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10년. 혹은 10년,

대전아트시네마 10주년

7년쯤 전이었던 것 같다. 친구 둘과 함께 모여 10년 뒤 나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그때는 10년 뒤면 뭔가 대단한 게 이루어질 것처럼 여겼다. 지금 보면 아주 유치한 말이겠지만, 나름의 포부와 각오를 다지며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유리병에 담아 대전아트시네마에 보관했다.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간이어서 이곳에 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당시 매표소를 지키던 언니의 난감한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반 억지로 그곳에 편지를 두고 나와서 깔깔대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추억을 맡길 수 있는 곳, 그만큼이 지나도 분명히 그곳에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곳, 대전아트시네마는 그런 공간이었다.

  

  

  
대전에도 다양성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다

대전아트시네마(이하 아트시네마)는 2006년 서구 월평동에 문을 열었다. 1990년대에 대학에 다니며 시네클럽 활동으로 시네마테크 운동을 지속하던 강민구 대표가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며 마련한 곳이었다. 시네마테크 운동은 예술영화의 라이브러리 역할을 담당하고, 영화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목적으로 한다. 시네마테크는 상업영화관에서는 할 수 없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을 통해 예술영화를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다. 더욱 쉽게 지역에서 예술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하며, 교육적 용도로의 영화활용에 관한 역할 분담이 수반된다. 시네마테크가 공공적 성격을 가지는 이유다.

강 대표는 1997년 시네클럽 활동을 시작으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소식지를 만들었다. 공간을 빌려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를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2003년부터는 한국 시네마테크협의회와 함께 시네마테크 순회상영전을 개최했다. 스페인 영화제, 다큐멘터리 전, 한국독립영화회고전, 팡테옹 뒤 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영화였다. 시네마테크 순회상영전은 필름 상영만 되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영사시설을 갖춘 공간에서 상영할 수 있으며, 안정적인 공간이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강 대표는 영화 운동을 지속하려면 장소가 필요하겠다고 판단했다.

2006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에 있던 선사시네마에 아트시네마가 개관했다. 그 자리에 1년 정도 머물다 2007년 동구 중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보극장이라는 작은 극장이 있던 자리였다. 그곳에서 2015년인 지금까지 1,000여 편이 넘는 영화와 함께 자리했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 다양성영화관 하나 없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끼고 운영하던 시절이 있었죠. 처음엔 잘 안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보일 거라고 믿었어요.”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관객을 어려운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삶을 고민하는 영화, 재미있으면서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영화는 아트시네마를 통해 관객과 만났다.

  

 

관객은 영화를 만나고 영화는 관객을 만나는 장소

작은 영화관은 ‘이런 영화도 있다.’라는 외침을 계속했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어렵다는 인식을 깨는 역할부터 시작했다. 극장 개관 이후에는 대전에서만 할 수 있는 영화제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둔지미 영화제를 기획해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이끌었다.

“대전둔지미영화제는 대전지역을 대표하는 영화제라거나 한국영화산업의 향방을 논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건과 이벤트보다는 대전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영화문화의 생존을 논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영화제 그리고 그 바깥에서 미처 우리가 보지 못한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대전시 영화문화의 성숙과 발전을 바라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그리고 그 문화적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자리. 그리고 이러한 만남이 대중의 기억 속에서 회자되며 대전지역 영화문화의 미래를 가늠하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후에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을 만들어 나가는 영화제가 될 것입니다.”

2006년 10월 30일 ‘대전둔지미영화제를 준비하며’라는 제목으로 아트시네마 인터넷 카페에 강 대표가 작성한 글 일부다. 둔지미 영화제를 개최하는 설렘과 기대가 담겼다. 둔지미 영화제는 시네마테크 대전 회원들과 함께 시네마테크 공간인 아트시네마에서 지자체의 후원 없이 진행한 영화제였다. 저예산 영화를 중심으로 상영했으며, 고전영화, 예술영화, 청소년성장영화 섹션으로 나누어 관객과 만났다. 영화를 본 후 감독, 평론가와 대화하는 자리까지 다채롭게 구성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성난 황소>를 본 후 봉준호 감독과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했던 2006년엔 100여 명이 넘는 관객이 함께하기도 했다. 2007년까지 두 번의 영화제가 개최되었으나 2008년부터는 예산 문제로 개최할 수 없게 되었다.

둔지미영화제는 개최할 수 없었지만, 다른 형식으로 다양한 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기획전을 개최했다. 영상아카데미, 스토리텔링 워크숍, 영화비평강좌 등 영화를 배우며 관객과 만나는 영화강좌도 매년 지속했다.

