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8호] 특집_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걷기 좋은 중앙로를 바라며

대전역에서부터 옛 충남도청사까지 1.1km의 중앙로를 한 번이라도 걸어 보면 알 수 있다. 걷기 좋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지상으로만 걸어서는 1.1km 구간을 바로 지날 수 없고 지하를 통해야 하는데, 또 지하로만 걷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전천이 흐르는 지점에서 지하상가가 끊겼다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중앙로를 지상으로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는 건 차뿐이다. 대전시는 지난해 5월,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9월에서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한 번, 중앙로 차도에 차의 통행을 막고 시민에게 개방하는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진행했다. 평소라면 지상으로 한 번에 지날 수 없는 중앙로를 차와 신호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걷는 것은 자유로운 경험이었다. 올 3월 재개하려고 했던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는 대전시와 중구의 입장 차이로 진행하지 않았다. 한편, 중앙로 쪽으로 나오려면 지하상가를 통과해야 했던 옛 충남도청사 앞에 횡단보도를 놓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시민이 논의의 주체에서 빠져 있다는 것이다.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와 옛 충남도청사 앞 횡단보도 설치 문제 모두와 관련해서 이해 당사자를 제외한 일반시민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옛 충남도청사 앞, 
횡단보도 놓는다면?

옛 충남도청사 앞에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이야 그리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지 않지만, 전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횡단보도 하나를 두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지난 1월, 문화예술의거리 대흥동, 은행동 상가번영회 장수현 회장은 850명의 상인, 주민의 서명을 받아 대전시 도시재생본부에 옛 충남도청사 앞에 횡단보도를 만들어 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장수현 회장은, 지난 1월 이전에도 지방청 등에 여러 번 민원을 넣었다고 말했다.


대흥동, 은행동 상가번영회의 입장은 이렇다. 장수현 회장은 “대전시민대학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지하상가로 건너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대흥동 쪽으로 넘어오지 않고 돌아간다. 횡단보도로 동선을 확보하면 많은 사람이 대흥동 쪽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원래 괜찮았던 중앙로 상권이, 대전시청과 충남도청이 떠나고 나서 잘 되지 않는다.”라며 “횡단보도 설치는 큰돈 안 들이고 상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대전시는 말로만 원도심 활성화를 얘기하지 말고 행정적으로 해결해 줘야 할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앙로지하상가 운영위원회의 입장은 반대다. 정인수 회장은 “지하상가 위에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은 지하상가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라며 “횡단보도를 만드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확대 설치해야 한다. 지하상가도 하나의 상권으로 시에서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인수 회장은 이어, “1980년대 후반 지하상가를 분양받을 때, 조건 자체가 지상에 횡단보도를 없애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실평수 기준, 지하상가 6평 정도가 둔산동 크로바 아파트 45평 정도와 맞먹는 금액이었다.”라며, 분양 당시의 조건, 기대와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대전시청과 충남도청, 대전역이 가까운 거리에 있고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반드시 지하상가를 통해 가야 하니, 자연스레 상권은 활성화될 것이었고 당연히 분양가도 비쌌다. 시간이 지나며, 시민의 보행권 문제로 지하상가 위 지상에 몇 개의 횡단보도를 설치한다고 했을 때도, 지하상가 상인들은 결사반대했다. 정인수 회장은 “이안경원, 성심당, 삼성생명 앞에 횡단보도를 놓은 이후, 그 일대가 몰락했을 정도로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양측 입장은 팽팽했다. 각각 횡단보도가 생겨야 하는 이유와 생겨서는 안 되는 이유를 강력하게 내세우며 반대편의 입장이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상상가는 “지상상권이 살아야 지하상권도 산다. 지하상가가 자신들 논리로만 횡단보도 설치를 반대하는 것은 이기적이다.”라고 말하고, 지하상가는 “상권을 살리기 위해 지하상가 자체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겨우 상권을 활성화해 놓았다. 지상상가는 그러한 노력 없이 횡단보도 설치로 상권 활성화를 이루려 한다.”라고 말한다. 

                       

                        

상권 싸움 속 ‘시민’은?

지하상가가 있는 곳에 횡단보도를 놓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특히 지상상가와 지하상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지자체도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옛 충남도청사 앞 횡단보도 설치 문제를 두고 지상상가와 지하상가의 입장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는 가운데, 시민의 입장은 논의에서 밀려나 있는 듯하다. 횡단보도가 생기면 좋지만, 당장의 이해가 맞닿아 있지 않고 그렇다 보니 함께 목소리를 낼 단체도 없다. 


