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콩나물밥 비비는 소리_왕관식당

왕관식당

콩나물밥은 특별히 당기는 게 없을 때 집에서 간단히 해 먹거나 종종 밖에서 찾게 되는 별미 아닌 별미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과 구수하게 삶은 콩나물에 짭조름한 양념간장을 기호에 맞게 넣어 쓱쓱 비비다 보면 어느새 한 끼를 뚝딱하게 된다. 그러나 언뜻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 콩나물밥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음식이다. 재료의 질, 삶는 시간에 따라 비린 맛과 구수한 맛이 좌우되고, 밥이 나쁘면 맛이 한 데 어우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래봤자 콩나물밥’이라고 생각한다면 ‘왕관식당’을 나서는 순간 조금 달리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 두 시간, 중동 골목에 숨은 식당

40여 년을 이어오며 사람들의 발길 잦은 식당이지만, 의외로 주변에서 왕관식당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왕관식당의 영업시간은 열두 시부터 두 시까지. 그마저도 서두르지 않으면 영업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밥이 동나기도 한다는 말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동의 수많은 인쇄소 간판과 오래된 풍경을 지나치며 오른편으로 난 골목길에 빠끔히 고개를 내밀다보니 한 골목길 안쪽에 ‘왕관식당’이라는 노란 간판이 보였다. 간판이 없다면 주택처럼 보이는 외관이다. 인근에 사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부러 찾아나서지 않는다면 쉽사리 알기 힘든 위치였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인지 소문처럼 길게 늘어선 줄은 없었다. 조심스레 발을 들이니, 이미 두 팀이 자리를 잡고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입구 쪽에는 김만수 사장이, 한 눈에 안이 들여다보이는 훤한 주방에는 김영옥 사장을 비롯해 아주머니 세 명 정도가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 자못 비장해보이기까지 한다. 

메뉴는 콩나물밥(3천 원)과 국내산 한우암소 육회(소 6천 원, 대 9천 원) 단 두 가지다. 육회는 그냥 먹어도 되지만 자신의 양에 맞게 주문해 보통 콩나물밥에 비벼 먹는 것이 이곳의 방식이다. 이곳 콩나물밥이 종종 ‘육회 콩나물비빔밥’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양이 많은 사람은 각각 소자 하나를 시키기도 하지만, 대자 하나를 둘이서 나눠 먹으면 양이 적당하다.

일행과 함께 콩나물밥 두 개와 육회 대자 하나를 시켰다. 주인 아저씨가 “콩나물밥은 많이 줄까요?”하고 묻는다. 이전에는 보통과 곱빼기로 나눠 가격을 달리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보통 가격만 받고 양껏 주고 있다고 귀띔한다. 음식을 주문하고 따뜻한 보리차에 몸을 녹이고 있으려니 과연 사람들이 제 집 찾아들 듯 하나둘 가게 안으로 들어와 어느새 가게 안이 꽉 찼다. 주방 직원들은 빈틈없는 손놀림으로 주문한 메뉴를 테이블에 순서대로 내어왔다. 갓 지은 뜨끈한 콩나물밥과 윤기나는 육회 한 접시, 간장, 깍두기, 시래기된장국이 한 상 차려졌다.

  

  

씹는 맛이 다른 육회 콩나물밥

콩나물밥을 비비기 전 먼저 육회를 한 점 집었다. 살짝 언 상태의 육회는 달고 짭조름하니 고소하다. 콩나물밥에 비벼먹는 것을 감안해 조금 세게 간을 한 듯했다. 콩나물밥에 곁들여 나온 간장과 육회 반 접시를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서걱서걱’하고 콩나물이 비벼지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콩나물의 수분과 숨이 죽지 않은 재료의 싱싱함이 숟가락 쥔 손에 그대로 느껴지는데, 그 느낌이 생경한 듯 반갑다. 콩나물은 굵은 것과 가는 것이 섞여 있고, 대가리를 떼어낸 것과 아닌 것이 반씩 섞여 있어 씹는 맛이 한층 좋다. 꼬들꼬들 잘 지은 밥과 고소한 양념간장, 육회가 어우러져 한 숟갈 뜨니 제대로 씹을 새도 없이 꿀꺽 잘도 넘어간다.

이곳은 영업을 시작하기 직전 여러 개 솥에 한 번에 정해진 양의 콩나물밥을 해 이를 점심시간 동안 몰려드는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밥을 한 지 두 시간이 지나면 콩나물이 물러져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손님 발길이 드문드문한 점심시간 이후에는 밥을 더 하지 않는다고 한다. 40여 년 전부터 대를 이은 지금까지 두 시간 영업을 고수하는 이유다.

손님의 대부분은 인근에 일터가 있는 듯한 작업복 차림의 중장년 남성, 지긋하게 나이 든 할아버지다. 그들은 음식이 나온지 10여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일어섰다. 빈자리는 뒤이어 문을 들어서는 손님들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가게 입구에 꼿꼿하게 서 테이블 전체를 이리 저리 훑으며 무언가 부족한 게 없나 살피는 김만수 사장의 모습은 과연 프로라 할 만 했다.

식당을 나서 찬바람 서린 골목길을 걷노라니 콩나물과 육회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남아 괜스레 쩝쩝 입맛을 다신다. 육회를 따로 주문해 비벼먹는 이곳 콩나물은 육회 가격을 더하면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별미’ 콩나물밥을 먹고 싶을 때 주저없이 추천할 만한 곳이다.

  

  

주소 대전 동구 선화로19번길 6 
전화 042.221.1663
영업시간 12시~2시 일요일 휴무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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