 꺼내놓고 정리를 한 뒤, 세 번째 서랍을 열고 물건을 죄다 꺼내놓고 정리를 했다. 3월 31일 밤 열 시. 자기의 사수가 자기 옆에 없기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동작으로 물건들을 다 확인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아주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내일이면 4월인데 크리스마스 때 쓴 트리 장식들이 나오기도 했고, 언제 놓고 간 건지 알 수도 없는 유실물도 있었다. 또 전임사장들이 있을 때 썼던 철 지난 양식의 문서들도 많았다. 한 번은 필요한 작업이기는 했다. 그런데, 왜 지금이지?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왜 지금 그 일을 하지? 라는 질문에 그런 질문을 왜 하는 거지, 라며 반문할 게 뻔해 보이는 확고한 태도로 김우식은 네 번째 서랍을 열고 물건을 죄다 꺼내놓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 음……. 무슨 기준이 있는 거지. 함부로 다 버리면 안 될 텐데.

나는 그의 행동 자체에 문제를 삼기보다는 행동의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우회적으로 그의 행동을 공격해보기로 했다.

- 3개월이 기준입니다. 제 경험상 3개월 동안 쓰지 않은 물건은 다시 쓸 확률이 5%도 안 됩니다. 이건 그냥 혼란입니다.

그러고서 그는 다섯 번째 서랍을 열었다. 이대로라면 그는 모든 게스트하우스 내의 서랍을, ‘닫힌 곳’을 열 작정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염려스러웠다. 물론 게스트하우스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건 사장 입장에서 고맙고 또 바람직해 보이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있는데 50%는 김우식 본인을 위해 열린다고 해도 무방할 회식을 5%의 확률 들먹이며 그만 두어버린다는 것이, 뭐랄까, 앞으로의 그의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생각해 보았을 때 좀 무모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글 쓰는 친구라더니, 역시 세상 물정에 대해서 좀 둔한 것이 아닌가, 이러면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는데, 하는 인생 선배로서의 자연스러운 걱정도 들어서 뭐라도 한마디 해야 될 것 같았다.

- 그래, 우식 군. 이게 참 좋은 행동이긴 한데, 회식을 하지 그래. 다, 자네를 위해서야.
- 아니요, 그런 거엔 관심 없습니다.

그는 여섯 번째 서랍을 열다가 뒤돌아서 나의 눈을 바라보며 정중한 목소리로 100%의 진실을 담아 다시 이야기했다. 몸이 아픕니다, 다음번에는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가 아니었다. 관심이 없는 거였다. 이건 마치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 그의 태도와 비슷했다.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메시지에 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필드에 나오지를 않는다. 그는 거절이라는 방식으로 너무 큰 단위의 생활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3개월 동안 쓰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이는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럼 자네는 어떤 거에 관심이 있나?

다행히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순수한 종류의 의구심이 들어서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화를 내면서 말했다면, 어쩌면 나도 화가 났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완고한 확신도, 신경질적인 거부도, 발작적인 충동도 아니었다. ‘아니요, 1 더하기 1은 2입니다.’와 같은 느낌의 목소리로 그는 그런 거엔 관심 없다며, 자신의 상태를 마치 사실을 보고하듯 이야기 했다. 나는 그의 또 다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아닌 나의 마음속에 오히려 완고한 확신 같은 것이, 신경질적인 거부 같은 것이, 발작적인 충동 같은 것이 피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테트리스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차곡차곡 쌓인 물건들을 한 아름 품에 안더니 주방 옆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마치 다음 세트를 넘어가게 되어 기쁘지만, 다음 세트로 넘어가니 긴장해야겠다는 듯한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얼굴로 일곱 번째 서랍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식은 그를 제외한 형태로 실시되었다. 원래 그는 이를테면 상속자 역할을 해야 했다. 장녀는 또 다른 어딘가로 시집가고 그 뒤를 이은 장남이 이제 집을 이끌고, 사장 같은 아버지, 아니, 아버지 같은 사장인 내가 그 장남에게 우리 집안을 잘 이끌어달라는 부탁 겸 협박을 하고, 뭣도 모르고서 응석도 부리고 시무룩해 하기도 하는 노동하는 아이들 두 명과 잡다한 부분들에 관심은 많지만 진지한 궁리는 하지 못하고 질박함과 억척스러움 하나로만 대처하는 이모님에게 ‘자, 이제, 이 녀석이 장남이니, 잘 받들어 모십시오.’라고 선언하는 그런 회식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장남이 없었다. 뭔가 앞으로는 이상한 집안 구성이 될 것 같았다. 아버지. 어디서 온지 알 수 없는 아이들 두 명과 조금 별난 이모. 그리고 김우식. 이게 무슨 조합인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자각만은 분명하게 들었다.