  

  

우리는 어떤 자본 아래에서 살고 있는가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독립영화, 예술적 실험으로 다양한 방식의 영화를 만드는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지만, 완전히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었다. 2007년부터 2013년 까지는 매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의 지원금으로 영화관을 운영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순간마다 변할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3년 10월 마을극장 봄 협동조합을 창립한 것 또한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모색이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방법은 새로운 자본을 형성하는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자본을 갖느냐, 그것이 핵심이죠. 과연 그 자본이 계속 수탈하고, 착취하고, 인간을 소모적으로 써서 만드는 자본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누고, 생산하는 자본인가라는 것을 생각해야 해요. 전자에서 독립해 후자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죠.”

협동조합을 창립해 조합원 교육과 공동체 영화 상영 등의 활동을 했으나 지속하기 위한 자본이 또 문제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에 떨어져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2014년부터는 순전히 강 대표 혼자의 힘으로 영화관이 운영되었다. 그리고 2015년 아트시네마는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그곳엔 누군가의 추억과 마음이 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2006년 둔산동에 있던 아트시네마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때 보았던 영화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었다. 그때까지 내게 일본영화는 <링>과 같은 공포영화이거나 <러브 레터>와 같은 순수한 사랑이야기로만 여겨졌다. 이 영화가 일본영화에 두었던 편견을 없애 주었다

영화를 통해 다양한 삶을 배웠다. 2007년 개봉한 <안경>을 통해 여유에 관해 생각하고, 사색을 배웠다. 2008년 개봉한 <우린 액션배우다>를 통해 화려한 스크린 뒤 쓸쓸하고 끈끈한 액션 배우의 삶을 배웠고, 2014년 개봉한 <원나잇온리>를 통해 당연하게 이성 간의 사랑만을 사랑으로 여겼던 나를 반성했다.

다양한 추억을 쌓은 곳이기도 했다. 공주가 고향이라던 소녀가 극장 매표소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때 아트시네마를 처음 알았던 소녀 역시 아트시네마를 만나면서 삶의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공주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시간이 나면 대전까지 와 아트시네마에 영화를 보러 왔다고 말해주었다. 이곳에서 만난 영화들이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하고, 다른 꿈을 꾸게 했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곳을 함께 찾던 친구들도 이 공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더 가까워졌다. 조금 불편한 환경인 작은 영화관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함께 왔을 때 반응이 갈리곤 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영화관은 멀티플렉스 극장에 길든 우리에겐 조금 낯선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함께 왔을 때 이 영화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그런 아트시네마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개관 10주년인 올해, 아트시네마는 폐관을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영화의 힘을 믿는다

“많은 사람이 추측하는 것처럼 단순히 영진위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폐관을 고민한 건 아니에요. 일단 올해 6월이면 건물주가 바뀌는데, 어떤 용도로 쓰일지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고민이 시작된 거고요. 처음부터 아트시네마는 시네마테크 기능을 목적으로 했고, 애초에 계획했던 게 커뮤니티 시네마의 개념이었어요. 그런데 여전히 영화는 소비되는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있고, 새롭게 방향을 설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문을 닫느냐, 닫지 않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금과 같은 극장 운영 방식이나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방식에 관해 많은 고민이 있어요.”

아트시네마가 대전에 자리하기 시작한 2006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다양성 영화를 접하는 시장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VOD나 IPTV 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특히 예술영화시장이 넓어졌다. 대전 CGV에서도 2013년부터 CGV 아트하우스의 무비꼴라주 관에서 다양성 영화를 상영한다. 하지만 <다이빙 벨>과 같은 영화는 볼 수 없었다. 2014년 10월 개봉한 영화 <다이빙벨>은 대전에서는 대전아트시네마에서 밖에 상영하지 않았다. 2013년 9월 개봉한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역시 그랬고, 2012년 10월 개봉한 <MB의 추억> 역시 대전에서는 아트시네마에서 밖에 볼 수 없었다. 대전에는 아트시네마를 포함해 모두 아홉 개의 영화관이 있다.

“일단 올 5월까지는 매달 10주년 기념 기획전을 할 예정이에요. 아직 언제까지 극장을 운영할 것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후에 다른 곳에서 대전아트시네마라는 이름으로 극장을 운영할 것인지에 관한 것도 모르겠고요. 정말 정해진 것이 없어요. 고민을 계속하는 단계이고요. 극장을 운영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허망한 꿈 같은 거 없었어요. 처음엔 내가 사는 이 도시에 예술영화전용극장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극장을 운영했던 게 사실이고요. 뭔가 바뀌길 기대했고, 가능성을 보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도 분명하고요. 정부정책과 함께 많은 부분에서 영화문화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영화와 지역 주민이 만나야 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을 10주년이 된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인 것 같아요.”

좋은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가슴을 오래도록 울리는 영화 한 편이 한 사람의 삶에 변화의 여지를 준다고 믿는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수많은 영화를 보여주고, 여전히 영화의 힘을 믿는다고 말하며 그곳에 있던 아트시네마가 이제 10년이 됐다. 10년 다음에 오는 문장부호가 마침표가 될지 쉼표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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