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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8호] 인생의 한 시기를 보내는 방법
김형석 대표
다니던 과학 매체를 그만두고 앞으로 뭘 하며 살지 정해지지가 않았어요. 뭘 해야 할지 모색하고 도모하는 과정이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잘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면 의미 없는 삶이 될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 시기에 그동안 쓴 글을 정리해서 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힘든 시기를 잘 보내자는 마음으로 책을 펴낸 게 첫 번째 동기이고, 두 번째로 현실적인 동기가 있었어요.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 다니고 있었는데요. 논문을 쓸 것인지 프로젝트를 할 것인지 고민했어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는데 책 출간이 프로젝트로 인정이 됐어요. 책을 내는 게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죠. 공부한 걸 결산하는 과정이기도 했고요.
과학 전문기자가 되는 게 목표이거나 꿈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일간지 기자로 있을 때 3년 6개월 정도 연구단지를 담당했었고 과학 매체에서 일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했어요. 그러면서 과학 분야 필독서를 한두 권씩 읽었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책에 나오는 과학적 이론은 100분의 1도 이해 못했을 거예요. 그건 상관이 없더라고요. 사회과학 서적 읽으며 사회의 이치, 세상이 돌아가는 작동 방식을 하나씩 알아나가는 것처럼, 또 다른 측면에서의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알아가는 과정이 매력적이었어요.
힘들거나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찾는 책들은 정해져 있어요. 소설이나 에세이, 자기계발서, 요즘 유행하는 힐링서 같은 것들이죠. 사실 그런 책들은 크게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오히려 과학책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문제 해결의 솔루션이 됐다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삭히는 데 유용하더라고요.
과학 매체에서 나오고 나서 마음을 다독여 준 게 글 쓰는 거였어요. 혼자 글 쓰고 그동안 썼던 걸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 힘든 시기를 이기게 했어요. 저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저를 잘 아는 사람이 볼 때 우울증이 온 것처럼 보인다고 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죠. 그 과정에서 책 쓰는 일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슬기롭게 대견스럽게 이겨 냈어요. 지금은 사람들 만나면 자랑해요.
일단은 책에 집중하게 하는 면이 있어요. 과학이라는 아이템 자체가 쉽게 쓴 것일지라도 어렵잖아요. 다른 책보다는 읽는 데 집중력이 필요해요. 다른 잡념이 안 들도록 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었어요. 두 번째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는 게 좋았어요. 왜 저 사람과 나는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부터, 나는 왜,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됐는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까지, 해결의 실마리와 고민의 단초를 과학책이 제공해 줬어요. 그런 책들을 잘 만났던 것 같아요. 너무 난해하고 과학적 이론만을 얘기하는 책을 접했다면 빠져들지 못 했을 것 같아요. 다행히 적당히 깊이가 있으면서 대중적이기도 한 책들을 읽었어요.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떠나서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더라고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칼 세이건이 쓴 책 중 아무거나 하나 정도 읽어 봤으면 좋겠어요. 단 한 권의 과학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고민 없이 코스모스를 추천해요.
과학책은 앎에 대한 즐거움을 적당히 만족시켜 주면서 인문서처럼 삶의 고민 같은 것을 해소해 줘서 좋았어요. 저도 책을 엮으면서 어떠한 공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일상적으로 과학책을 읽으며 느낀 것을 쓰려고 했어요. 제 기억과의 인연, 연결고리를 찾아서 쓰려고 노력했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쓰려고 해요.
생각만 하고 있어요.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이라는 책이 있어요. 고전문학을 읽어 보진 않았는데 읽은 것처럼 티 낼 수 있는 내용을 모은 책이에요. 결국은 고전 문학을 읽으라는 내용이에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과학책을 실제로 읽지 않고도 티를 낼 수 있는 팁을 주는 책을 쓰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게 결국은 과학책을 읽으라는 소개서이고 안내서이고요.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기회가 안 돼서, 선입견이 있어서 과학책을 읽지 않으신 분도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도 과학책을 읽어 봤으면 좋겠어요. 과학책을 많이 읽고 과학을 제대로 공부한 분들은 편협한 사고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는 거죠.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첫 번째로 타인에 대한 존중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학은 속성 자체가 무조건 진보적인 것 같아요. 기존 통념, 통설에 대한 반항에서부터 과학이 시작하는 거고 그런 걸 용인하는 사회에서 과학이 꽃을 피웠던 거고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아니지만, 과학 쪽에 몸담고 있는 분들의 책임, 책무가 크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하자는 건 아니고, 각자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민에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물론 이미 노력들을 하고 계세요. 그것이 일회성이나 단편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데는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이라든지 다른 몫도 있을 거예요. 과학 쪽에 계신 분들이 시민과 소통하는 데 여력을 쏟을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런 여유를 많이 찾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연구 성과도 잘 나올 것 같고요.
또 하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과학을 잘못 이해하는 것 중 하나가 과학자들에게 애국을 강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다 보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거죠. 과학자들에게 애국을 강요하는 것에는 위험한 면도 있어요. 과학을 곡해할 수도 있고요. 애국이란 게 결국 정권에 대한 충성을 얘기하는 거잖아요. 정권이 바뀌면 그 이전 정권의 과학자는 애국자가 아닌 상황이 되는 거죠. 과학은 그런 속성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면서 알파고를 만든 하사비스라는 사람에 관심이 갔어요. 영국인인 하사비스가 영국을 위해 알파고를 만들었을 거라곤 생각지 않고,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을 거예요. 게임을 하다 보니 인공지능 요소가 있으면 재밌을 거 같아 다시 공부를 한 사람이에요. 자신이 즐거운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해 온 결과가 이렇게 나온 거죠. 이 인물이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아닐 거 같아요.
결국은 즐겁자고, 어딘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읽는 거죠. 이 책도 그렇고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즐겁지 않으면 안 돼요. 일도 마찬가지예요. 재미만 추구하면 안 되겠지만, 자신이 즐거움을 찾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즐겁자고 읽는 건데 재밌는 책 많이 읽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