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뽑기

어렸을 때 문방구 앞에 쭈그려 앉아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뽑기”를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동그란 플라스틱 캡슐 안에 뭐가 들었을까 기대도 하고 작은 설명서에 그려져 있는 동물을 다 모으고 싶어서 아껴둔 100원을 또다시 꺼내기도 했지요. 저는 공룡 시리즈를 열심히 모았어요. 부푼 마음으로 캡슐을 열었는데 이미 가지고 있는 공룡이 나왔을 때의 실망감이나 흔치 않은 공룡이 나왔을 때의 기쁨! 지금도 두근거려요. 그런 뽑기가 일본에서는 어른들의 장난감이라는 입지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뽑기의 공식 명칭은 캡슐토이라고 하는데요. 세대나 만드는 회사에 따라 명칭이 달라요. 제가 가장 많이 들어본 명칭은 ‘가챠가챠’에요. 뽑기를 돌릴 때 나는 소리가 가챠가챠 하고 들리나 봐요. 그 밖에도 가샤가샤, 가챠뽕, 가샤뽕 등 비슷한 이름이 많습니다.
원래 뽑기 기계는 미국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해요. 미국의 무역인이 일본의 장난감 회사 사장에게 “뽑기를 일본에 널리 퍼뜨려보지 않겠나?” 하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회사를 설립, 동경의 아사쿠사에 뽑기 제1호를 설치하게 되었어요. 시작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뽑기는 전국에서 설치 의뢰가 쇄도하게 되었고, 지금의 일본에서도 식지 않는 인기로 사랑받고 있답니다.
일본의 뽑기는 정말 인기가 많아서 영화관 같은 시설에 가끔가다 있는 정도가 아니에요. 아예 뽑기만 놓여 있는 뽑기 전문 가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뽑기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요. 심지어 큰 가전제품 전문점에도 뽑기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뽑기를 이용하는 사람도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합니다. 인기 있는 만화영화의 캐릭터 상품은 물론이고 어른들이 모으고 싶어하는 수집용 피규어, 핸드폰 고리, 액세서리 등 뽑기의 내용은 셀 수 없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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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
도망가라냥!
너무 자유로운 여신상
  
  
유명한 뽑기 시리즈를 소개할게요. ‘컵의 후치코’ 시리즈는 뽑기로 출시되어 서적, 사진 전시회, 미니 드라마 등 다른 미디어로 전개될 정도로 큰 인기를 받았어요. ‘컵의 후치코’가 뭐냐고요? 컵을 활용해 꾸밀 수 있는 ‘후치코’라는 여자 회사원 피규어예요. 컵에 앉아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깊은 표정을 짓고 있는 후치코, 컵을 철봉처럼 이용하여 거꾸로 매달린 후치코,  들고 있는 레몬을 금방이라도 짜 줄 것 같은 후치코 등 컵에 꾸밀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발상의 ‘컵의 후치코’는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유행한답니다.
‘통통한 군인’도 모으고 싶은 심리를 자극하는 시리즈예요. 디즈니 영화 <토이 스토리>에서 본 적 있는 초록색 군인 장난감을 아시나요? 그 늠름한 군인들이 조금 살이 쪄버렸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어색한 군인들입니다. 멋진 포즈를 취하려 하지만 마냥 포근한 느낌만 듭니다.
엊그제 뉴스에서 소개된 캡슐토이 또한 재치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컵의 후치코’보다는 좀 더 실용적인 스마트폰 스탠드예요. 스마트폰 스탠드 뒤에 숨어있는 고양이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뭐라고 외치고 있을까요? ‘여기는 내가 제압한다! 너는 먼저 도망가라냥!’ 이것이 바로 캡슐토이 시리즈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동료를 살리기 위해 혼자 싸우려 하는 애처로운 고양이의 적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격차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나게 합니다.
이 밖에도 ‘너무나 자유로운 여신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 등 일본의 캡슐토이는 모아 보고 싶은 시리즈가 아주 많답니다.
‘키덜트’라는 키드(어린이)와 어덜트(어른)의 합성어가 생길 정도로 요즘에는 어렸을 적 놀이를 어른이 되어서도 즐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프라모델처럼 전문가들이 주로 즐기는 완구에 비해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어른들의 장난감, 뽑기. 주머니에 아껴둔 동전을 넣고 제일 재미있어 보이는 뽑기 시리즈를 모으러 가는 건 어떠세요?

글 사진 박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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