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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5호] 성수월에 살어리랏다
물을 가둬 저수지를 만드는 일은 농업을 기반으로 둔 우리에게 안정적으로 농업용수를 제공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저수지를 통해 논과 밭에 안정적으로 물을 댈 수 있었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생겨났다. 저수지를 조성하며 마을 전체나 일부가 물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 청도군 풍각면에 자리한 성수월마을도 저수지 아래 고향을 묻은 이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다.
1999년,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에 23만 평 규모의 성곡댐과 저수지 건설 사업이 진행된다. 2009년, 댐이 완공되고 성곡리 전체 면적 3분의 1을 차지하는 성곡1리와 성곡3리가 완전히 물에 잠겼다. 마을에 있던 관공서와 학교, 논과 밭 등이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마을을 떠났다. 80여 가구 240명이 마을을 떠나고 23가구 45명만이 마을에 남았다.
수몰되기 전 성곡리와 수월리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었다. 10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제법 큰 시골 마을로 비슬산 자락에 자리해 토질이 좋고, 배수가 잘되는 좋은 지형이었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미나리, 감, 복숭아, 사과 등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고 한적하게 일생을 보냈다.
성곡댐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생계를 책임지던 경작지가 물에 잠기자 마을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고, 수몰지역 보상 문제로 이웃 간 다툼이 벌어졌다. 평화롭던 마을이 흉흉해졌다. 변해버린 마을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박성기 위원장(성곡권역추진위원회 영농조합법인)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성곡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가 2002년이었다. 마을에 돌아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 주민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마을을 떠나는 이들을 붙잡고 떠나지 말고 다시 마을을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했다.
“대놓고 말했지. 땅값 올리주겠다고, 평당 100만 원으로 만들어 준다꼬. 그래도 다 떠나뿌고 몇 안 남았다 아이가. 그때 떠난 사람들은 지금 후회 마이 할끼다. 땅값만 올랐나? 마을 자체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이후 마을에 남은 주민들과 마을을 어떻게 지키고, 운영해야 하는지 논의했다. 2008년, 박성기 위원장을 주축으로 성곡권역추진위원회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마을 살리기 활동을 시작했다. 마을이 가진 고유한 자원과 이야기를 살려 파괴된 마을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 ‘다시 살고 싶은 마을’을 목표로 세웠다.
성곡권역 안 여섯 개 마을, 성곡1, 2, 3리와 수월리, 현리리, 봉기리를 통합해 새롭게 마을을 만들었다. 성곡리의 ‘성’과 수월리의 ‘수월’을 따 ‘성수월’이라 이름 짓고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마을이 되길 바라며 의미를 더했다.
(왼쪽 사진) 코미디 철가방 극장 (오른쪽 사진) 몰래길 소원탑
남은 40여 명 남짓 주민은 성곡댐 상류로 터를 옮겨 다시 삶의 터전을 일궜다. 저수지에 물을 가두기 전 마을과 오랜 시간 함께했던 나무 열 그루와 문화재 등 마을의 흔적을 새 터전으로 옮겼고 스무 채 집을 새로 지어 다시 마을을 만들었다. 그리고 2010년, 마을 주민과 함께 만든 마을 사업계획서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대상지에 선정돼 마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그린투어센터를 짓는다. 농촌체험활동과 휴식을 모토로 센터 안에 식당과 휴식 카페 등 공간을 조성했다. 식당에서는 마을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이용해 마을을 찾은 이에게 건강하고 맛좋은 먹거리를 제공한다. 센터 내 운영 인력을 마을 주민으로 꾸리고, 농산물 판매금액이 주민들에게 직접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던 중 2011년 개그맨 전유성 씨와 함께 코미디전용관 ‘철가방 극장’을 짓는다. 33명의 개그맨을 키워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코미디 공연을 올렸다. 마을을 찾는 관광객뿐 아니라 마을 주민도 함께 공연을 즐겼다. 철가방 극장 덕분에 마을을 찾는 이가 점점 늘었다.
2013년에는 댐 건설 현장부터 성수월마을의 변화를 기록한 동아리 ‘찰칵닷컴’의 사진을 마을 담벼락에 걸고 마을 사진전을 열었다. 저수지를 따라 ‘몰래길’을 조성하고, 나들이객이 마을에서 편히 쉬어 갈 수 있도록 숙박시설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꾸준히 마을을 일구고 있다. 현재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돼 마을의 특색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그린투어센터 앞에는 마을을 지키는 다섯 개 기둥이 있다. 마을에 사는 작가 몇몇이 모여 마을을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오방색을 사용해 마을 역사와 이야기를 담았다.
“외부 예술가한테 문의해보니 비용이 어마어마하대, 안 되겠다 싶어가 마을에 있는 예술가들 다 불렀지. 필요한 재료비나 기타 비용 지원해주기로 하고 마을을 상징하는 작품 하나 만들어 달라꼬 해서 만든 기라.”
박성기 위원장은 마을로 귀촌, 귀농한 이들을 꼭 한 번은 불러 밥을 먹이고, 마을에 살며 필요한 것을 물었다. ‘내가 뭐 주꼬? 뭐 해주면 되겠노?’ 조금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을에 들를 때마다 작은 먹거리라도 사와 꼭 마을 회관에 들르기를 부탁했고, 일주일에 한 번 마을 어르신의 진료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마을 사람이 되어갔다.
철가방 극장에서 공연하는 개그맨들도 ‘어무이 밥 좀 주이소~’하며 마을 어르신과 거리낌 없이 지낸다. 마을에 든 사람들은 마을 사업과 자신의 작업 또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연계해 진행하고자 한다. 마을에 사는 사람 모두 마을 일에 관심을 두고 아주 작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둘 내어 놓았다. 그린투어센터 안 카페에서 만난 서민정, 조규완 부부도 곧 마을로 터를 옮길 계획이다. 지금은 마을 일을 하나씩 도우며 조금씩 마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을을 만든다는 것, 그것은 바로 마을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 견고히 만드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우리가 함께 사는 곳, 성수월마을이 바로 그렇다.
“가끔 우리 마을로 이사 오는 사람 중에 내 돈으로 내 집 지어 산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꼬, 그래 말하는 사람들도 있따. 카믄 마을에서 오래 몬 산다.”
(왼쪽 사진) 동네북카페 (오른쪽 사진) 마을 사진전
“마을 수익 대부분을 자치하는 게 코미디 극장하고 마을 식당이다. 소득이 마을 곳곳에서 균등하게 발생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서 걱정이 많다.”
마을과 도심, 두 곳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중간자 역할이 필요하다고 박성기 위원장은 말한다. 도심보다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시골 마을에 도심 자원을 잘 연결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마을로 향하게 할 젊은 인력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있지만, 아직 특별한 아이디어를 얻지 못했다. 18년 넘게 마을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자신이 없으면 누가 마을 일을 도맡아 할지 걱정이라며 이야기한다.
봄이 되면 저수지에서 카누 타기, 마을 우체통 설치 등 나들이객이 마을에서 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미나리 소주 등 마을 특색을 살린 먹거리도 개발하고 있다.
마을 앞에는 너른 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마을을 삼켜버린 저수지가 이제는 아름답게 마을을 감싸 안는다. 저수지 가운데 인공섬에는 200년 넘은 마을 당산나무가 오도카니 서 있다. 저수지를 두른 비슬산 자락이 마을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따뜻한 봄이 되면 푸르른 청도 미나리가 마을을 가득 채울 것이다.
(왼쪽 사진) 미나리 밥상 (오른쪽 사진) 마을 앞 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