하지만 장녀는 있지 않은가, 비록 오늘이 마지막 날이긴 하지만. 나는 딸을 떠나보내는 인자한 아버지의 얼굴로 혜진이를 바라보았는데 쌍꺼풀이 없어서 늘 담담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의 눈은 갑자기 벌레라도 본 듯 황급히 다른 곳을 찾았다. 쌍꺼풀이 없기 때문에 그 극적인 시선처리에는 부드러운 곡선의 완충지대가 없었고, 나는 변심한 딸을 대하는 듯한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다가서려는 억지스런 노력을 해보고 싶다는 추동을 느꼈다. 끝날 때가 되니 정을 떼려는 건가. 미리 상처받지 않겠다는 인간관계에 대한 역학적인 노력인 건가. 이유를 하나하나 따져보았지만, 어쩐지 그게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김우식과 그녀가 일주일을 같이 있지 않았는가. 저 아무것에도 관심 없는 사내와 일주일씩이나 말이다. 이유가 분명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 선생님, 아니, 사장님. 우식 씨가 일을 참 잘하는 것 같아요.
- 그래?

그러고서 혜진이는 데스크에서 나와 몇 개의 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로비 쪽에 앉았다. 로비 구석에서 노동하는 아이들이 별 다른 소동 없이 자질구레한 농담을 서로 주고받고 있었고, 이모님은 십분 늦겠다며 삼십분 늦을 예정이었다. 혜진이는 우식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장님. 저 사람 뭔가 달라요. 삼일 동안은 그냥 제가 하는 일을 바라보더라구요. 그래서 아, 천천히 일을 배우려는 건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배우겠다는 사람 같지가 않았어요. 좀……. 그냥, 관찰하는 것 같았어요. 삼일째까지 말 한마디 안 했어요. 질문도 없었구요. 그런데 사일째가 되니까 입이 트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구요. 선생님, 아니, 사장님 그 때까지도 그냥 별다를 게 없어보였는데,

- 잠깐만, 왜 너, 나보고 선생님이라 그래?
- 우식 씨가 자꾸 사장님을 선생님이라고 하더라구요. 거기에 좀 감염되었나봐요.

일주일 만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을 바꿨다? 이건 단순한 영향이 아니었다. 혜진이가 말한 데로 감염이라고 해야 옳을 좀 더 근본적인 작용이 우식에게서 혜진에게로 미친 것 같았다.

아무튼, 그 사일째부터 제가 가르쳐주는 일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노트에 적고 정리하면서, 외워버리더라구요. 어제까지도 착실히 배우기만 했어요.

- 그런데?

근데 오늘 아침부터, 제가 우식 씨한테 일을 완전히 넘기고 저는 틀린 부분이 있으면 검토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물러서 있었는데, 우선 마우스 위치부터 바꾸더니-우석은 왼손잡이였다-기다렸다는 듯이 스팸메일부터 정리하더라구요. 왜 일하다 보면 온갖 곳에서 스팸메일이 오잖아요. 한 시간 정도인가, 정리를 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필요한 메일만 왔고, 필요한 것들 중에서도 불필요한 걸 걸러내는 작업을 하더니 진짜 필요한 메일만 남게 되더라구요. 한 시간 만에 제가 받던 메일의 삼분의 이 정도는 줄인 것 같아요.

- 그, 그래서?

그 후부터 계속 그 작업이었어요. 거식증 걸린 사람처럼 무언가를 계속 거부하는 거예요. 가게 핸드폰 문자를 보더니 쓸데없는 광고회사, 은행 전화번호를 모조리 스팸등록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일주일 치 예약자 명단을 저장해서는 그 외의 사람 전화는 받지도 않았어요. 아, 그러고 보니 핸드폰으로 처음한 일이 ‘소리’모드에서 ‘진동’모드로 바꾼 거였어요. 전 7월, 8월 때 하루에 200번도 넘게 그 지겨운 ‘꿈꾸는 새소리’를 들었거든요. 근데 이 사람은 처음부터 소리 같은 건 제쳐두고 시작하더라구요.

뭐라도 추임새를 넣고 싶었는데, 점점 우식의 태도에 뭔가 근본적인 철학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은 정보를 모아야겠다고만 판단했다. 혜진은 말을 이어갔는데, 점점 눈빛에는 나에 대한 원망의 기색이 진해져갔고 우식을 이야기할 때에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한,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종교적인 위상에 근접한 비정상적인 광기 같은 것이 느껴졌는데,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저한테 말하더라구요.