목원대학교 도시공학과 최정우 교수는 “횡단보도는 지상상가, 지하상가의 문제라기보다 보행권의 문제다. 실제로 지하보도나 육교는 모든 이가 이용하는 데 편리하지 않다. 입체적 시설보다 평면 시설이 편한 것은 당연하다.”라며 “선진 도시에서는 횡단보도 개수를 늘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보행 활성화가 되면 경제 활성화가 된다는 것에 같은 의견이다. 단기간의 변수는 있지만 보행 활성화가 되면, 인구 유입이 많아져 자연스레 상업 활성화에까지 이르게 된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시민의 보행권이 우선이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은 보행 환경을 만드는 게 현재의 팽팽한 이권 다툼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옛 충남도청사 앞에 횡단보도를 놓는 것과 관련해서 대전시 도시재생본부의 입장은 분명하지 않지만, 방향 설정은 돼 있는 상태다. 도시재생과 김정수 담당자는 “도시재생 측면에서 횡단보도 설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찬성, 반대 입장이 갈리는 만큼 합의를 이끌어 내서 협의하고 결정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방향은 횡단보도를 놓는 쪽이지만, 강력하게 밀고 나가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대전시는 원도심 활성화의 기본 요건으로 ‘걷기 좋은 도시(Walkable City)’ 및 ‘잘 찾을 수 있는 도시(Legible City)’를 구현하고자 한다. 국토교통부의 2016년 도시재생 공모사업으로 향후 6년 동안 250억 원을 지원받고 시비 250억 원을 매칭해 500억 원 규모로 원도심 일원에 진행하는 ‘중앙로 프로젝트’의 마중물 사업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이와 맥이 닿아 있다.

                        

                     

또 하나의 쟁점, 
차 없는 거리

한편, 지난해 대전시가 원도심 활성화와 보행자 중심의 도시 정책을 위해 시행한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는, 지난해 12월 24일 진행한 이후, 올해 3월에 재개할 계획이었으나 중구와의 의견 차이로 시행하지 않았다. 중교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시행하고 있는 중구와 대전시의 이해 관계가 상충되는 것으로도 보인다.

중구는 지난 1월, 일반주민 2,231명을 대상으로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매월 1회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일반시민 1,406명(63.0%)이 교통 불편으로 중단되어야 한다고 답했고 500명(22.4%)이 특정일에만 상징적으로 연 2~3회 축소 운영해야 한다고 답했다. 주변 상인 604명 중 392명(64.9%)이 월 1회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고 113명(18.7%)이 운영해야 한다고 답했다. 중구의 입장은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가 지역주민에게 교통 체증 등의 불편을 주고 원도심 활성화에 역행하고 있으니 중단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에 반박하듯, 대전시는 지난 3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평시와 비교하는 빅데이터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행사 당일 유동인구는 당월 평균 유동인구보다 9월에는 11.6% 상승, 10월에는 9.4% 상승, 11월에는 1.8% 상승, 12월에는 33.7% 상승했다. 원도심 권역의 토요일 평균 매출액은 14억 2백만 원(월 평균 1일 매출액은 10억 6천 8백만 원)인데 행사일이었던 9월 19일에는 15억 7천만 원, 10월 17일에는 14억 4천만 원, 11월 21일에는 13억 4천만 원, 12월 24일에는 17억 1천만 원으로 조사됐다.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라는 게 대전시의 입장이다.


대흥동, 은행동 상가번영회는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에 적극적인 호의는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지켜보는 입장이다. 장수현 회장은 “대흥동은 저녁 상권이라 행사에 크게 영향 받지 않으며 은행동은 아웃도어 매장 등이 많고 낮 상권이라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중앙로지하상가 운영위원회는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가 달갑지는 않지만, 막연히 반대하지는 않는다. 정인수 회장은 “달마다 운영하면 지하상가에는 많은 문제가 생긴다. 어린이날, 광복절, 한글날  정도에 구간별로 탄력적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음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는 4월 23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목척교까지의 중구 구간을 제외하고 진행한다. 5월에는 중구도 참여한다. 그리고 6월, 중앙로 차 없는 거리 운영 구간을 확정할 계획이다.

행사 당일 중앙로 중심 원도심 권역 유동인구

2015년 행사 월 토요일 매출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와 관련해서도 일반시민은 논의의 주체에서 빠져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대다수 시민의 입장이다. 시민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중요하며 민과 관이 함께 이끌어 가야 한다.

                          

                        

현명한 선택,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중앙로 차 없는 거리 행사와 옛 충남도청사 앞 횡단보도 설치 문제는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모두 시민의 보행권과 관련 있으며, 많은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다. 그렇기에 단기간의 득실을 따질 수밖에 없지만, 길게 보면 이 문제는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것과 관련된다.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대의를 위해 마냥 희생해서도 안 된다. 옛 충남도청사 앞에 횡단보도를 놓을 것이냐를 두고 벌어진 갈등은, 횡단보도에서 발생할 효과를 ‘더 얻거나’, ‘빼앗기는’ 문제로 보기 때문에 생긴다. 중앙로를 포함한 원도심 일대가 걷기 좋은 곳이 되어 원도심 전체의 유동 인구가 많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최정우 교수는 “시는 이해관계자 전체에게 공평해야 한다. 다만, 그것이 정량적으로 같지는 않을 수도 있다. 횡단보도 하나를 세우는 데 비용은 얼마 들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지하상가에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를 놓는 것 등 현명한 트레이드를 해야 한다.”라며 “지하상가로 들어가는 입구를 넓히고, 지하상가에 햇빛이 들어가게끔 시설을 한다든지, 트레이드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각자 살고 싶은 도시의 모습은 다양하겠지만, 차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 걷기 좋은 도시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고 논의할 때다. 그리고 이 논의에는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도시에 발을 딛고 사는 일반시민이 함께해야 한다.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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