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8호] 일상의 덧 _ 이혜정

   
  
흰 고양이에 물리다

남편의 후배 원룸에 하얀 고양이 설이가 산다. 집이 가까운 관계로 집 주인이 장기간 출타 중일 때 남편과 함께 종종 고양이 밥을 챙겨 주러 간 적이 있다. 설이는 청소년 고양이이다가, 지금은 제법 큰 고양이가 되었다. 어떤 종인지 모르겠으나 새하얀 털에 분홍빛의 코와 귀가 도드라진 모양이 곱다. 

            
이번에 오랜만에 들러 고양이와 놀아 주다가 고양이를 한번 껴안아 보려 했다.
원래 개나 고양이를 예뻐하긴 해도 좀 겁을 내는 편이라 껴안는다든지 하는 과감한 시도는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그러고 싶었다. 
고양이의 겨드랑이를 잡고, 번쩍 들어 올린 다음 가슴에 끌어안았다. 부드러웠다. 흡족함도 잠시 고양이는 펄쩍 품을 벗어난다. 잠시 후 다시 시도. 이번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 내가 하려는 짓을 알고 잽싸게 도망친다. 번쩍 녀석을 붙잡고 끌어안는데, 녀석이 턱을 물었다. 제법 아팠다. 턱에 긁힌 자국이 붉게 남았다. 

           
내 고양이라면 달랐을까.  
물지 않았을까? 
잘 안겼을까? 
새하얀 털과 부드러운 감촉, 하지만 거기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숨겨져 있다. 고양이의 경계심. 그 경계심이야말로 고양이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에 보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른다는 구절이 나온다. 봄과 고양이,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 같다. 부드럽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야성이 숨겨져 있다. 봄을 끌어안고 뺨을 부비면 부드러운 빛과 향기가 묻어날 것 같다. 이제 막 목련이 벌어지기 시작해 흰 꽃잎들이 싱싱한 빛을 뿜는다. 곧 다른 꽃들도 만개할 테고 4월도 멀지 않았다. 그렇지만 봄은 항상 어려운 계절. 겨우내 묻어 둔 시간과 감각들이 깨어나며 기억을 들쑤신다. 그 아래서 드러나는 건 고양이의 야성 같은, “미친 봄의 불길”이다. 
무엇을 끌어올려 꽃을 피울까. 아직 내 안에 무언가가 남아 있나. 고양이에게 물린 턱을 손으로 문지르며 들여다보는, 봄, 봄이다.


글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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