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자연이라는 선물은 언제나 좋다

유등천을 만나다 2

이렇게 가까이 강을 옆에 두고 걸은 적이 있었던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혹은 강보다 훨씬 높이 올린 보도를 걸으며 늘 도심 속 강을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조망했던 강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2005년, 대전환경운동연합에서 진행한 유등천 종주 프로그램 1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1월부터 다시 한 번 유등천을 걸었다. 지난 2월 11일에는 1월에 이어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국장과 일곱 명 회원이 유등천을 걸었다. 금산군 진삼면 삼가리 월봉산 자락에 자리한 청등 마을부터 금산군 복남면 곡남리 삼거리까지 약 8km를 걸었다. 최대한 천을 가까이 두었다. 풀숲을 헤치기도 하고, 물이 찰랑대는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수심이랄 것도 없어 보이는 얕은 물줄기가 졸졸졸 산을 타고 흐른다. 물이 참 맑다. 판판하게 다져놓은 강바닥을, 물줄기는 여과 없이 드러냈다. 유등천은 전국 여러 하천 중 물 맑기로 유명한 하천이다. 옛날 한국조폐공사 터를 대전으로 선정한 이유도 바로 맑은 유등천 때문이었다. 강물을 끌어다 지폐를 만들던 옛날, 깨끗한 강이 흐르는 곳이 입지 조건으로 유리했다. 

“강바닥이 이렇게 고른 경우는 거의 없어요. 모두 강 정비 사업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홍수 예방한다고 바닥을 다져놓은 것 같은데, 오히려 유속이 세져서 홍수 예방이 안돼요. 바닥 정비뿐만 아니라 천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식물이 있어요. 물을 오염시킨다고 모두 제거하는데, 오히려 그 식물이 정화 역할을 하기도 하죠. 물 흐름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조사와 연구를 통해 세심하고 정확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지금은 무조건 없애버리고, 모든 강에 똑같은 정비 공사를 해요.”

물줄기는 끊임없이 좁아졌다가 넓어지며 모습을 바꾸고, 스스로 정화하며 산과 들, 도심과 시골 곳곳을 흐른다. 자연 속에서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자연스러운 일에 훈수를 두며 마음대로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해롭다고 판단해 어리석은 일을 해온 것은 아닐까. 이경호 국장의 이야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줄기는 삼가리 청등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함께 죽 흐른다. 따뜻한 햇볕이 반짝반짝 강을 비추고 고요한 겨울 공기와 짙은 빛을 띠는 나무가 강과 함께 흐르는 듯하다. 울렁이는 물결을 보자 마음도 함께 울렁인다. 마을에서 벗어날 때 즈음 거대한 공장 하나가 강을 좇는 우리의 발걸음을 막는다. 경기광업 금산공장이 마을 어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다. 잠시 공장부지 안으로 모습을 감췄던 강이 삼가천에서 유등천으로 이름을 바꿔 우리를 다시 맞는다.

“겨울에 나무를 볼 때는 나무 아래 떨어진 열매나 나뭇잎을 먼저 보면 어떤 나무인지 금방 알 수 있어요.”

강을 따라 걸으며 나무 한 그루, 작은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은 대전환경운동연합 임혜숙 회원이 함께한 동료 회원들에게 식물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름과 특징을 줄줄 읊는다. 짭짤한 맛이 특징인 붉나무 열매는 옛날 소금 대신 음식에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며 옛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혼자였다면 그냥 풀, 앙상한 겨울나무쯤으로 지나쳤을 나무와 식물이 작은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더 넓고 깊어진 강은 논과 밭 사이를 굽이굽이 흐른다. 그 강을 따라 너른 논을 버석버석 걷기도 하고, 폭신한 밭을 푸근히 밟기도 했다. 강은 산을 따라, 논을 따라, 마을을 따라 유유히 제 모습 그대로 흐른다. 강을 둘러싼 자연이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청등마을

거대한 나무를 껴안아보는 참가자


글 사진 박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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