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커피아노_춤추는 커피아노

주소  대전 동구 솔랑시울길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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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문열어요. 손님이 계실 때까지 운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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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 동광장을 빠져나와 소제동 철도보급창고를 지나니 쌍둥이 빌딩이 내뿜는 ‘도시’가 잠깐 숨을 죽인다. 세월이 덕지덕지 붙은 길, 소제동이다.
어디서 갑자기 나왔는지 모르겠는 할머니 둘이 티격태격 목소리를 높인다. 두 할머니를 지나오니 초록색 간판에 하얀색 글씨로 눈에 띄는 삼성도매유통이 보인다. 그 골목에는 대창이용원이, 바로 옆에 나란히 신일컴퓨터세탁, 한솔미용타운이 사이좋게 문을 열었다. 솔랑시울길이다. 소제관사42호가 그곳에 있다. 조금만 더 걸음을 옮긴다. ‘피아노 집 둘째 딸내미’인 구여진 씨가 문을 연 커피집 ‘커피아노’다.
  
세월이 묻어 지나간 곳

소제동 299-158번지, 바뀐 주소로는 솔랑시울길 49,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여진 씨의 엄마 덕분에 동네에선 피아노 집 둘째 딸내미로 알려졌다. 워낙 조용한 동네이다 보니 뚝딱거릴 때부터 사람들이 갸웃거렸다.

커피아노는 목재소를 운영하던 여진 씨의 할아버지가 지은 집이다. 나고 자란 형제들이 모두 떠나고, 맏아들인 아버지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피아노 집 첫째 딸도, 둘째 딸도, 막내아들도 이곳에서 자랐다. 집 한편이 피아노학원이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진 씨 가족이 살던 집이 있다. 3년 전 즈음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집이 비었다. 피아노 집 둘째 딸은 꿈꾸었던 ‘커피집’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삼촌이 먼저 이곳을 쓰셨고, 저는 다른 일을 하면서 준비하다가 작년에 청년창업500에 지원하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단장은 12월에 끝이 났다. 천장을 뜯고, 지붕을 고치고, 색을 칠하고, 살림살이를 하나씩 들여놓았다. 천장을 뜯으며 할아버지가 기둥에 남긴 흔적을 발견하고, 왕사탕을 나누어주던 동네 할머니에게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할머니 살아계실 때 동네 할머니들이 여기에 자주 마실 오셨거든요. 지금 동네 분들은 모르는 분도 많아요. 그래도 아빠가 매일 머리 자르는 대창이용원 할아버지도 계시고, 엄마랑 친하게 지내시던 세탁소 아주머니도 아직 계세요. 동네라서 그런지 재미있어요. 이 동네 분들은 다 삼성초등학교 다니셨더라고요. 다 선후배예요(웃음).”

  

  

  

  

앞으로 추억이 쌓여 만들어질 곳

12월 말에 전기공사를 하고, 가장 중요한 커피머신을 마련했다. 그렇게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지나며 보고, 한 번씩 들러 이야기 꽃을 되문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셔봤다는 동네 아저씨는 이제 단골손님이 되었다. 막노동판에서 오랜 시간 일하며 믹스커피는 하루에 다섯 잔도 마신다는 아저씨였다.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저씨의 말에 카페라테를 한 잔 드렸더니 다음 날부터 한 번씩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어떤 날은 아메리카노, 어떤 날은 카페라테다. 어떤 날 찾아온 앞집 아저씨는 주차비라며 책을 건넸다.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낼 줄 모른다고 찾아온 할머니가 두고 간 장갑도 한편에 놓여 있다. 여진 씨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에 의해서도 공간은 조금씩 다듬어졌다.

“스무 살 때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게에서 손님을 만나고 대화하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공교롭게도 아르바이트했던 곳이 대부분 커피와 관련이 있었고요. 자연스럽게 커피집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엄마가 여기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다가 점점 동네에 아이들이 줄면서 문을 닫았거든요. 그러면서 창고로도 쓰고, 제 방으로 쓰기도 했어요. 그때도 막연히 이곳에서 커피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얼마 전엔 예비부부에게 공간을 대관해주었다. 3월의 신부에게 고백의 장소가 되었다. 앞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데 대관도 염두에 둘 생각이다.

“날이 풀리면, 공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것들을 하나씩 해볼 생각이에요. 한 번씩 들러서 사는 이야기도 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해요. 포근한 봄이 오면 조용한 소제동 산책 후 들러서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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