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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5호] 기본소득의 정치철학적 정당성1
이 질문을 다루기 위해서는 정당성의 준거를 먼저 설정해야 한다. 종국적으로, 모든 정당화는 척도의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기본소득은 척도 x에 입각할 때 정당하지만, 척도 y에 입각할 때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정당성에 관한 논의는 척도에 관한 논의이며, 어떤 척도가 과연 척도로서 자격이 있는가라는 문제에 관한 논의일 것이다. 이 글에서 채택한 척도는 ‘자유’와 ‘공화국’이다. 두 가지 모두 익히 알려진 전통적인 준거점들이다. 자유의 근대적 개념은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정당화의 중심 개념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정치ㆍ사회철학과 경제윤리학의 중심 범주이다. 이 글은 자유 개념의 구성적 전제가 무엇인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와 함께 개인의 자유 개념에는 구성적 전제가 필요하다는 점과, 그것은 지구에 대한 모든 인류의 공유(共有)라는 점이 밝혀질 것이다. 서로 다른 조건과 처지에 서 있는 모든 개인의 ‘공통성’은 지구에 대하여 모든 인류가 가지는 공유자로서의 자격일 것이다. 기본소득의 정당성 논증을 위하여 이 글이 이와 같은 전개 방식을 취하는 까닭은 한편으로는 자유의 가능 조건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 개념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인류의 공동사회로서의 ‘공화국’ 개념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공화국’은 기본소득의 정당성 검토를 위해 이 글에서 채택한 두 번째 준거인데, 이는 자유의 개념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지닌다. 그것은 멀리 그리스와 로마까지 소급한다. 물론 ‘공화국’ 이념의 발전사를 재구성하는 일이 이 글의 주된 관심사인 것은 아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적절한 정당성 이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공유의 관계를 ‘보편적 공화국’ 개념의 내적 구조로서 확보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자유의 관점으로부터의 정당화는 기본소득에 관한 현대적 논의를 이끌어 온 판 빠레이스(van Parijs)의 작업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Real Freedom for All)』에서 판 빠레이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받아들이기 힘든 불평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자유의 중요성 사이에서 두 번째를 지키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특히 제1장에서 그는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 자유의 목표들, 자유 개념을 구성하는 전제인 강제 개념의 두 유형,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의 구분 등을 특유의 분석적 엄밀함 속에 검토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자유 개념은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로서 재구성된다. 판 빠레이스는 자신의 입장을 ‘실질적 자유지상주의’(Real-libertarianism)라 규정하며 단순히 평등주의적일 뿐인 그 외의 ‘좌파 자유지상주의’(Left-libertarianism)와 구분한다. 소유(ownership) 개념을 자원에 대한 모두의 ‘동등한 몫’(equal share)으로 정식화하는 힐럴 스타이너(Hillel Steiner)와 비교할 때, 자유 및 권리 개념에 관한 판 빠레이스의 재구성은 ‘자기소유권의 원칙(principle of self-ownership)’과 ‘최소수혜자 우선의 원칙(principle of leximin priority)’ 모두를 더 많이 보장할 뿐만 아니라 그 둘의 상관관계를 더욱 정연하게 만든다. 이처럼 재구성된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의 개념은 정의(Justice) 개념 특유의 기초인 개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종류의 연대성의 지평을 열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유지상주의의 지반 위에 수립된 논구 중에서 유일하게 기본소득의 정당화에 적합하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통용되는 자유의 개념은 소극적 자유의 개념이다. 그것은 외적 강제(coercion)가 없는 상태를 뜻하고 이와 같은 자유 개념은 홉스(Thomas Hobbes)까지 소급된다. 홉스는 권리와 법을 자유와 의무의 쌍에 대응시키면서 권리는 법이 없는 곳에 존재하며 자유는 의무 및 강제가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그에게 자유는 권리의, 강제는 법의 핵심적 구성요소이다. 이와 같은 자유 개념은 로크 이후에는 벤담(J. Bentham)에게서, 그리고 그린(Thomas Hill Green) 이후에는 벌린(Isaiah Berlin)에게서 재현된다.
그러면 로크의 자유개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홉스의 법 개념인 명령설(imperative theory of Law)이 로크의 법 개념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크에게 법은 이성과 정확히 일치하며 법과 권리, 강제와 자유는 홉스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대립되지 않는다. 이 점은 『통치론 제2부(Second Treatise)』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참다운 의미에서 법이란 자유롭고 지적인 행위자가 자신의 적절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제한하기보다는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법(강제)이 없는 곳에는 권리(자유)도 없다고 보는 홉스와는 정반대로 로크는 “법이 없는 곳에서는 자유를 누릴 수도 없다.”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그는 “자유란 타인의 구속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라는 소극적 자유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법이 없는 곳에서는 그것이(그러한 자유가)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결국 로크에게 법은 자유와 권리를 가능하게 해 주는 전제로서 파악된다.
‘고전적 공화주의’의 공화국 개념은 ‘사적인 것’으로부터의 영역적인 준별을 벗어나지 못한다. 준별 그 자체가 ‘공공의 것’의 우위를 확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위는 공적 영역에의 ‘참여’를 인간의 본래적 목적으로 간주하는 목적론적 형이상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에, 마키아벨리로부터 출발하는 지적 전통에서 공화국 개념은 ‘시민적 덕성에 입각한 정치공동체’이다. 이 공화주의의 핵심은 ‘덕성’이며, 이와 함께 시민적 의무를 고취하는 동기(motivation)의 측면이 강조된다. 고전 공화주의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인 ‘참여’는 목적론적 근거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과정적이고 동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덕성’ 중심의 논변은 ‘공동의 것’에 대한 참여의 문제에서 이성적 절차보다 정서적 통일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특징은 일정 정도에서는 일반의지 창설의 기초를 정서적 공감으로 보는 루소의 공화주의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루소의 ‘공화국’의 개념적 핵심이 ‘정서적 통일’에 의해 생성된 ‘일반의지’라기 보다 무(無)지배의 상태, 곧 ‘지배가 없는 공화국’이라는 점에서, 루소는 마키아벨리 전통으로부터 일정한 단절을 의미한다. 아울러 루소의 공화주의는 일반의지에 입각한 통일만을 지향하지 않으며 사회개혁적이다. 정치공동체는 적어도 불평등이 타인의 지배가 되지 않을 정도까지는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 로크에게 소유의 보장이 국가의 설립 목적인 것과는 정반대로 루소에게 불평등의 시정은 국가 설립의 참된 목적으로 나타난다. 칸트에게 공화국은 ‘만인과 만인의 결합된 의지’이며, 그러한 의지를 수립시키는 이성법적 절차이자 공적 원칙 그 자체이다. 칸트에게 ‘공화국’은 더 이상 사적 개인들의 세계와 분리된 영역도 아니며, ‘공적인 것’의 우위나 공적 영역에의 참여가 특별하게 논증 목표가 되지도 않는다. 그 대신에 칸트가 말하는 “이념적 공화국(Ideale Republik)”은 현실에 대해 규제적 원리가 된다. 즉 ‘공화국의 이념’은 ‘원천적 계약’ 개념에 기초하고 사법 체계를 포함한 모든 제도에 대해 규제적 이념으로 작동한다. ‘공화국’의 개념은 이 말의 라틴어 어원(res publica)에 나타나는 ‘모두의 것’이라는 공간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공적인 것’의 우위와 ‘공적인 일’에 대한 ‘참여’의 개념으로 전개되었다. 칸트에 이르러서 공화국 개념은 제도 일체에 대한 보편적이고 공적인 원칙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