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8호] 일상의 덧_집_성수진기자

            
                 

사촌의 결혼식이 있어 성남에 갔다 돌아오는 길. 엄마는 올라온 김에 신혼살림을 살았던 수원 조원동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누구 엄마는 여태 거기 살고 있을까, 카센터도 하고 있을까, 30년도 전 옛날의 사람과 공간의 흔적을 마주할 생각에 들뜬 것 같았다. 


진작에 성공해서 다른 데로 이사 갔겠지. 아빠는, 그런 기대일랑 접으라고 말했지만, 이내 그 집에 관해 이야기했다. 단칸방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밥 먹는 상 하나를 채 펼 수도 없던 집에 관해서 말이다. 공동 화장실을 쓰는 그 작은 방에서 나는 태어났다고 한다. 아, 물론 산부인과에서.


가는 길은 복잡하고 막혔다. 수도권은 살 만한 데가 못된다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그곳에 다 왔는지, 엄마 말소리에 깼다. 옛날 모습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다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운전하는 아빠에게 엄마는, 차 세워 둘 데도 없고 내려 봤자 옛날 집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며 그냥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렇게 차는 곧장 대전으로 향했다.
30년이 더 지났는데, 이렇게 변한 게 당연하지. 씁쓸한 몇 마디와 함께 옛집의 흔적이 남아 있을 뻔한 곳을 떠났다. 변하지 않은 곳은 종합운동장뿐인가 보다. 종합운동장에서 찍은 사진이 몇 장 있어,내 가장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란 걸 알고 있었다. 졸린 눈을 잠깐씩 뜨며 흘깃 봤는데, 별다른 느낌이 생기지는 않았다.


30년도 더 전에 살던 집을 떠나고 두 분은 그 근처에 가지 않았다. 부러 찾진 않았고 근처에 갈 일이 없었다. 언제라도 다시 찾아가면 있을 것 같았던 집은, 집은커녕 그 위치가 어디였는지도 쉽게 알 수 없을 만큼 기억에만 남은 게 되었다. 
수원을 떠나고 이사를 많이 다녔다. 금산, 마산, 경산, 서울, 대구를 거쳐 우리 식구가 자리 잡은 곳이 대전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오래 산 도시가 대전이다. 20년 가까이 같은 집에 살았다가 1년 전엔 이사했다.


옛날 집 근처에 갈 일이 생기면 꼭 살던 아파트 동 앞에서 층수를 세어 본다. 옛날에는 세지 않고도 우리 집 불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봤었다. 불이 꺼져 있으면 괜히 좋아서 아무도 없는 집으로 빨리 들어가곤 했다.
얼마 전, 옛날 집 주변에 갈 일이 있었는데 1년 사이에 번쩍번쩍하는 네온사인이 더 많이 생겼다. 30년쯤 지나면 이곳도 어디가 어디인지 모를 만큼 변할 것이다. 잠시 잊고 지내다 다시 찾으면 왠지 모르게 허무한 기분을 느끼게 될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공간이 변하는 속도와 같이 어쩌면 더 빠르게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 옛 동네와 옛집이 그대로이길 바라는 마음은, 내 과거의 어느 때를 공간이 조금은 머금고 있어 주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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