“혜진 씨, 이건 굳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에요.”

제게 그런 말을 한 건 우식 씨가 처음이었어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왜 저는 하루에 200번 넘는 전화를 다 받아야 했죠? 왜 사장님은 제가 밥 먹을 때 전화를 받아도 게스트하우스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했죠? 왜 사장님은 제게 정작 필요한 건 가르쳐주지 않았죠? 제가 좀 더 사람답게 일할 수도 있었잖아요? 왜 저를 그냥 햇빛에 노출시켰죠? 그러면 결국 말라죽는다구요!

분명히 우식에게서 전해진 게 분명한 광기가 여성성을 만나 좀 더 효과적이고 날카롭게 분출되었다. 채찍으로 후려치듯 혜진은 의문형의 분노로 로비의 공기를 갈랐는데, 놀란 아이들은 자질구레한 농담을 제압하는 묵직한 소동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아니에요, 선생님, 죄송해요. 잘해주셨는데. 그냥 하던 이야기를 할게요.

그 하던 이야기가 가장 본질적인 문제였는데도 그녀는 ‘그냥’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기로 했다. 아마 그건 그녀의 결심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관성이었을 것이다. 이미 새로운 감각에, 감정에, 지각에 눈뜬 이가 내딛은 한 발짝을 거두어들이지 않고서 그대로 내딛는 관성. 죄송하단 말은 예전의 습관이지 앞으로의 습성은 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사람 여섯 개 해외예약사이트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았어요. 원래 다 따로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있을 거라고, 분명히 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생각한 거면, 누군가는 생각했을 거라고. 그런데 말이에요, 진짜 그런 게 있었어요. 그 전에는 여섯 개 웹사이트에다가 우리 홈페이지까지 해서 일곱 개 홈페이지가 다 따로 노니까, 오버부킹 나기가 일쑤였잖아요. 그럼 또 환불해 주어야 되고, 미안하다고 굽실거려야 되고. 근데, 그 사람은 처음부터 그걸 찾더라구요. 이게 문제라고. 저 이때까지 실수하면 사장님한테 미안해했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실수할 수밖에 없네요, 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그건 사장님이 저한테 보이는 호의랑은 다른 거였어요. 사장님은 제가 잘못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주고서, 제가 잘못하면 용서했잖아요. 맛있는 것도 사주고, 괜찮다, 이것도 경험이다 그러구. 그런데 우식 씨는―그 때 우식은 아마 열 번째, 혹은 열한 번째 서랍 정리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그게 제 잘못이 아니라고 가르쳐 줬어요.

그리고 이모님이 왔다. 아버지와 딸이 고용주와 근로자의 냉정한 법적관계로 탈바꿈했다는 것도 모르고서 이모님은 우리 사장님 오늘 인물 좋으시네, 아구 우리 예쁜 혜진이 하며 정말 친척 같은 살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이 이편과 저편으로 나뉜 채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공 · 존 · 을, 문자 그대로 존재만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전, 밴드부의 정민과 이야기 나눌 때도 그랬다. 정민은 말이 없는 베이스 주자였지만 말이 없어서인지 대신 노래를 잘 만들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선배들과 동기에 둘러싸여 있을 때 정민은 내게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밴드부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 그저 묻혀 있었다. 많은 선배들은 나를 좋아했고 정민은 인정했다. 그건 특이한 일이었는데, 정민에게서 거리감을 느끼는 선배들조차 정민이 만든 곡들에 대해서만큼은 이건 뭔가 다르다, 이런 게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경외감 유사한 감정을 느껴서 그 경외감을 바탕으로 정민과 가까워지려는 앞뒤가 묘하게 맞지 않는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내가 만든 노래들은 좋다, 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좋다가 다였다.

좋다가 다라.

그렇다고 해서 정민에게 내가 적개심을 느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정민이 내게 적개심을 드러내고는 했다. 특히 두 사람만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사교적인 말들이 필요하지 않을 때.

비가 오고 주변이 조용해진 어떤 날, 밴드부 동아리방에는 정민과 나 둘 밖에 없었고, 그 녀석은 베이스를, 나는 기타를 둥둥 거리며 이를테면 놀이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정민은 내게 질렸다는 표정으로, 정말 다시는 보기 싫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 넌 정말 한 치도 안 벗어나는 구나.

