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그런 것에 관심 있습니다

소설 『김우식』 속 ‘나’는 L 게스트하우스 사장이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해오던 ‘나’는 스스로 생각하길 ‘속물이 된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낭만이라 해야 할지, 문화라고 해야 할지’를 잊지 않고 산다고 여긴다. ‘나’는 ‘그럴듯한’ 것을 찾아 L 게스트하우스를 인수했으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또, 매니저, 청소 아줌마, 알바생과의 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부러워하며, ‘나’는 자신을 부러워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한 우월감을 느낀다. 그런 ‘나’ 앞에 L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에 지원한 ‘김우식’이 나타난다. ‘김우식’은 ‘일’을 ‘박멸대상’으로 보며 기이한 방식으로 일을 최소화, 기계화해 나간다. 한편, ‘나’는 과거 밴드부로 함께 활동하던 ‘정민’에게 인정받지 못한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차갑고 도회적인 분위기에 안경을 썼고 창백한 얼굴을 했을 거라고 어렴풋하게 짐작한 이우화 씨의 모습과 시상식이 있던 날 사무실 문 앞에서 마주한 그의 모습은 정반대였다. 억양 없이 무미건조한 어투로 길게 자신의 말을 늘어놓고 사진은 찍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할 것만 같았던 상상 속 이우화 씨는 없었고 부산 사투리가 느껴지는 억양에 때때로 자신의 말을 정정하며 웃는 이우화 씨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읽으니 『김우식』도 차갑기보다는 등장인물에 연민이 느껴지는 어딘지 모르게 따뜻한 소설이었다.

  
  
Q. 먼저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김우식』은 언제 어디서 썼나요?

작년 5월에 썼어요. 당시에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일을 하고 있었어요. 날을 잡고 쓴 소설이에요. 착실하게 글 쓰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하루 날을 잡아 쓰고 또 한동안 쓰지 않고 그래요. 어느 날, 『김우식』을 써야겠다는 느낌을 받아 카페에서 이틀에 걸쳐 썼어요.  30대가 되면서 주변에 안정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게 됐어요.

  

Q. ‘김우식’이라는 캐릭터가 특이합니다. 캐릭터를 만든 계기가 궁금해요. 어떤 동기로 ‘김우식’을 만들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결국은 제 마음속에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해요.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일을 하면서 밖으로 얘기할 수 없는 생각들이 있었는데 그런 불만을 지닌 캐릭터가 나타나 제멋대로 굴어보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Q. 김우식’을 소설 제목으로 했습니다. 어떤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 ‘이름’을 제목으로 한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의도하셨는지요.

처음부터 소설 제목을 ‘김우식’으로 정하고 시작했어요. ‘뭐지?’ 하는 생각을 유도했습니다. 처음 소설을 접할 때 ‘뭐지?’ 하고 생각하고 소설 끝 부분에서 한 번 더 ‘뭐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끝 부분에서 ‘김우식’이란 이름의 활자를 크게 했습니다. 그 부분에서 화자는 공백처럼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김우식’이라는 이름을 발견합니다.

  

Q. 소설 속에서 크게 세 인물이 주요하게 등장합니다. 화자인 ‘나’와 ‘김우식’ 그리고 ‘정민’입니다. ‘나’와 ‘김우식’, ‘나’와 ‘정민’은 서로 반대 지점에 있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김우식’과 ‘정민’이 같은 부류의 사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세 인물을 설정한 의도가 궁금합니다.

『김우식』은 플롯을 짜지 않은 상태에서 쓴 글입니다. 써야겠다는 느낌으로 썼습니다.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고 써내려간 글이에요. 화자는 말하는 사람이 가장 곤란해지는, 애매한 캐릭터예요. 문제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확실히 저쪽 편에 서지도 않는 인물이에요. ‘김우식’이 화자인 소설을 쓰면 재미없는 글이 될 게 뻔해서 ‘김우식’이 투당투당 하면서 화자가 공격받는 식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민’은 화자가 극복하지 못한 기억입니다. 그 기억을 정리했다면 ‘김우식’을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화자는 ‘김우식’을 보고 정리하거나 해결하지 못하죠. 그 문제를 풀 의지도 없고요. 

  

Q. 화자가 ‘김우식’에게 꼬집힘 당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기 불안이에요. 지금 설정한 세계가 사실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이에요. 그 세계가 일일이 다 깨지는 것을 설정했습니다. 화자는 친구들과 있으면 깨질 일이 없어요. 그런데 화자가 지닌 의식 밑바탕에는 스스로에 관한 의심이 있는데 그것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죠. ‘정민’에게서 아무 사람 아닌 걸로 취급당한 것을 늘 억울해 하고, 그 상태에서 어른이 된 거죠.

  

Q. '김우식’이 꼬집고 있는 것은 기존의 소위 ‘꼰대’ 같은 허위의식이 아니라 ‘문화적’인 척을 하는 또 다른 허위의식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그런 면을 많이 봤어요. 예를 들면 여기 북카페 이데에 있는 책들은 책이 책으로서 있어요. 그런데 그 게스트하우스에 있던 책들은 그럴듯한 무언가를 의도한 책들이었어요.『김우식』에서 화자는 ‘김우식’을 자세히 보고 ‘그렇다면, 나는?’ 하면서 물음을 던집니다. 그 뒤에 화자가 지닌 허위의식이 쏟아집니다. 자신은 어떻게 다르게 사는지 잘난 척하듯 표현하며 화자의 허위의식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화자는 ‘게스트하우스에 이런 걸 뒀어, 이런 걸 신경 썼어.’ 하며 만족해하고, ‘정민’한테도 ‘네 음악 이해했어. 그러니까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김우식’에게도 ‘나 괜찮은 어른이지? 꼰대 아니지 않니?’라는 말을 생략하고 있는 거예요. ‘정민’은 그 생략된 말을 느끼고 있었고, 화자에게 질린 상태였다면 ‘김우식’은 화자의 말을 듣지도 않아요. 화자의 그런 마음이 나쁘지는 않지만, 어른은 아닌 부분이에요. 그 점이 ‘김우식’에게 걸려든 거죠.

