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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5호] 작지만 옹골찬 갤러리_작은갤러리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에 자리한 작은갤러리는 도예전문갤러리다. 도예작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판매하며, 직접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업실과 가마를 갖추고 있다. 물론 도예작품이 아닌 다양한 예술품도 전시한다.
작은갤러리 류기정 관장은 금강 지역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금강문화유산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백제 토기를 전공한 그는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토기와 가마를 발굴하고 조사‧연구 하는 일을 해왔다. 틈틈이 젊은 연구원과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며 20년이 넘도록 자기와 가마를 공부했다.
“발굴 현장에서 도자기 파편을 발견하면 흙 상태, 물레질 방법, 유약 처리 등을 먼저 조사해요. 그에 따라 그 시대의 기술 수준을 판단하죠. 문화 수준이 어땠는지도 파악하고요. 가마터에서 얼마나 멀리 도자기를 옮겼는지 과정을 찾다 보면 그 시대 물류와 유통 구조를 알 수 있고 그 구조를 통해 당시 경제사도 유추할 수 있죠. 작은 도자기 한 조각이지만 그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가치는 무궁무진해요.”
역사의 한 부분을 조명하는 도자기, 발굴현장에서 또 연구‧조사 단계에서 아주 작은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저와 같은 연구원들은 발견된 토기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토기 실험을 통해 과거 토기 제작 방법을 찾아 이론을 정립하는 일을 주로 해요. 붉은빛이 도는 자기는 흙에 있던 철분이 가마에서 구워지면서 산소를 만나 산화된 결과예요. 흙이 철분을 얼마나 함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정도가 달라지겠죠. 이런 식의 이론을 공부하고 연구해요. 언제나 그렇지만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존재하죠. 그런 차이가 바로 역사적 오류를 만들어요. 직접 도예를 배우면서 오류를 수정하고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년 가을, 류기정 관장은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실제로 자기를 만들며 도자기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됐다. 흙 종류, 유약처리, 굽는 온도, 건조 방법에 따라 도자기는 그 색과 모양, 질감을 달리한다. 작가마다 자신만의 유약 처리 데이터를 따로 둘 정도로 도자기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2월 4일부터 16일까지, 작은갤러리에서는 개관기념 초대전시 ‘면기(麵器) 전’이 열렸다. 임성호, 정은미, 김은경, 금다혜,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면기(넓고 큰 그릇)와 접시, 컵 등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도예품을 전시했다.
네 작가 모두 류기정 관장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꾸준히 작품을 봐왔던 작가들로, 그중 금다혜 작가는 현재 작은갤러리에서 일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해학적 조형물 위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임성호 작가, 화려한 눈꽃으로 그릇을 수놓은 정은미 작가, 담백한 그릇, ‘담기’를 여성스럽고 섬세하게 표현한 김은경 작가, ‘양’으로 젊은 작가 특유의 신선함을 뽐낸 금다혜 작가까지, 네 사람의 매력이 온전히 묻어나는 작품들이 갤러리를 가득 채웠다.
“이번 전시에 걸린 작품 모두 과일이나 다과를 올려 손님에게 내면 접시가 되고, 설거지해 세워놓으면 바로 작품이 되는 그런 작품이에요. 예술성이 있는 생활자기인 셈이죠. 앞으로 작은갤러리에서는 이 같은 작품을 많이 선보일 생각이에요.”
(왼쪽 사진) 임성호 作 (오른쪽 사진) 김은경 作
다른 장르에 비해 도예는 전시 기회가 적고, 사람들에게 소개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류기정 관장은 말했다.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작품성이 있는 도예작품을 소개하고, 동네 사람 누구나 들려 자유롭게 전시를 구경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은갤러리를 열었다. 상업성을 띄기보다 작지만 내실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은 도자기 만들기 수업과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 중이에요. 갤러리가 조금 더 자리 잡으면 문화예술 강좌도 함께 열 생각이에요. 역사, 문화유산, 서양 미술, 도자기 등 다양한 주제를 재미있게 다루며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사랑방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젊은 작가가 갤러리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작가 등용문으로 역할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