그리고 그때, 이상하게도 그의 적개심에 공격적인 기색 보다는 이상하고 절망스러운 슬픔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가 적개심을 느끼는, 아니 슬픔을 느끼고 있는 대상의 어떤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할 때, 이상하게도 나는 화가 아닌 억울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정민을 늘 인정해왔다. 그러나 정민은 절대로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래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허접한 녀석들과는 대화라고 할 만한 것들을 나누면서도, 정작 음악을 좀 할 줄 아는 나에게는 기껏해야 빈정거리는 기색을 보이는 게 다였다. 하지만 나는 정민이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내가 생각해도 그 나이 대의 수준을 벗어난 관대함으로 그런 그를 받아들였다. 일종의 이해심이 내게는 늘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나 또한 이상하고 절망스러운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나의 이해심에는 이상하고 절망스러운 억울함이 들어차 있다는 걸 말이다.

- 왜 나를 그렇게 인정하지 못하지? 나도 할 만큼은 해.

정민은 내 눈을 바라보았는데, 그 때 그의 시선은 나에게 닿지 않고 있었다. 그건 아주 독특한 감각이어서 나는 마치 다른 시공간에 접속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벽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인간적인 상호작용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로 시선이 향해있었다.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는 자기 입에서 맴도는 듯한 질문을 했다. 그건 누군가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같은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녀석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밴드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지만 나와 정민의 외부에 있었다. 같은 공간이었지만, 공간만 같을 뿐이었다.

회식은 진행되었다. 쌍꺼풀 없는 혜진의 눈에는 이제 막 촉발된, 늘 존재했지만 명확한 실체가 없어서, 혹은 근거가 없어서 길을 잃기 일쑤였던 정당성에 대한 강박적인 욕구가 서려있어서 닭다리나 뜯어 먹는 모양새가 썩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이모는 상황의 이질성은 느끼면서도 어긋난 상황 이 자체가 잘못된 것이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하고 맹목적이고 일정량의 폭력성을 가진 무지로 일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안간힘을 썼고, 노동하는 아이들은 회식도 노동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하며 무언가, 열심히 먹고, 열심히 이야기 해댔다

그리고 우식은 그 사이 데스크 주변 서랍 정리를 다 마친 듯 지하창고로 내려갔다. 그는 아마 같은 작업을 반복할 것이었다. 물건을 꺼내고, 필요 없는 걸 모은 뒤, 한 번에 해결한다. 테트리스 블록이 내려오고, 차곡차곡 쌓은 뒤, 한 번에 해소한다. 그 순간적인 해소상태, 다시 블록이 내려오겠지만 순간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다. 그 정적―

나는 우식이 말한 ‘필요한 그늘’이라는 것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날 혜진은 내게 인사 없이 먼저 자리에서 떠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기분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말끔하고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는 빌어먹을 하늘색 박스카를 대신 운전해 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그 인간들하고 결국 같은 거 아닐까, 하는 기분 나쁜 자괴감이 이미 내 장악능력을 떠난 세트의 테트리스 블록들처럼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무규칙적으로 쌓였고 더 이상은 화면을 유지할 수 없어서 게임이 끝날 것 같을 때 간신히 집에 도착해서는, 하늘거리는 하얀 이불 아래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 얼굴이 하얗고 서글서글한 눈을 가진 내 아내의 얼굴을 돌리고서 목덜미에 입을 갖다 댄 뒤, 둥글고 살점 많은 엉덩이를 주무르다가 내 그것을 박아 넣었다.

-거 긴 그곳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녀가 막바지의 예의를 갖추어 안간힘을 쓰며 다급히 말할 때, 나는 내게 뭔가 오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분 나쁜 열패감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유지하고 있는 ‘그럴 듯한 세계’라는 것이 정말 말 그대로 그럴듯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 체념적인 의심을 하는 와중에 어쩐지 나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할 만큼은 하고 있다, 언제나. 아내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원래의 자세로 누웠고 나는 순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자기 감정에 대한 균형감각을 반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반은 무의식적으로 내팽개쳤다는 걸 알았다.

- 미안.
- 아니, 괜찮아요.

그녀의 서글서글한 눈매에는,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에는, 편집증적이고 강박적인 인간들은 절대 맛보지 못할 편안한 평온함이 있었다. 나는 방금 전까지 난폭했지만, 금세 아기처럼 순해져서는 그녀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부드러운 흙 같아서 내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꽤 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과는 다르게. 그리고 또 다른 그들을 피해서.

그리고 우식도 꽤 잘해나갔다. 나는 4월 1일 게스트하우스에 또 들렀다. 꼭 가야할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은 우식이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 지 궁금한 마음이 커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출근하기 전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우식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할 정도였으니까. 그는 이런 일들에 ‘관심 없었겠지만.’ 아내는 재미난 사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를 따라 웃어보였지만, 뭔가 본질적인 지점이 어긋난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4월 1일 밤 열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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