  

Q. 화자인 ‘나’도 그렇고 ‘김우식’도 그렇고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였습니다.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공간이면 ‘김우식’은 있을 곳이 없는 인물이에요.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어떠한 필드에 아예 나오지 않아요. 화자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방식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데, 더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Q. 소설에서 ‘김우식’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기이합니다. ‘김우식’이 자신의 시간을 가지려 일을 ‘박멸’하고 있는 방식이 결국 일에 소외당하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김우식’한테도 딜레마를 주고자 했습니다. 어떻게 일에 안 잡아먹힐까 하지만 그것을 푸는 방식은 스스로 기계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인간미를 잃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것이 자신을 지켰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는, ‘김우식’은 이상한 캐릭터인 거죠.

  

Q. 자신에게 ‘그늘’이 필요하다고 말하던 ‘김우식’이, ‘고요 속에, 그늘 속에’ 있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요.

‘김우식’은 안락한 의자에 등 기대어 편안하게 자기 세계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늘을 만들고 아주 편안한 상태로 있는 거예요. ‘김우식’은 편한 상태인데 화자 입장에서는 무섭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상태인 거죠.

  

Q. ‘김우식’은 ‘그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정민’은 ‘무언가 지키는 것’에 관심 있다고 말합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얘기하는 ‘정민’에게서 생생한 울림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 부분을 ‘정민’을 생각하고 쓴 게 아니라 ‘정민’이란 사람을 본다는 느낌으로 썼습니다. ‘정민’에 관해 쓸 때는 화자 입장에서 봤습니다. ‘정민’의 행동이 화자에게 줄 울림 같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Q. 결국 『김우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요.

따뜻하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거짓말로 따뜻해지면 안 돼요. ‘김우식’은 그걸 공격합니다. ‘당신 거짓말이지?’ 하고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Q. ‘김우식’이 말하는 것이 결국 ‘시간, 일, 돈, 자신’ 등인 것 같습니다. 이우화 씨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아직 정리된 생각은 아니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과 삶은 같은 단어가 아니에요. 일을 너무 열심히 하면 일어나야 할 삶이 안 일어 날 때가 있어요. 사는 게 문제가 되면 다음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그다음 단계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요즘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가 ‘일’이나 ‘행복’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모 세대도 뭔가 하나 놓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식들한테 먹고사는 법도 가르쳐야 하지만 그다음 단계가 뭐냐는 거죠. 저희 집은 힘들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먹고사는 문제가 사라지는 부분이 생기는데, 그때도 삼겹살집에 가는게 세상의 전부가 되는 거죠. 부모님들도 겁을 내고 계신 게 아닐까 생각해요. 으쌰으쌰 해서 산업화를 이루었죠. 그때 부모님들이 무엇인가를 ‘사는 맛’은 인생사는 즐거움이었어요. 뭔가 사들이는 즐거움과 정체성이 달라붙어 있었죠. 그런데 그것이 끝났을 때의 정체성을 못 찾은 거예요. 지금 세대는 ‘그 다음은 뭐지?’ 하고 눈치를 챈 거죠.

  

Q. ‘작가’로 살고 싶다고 하셨어요. 언제 그런 생각을 굳히셨는지 궁금해요.

군대에 있을 때 한 기업에서 병영도서관을 설치해주는 프로젝트를 했는데 거기에 응모해서 선정이 됐어요. 그 병영 도서관에서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었는데 어떤 대목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일하고 글 쓰고 그랬어요. 무언가를 배우는 제일 쉬운 방법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썼어요.

  

Q.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된 친구들이 생기고 그 와중에 느끼는 외로움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때 소극적으로 우울해 할 것인가 적극적으로 절망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이제는 선택을 내렸어요. 적극적으로 절망하기로요.

  

Q. 가끔, 보통의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삶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 크게 다를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 위로 올라가서 가장 끝의 ‘욕망’에 관해 생각하면 모두 똑같은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자기 검열을 통과한 욕망은 욕망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나 부모 등 어딘가에 걸린 욕망을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커피가 먹고 싶어서 커피를 먹는 것을 욕망이라고 생각하지 않듯이 그걸 끌어당기면 욕망이 안 될 거예요. 저는 그동안 욕망을 접고 살았어요. 욕망을 쭉 펼치고 살면 인생이 단순해지고 편해요. 2006년에 시로 대산대학문학상을 받고 내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쭉 밀고 나가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저 자신을 혼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이제는 그대로 밀고 나가면 될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당선 소감을 묻고 싶습니다.

기뻤어요. 사실은 가슴이 먹먹했어요. 작년에 글로 조금씩 돈을 버는 상태였는데 한 친구한테, 내가 타석에 들어선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쉽지는 않았고 버텼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에요. 당선됐다는 메일을 받고 가슴이 찌릿하고 먹먹했어요. ‘드디어’라는생각보다 ‘지옥을 면했다.’라는 생각이었어요. 이제 선수로 경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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