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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5호] 마을과 마을사람을 발견하는 여행
마을 주민과 돈독한 관계를 지니고 자신 역시 마을의 한 일원으로 소속감을 느끼며 살 때 마을은 마을로 존재한다. 최근 들어 전국에 좋은 마을 만들기 바람이 불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이 사는 곳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 누가 내 이웃인지 알 수 없고 아파트 층간소음이 뉴스거리가 되는 요즘, 마을 살이의 즐거움을 다시 고민하게 된 사람들은 마을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육아 품앗이로 함께 아이를 키우며 함께 공부하며 이웃을 만나고 마을을 여행한다.
1999년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의 참이슬 아파트는 언뜻 보기엔 오래된 아파트 단지일 뿐이다. 이 아파트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아파트 안에 들어가자마자 자리한 ‘마을학교’ 때문이었다. 2000년, 한 마을 주민이 책을 기부해 아파트 관리동에 도서관이 생겼다. 그때만 해도 아파트 내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던 때였다. 도서관에 조금씩 사람이 모였지만 산발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사람들과 함께한 건 2007년 시흥시에서 평생학습을 통한 마을 만들기 일환으로 공모한 평생학습시범마을에 선정되면서부터다. 추진위원회를 조직해 마을 리더를 교육했다. 점차 더 많은 사람이 모였고, 함께 공부할 장이 필요했다. 도서관이 있던 아파트 관리동 전체가 마을학교라는 이름으로 얼굴을 바꿨다. 의지는 있었지만, 뜻을 펼칠 길이 없던 엄마들은 평생학습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기회를 얻었다.
시흥시 능곡동의 시흥능곡2단지에도 휴먼아이 마을학교가 있다. 2012년, 경기도에서 학습형 사회적 일자리 창출 및 학습마을 활성화 사업에 선정되며 시흥능곡2단지에 휴먼아이 마을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동안 휴먼아이 마을학교는 공동체 사업, 교육 사업, 일자리 사업을 운영하며 여러 강좌를 진행했다. 주로 아이들을 위한 수업이 대부분인데 엄마들의 요구에 따라 어른을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휴먼아이 마을학교 역시 마을 사람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모였다. 엄마들은 무언가를 배우면 다시 그곳을 찾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활동한다. 시흥시 주민들은 아파트 안에서 진짜 ‘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학습으로 주민을 만나고 마을에 애착심을 기르던 사람들은, 마을을 콘텐츠로 여행을 기획했다. 마을학교에서 발굴한 마을 자원들, 마을 곳곳에 삶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들을 엮어 마을을 여행했다. 작년 3월부터 참이슬아파트 주민들이 만든 공정여행 팀 참이슬, 시흥능곡2단지 주민들이 만든 The 쉼표 등과 함께 다섯 단체가 공정여행가 양성 과정에 참여했다. 그 중 참이슬, The 쉼표가 올해 1월과 2월, 창업과정을 진행했다. 2월 12일에는 두 마을 여행의 상품가치를 평가하는 두 번째 팸 투어를 진행했다.
이들의 여행은 눈이 확 트이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관광이 아니다. 자신이 사는 곳의 사람을 만나고 다른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는 것을, 이들은 마을 ‘여행’이라 부른다. 마을 여행의 콘텐츠는 마을의 공간,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마을을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마을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다. 또 마을 곳곳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며 공간에 관한 애착심도 기른다. 여행 기획자와 여행객 사이의 관계 형성도 마을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다.
마을 여행은 마을 경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마을 구성원으로 조직된 여행 기획자들은 여행객을 모집해 여행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마을 여행이 누군가에게 일자리로 기능하고, 여행하며 쓰는 돈은 고스란히 지역기반 상권에 들어간다.
시흥시 평생학습 중심의 마을 만들기 사례는 다양한 지역에서 탐방 올 정도로 우수 사례로 꼽힌다. 마을 사람과 마을 자원이 콘텐츠가 되어 다양한 사람과 함께 여행한다. 이들은 마을 여행을 통해 여행의 새로운 관점을 발견했지만, 한계 역시 지니고 있다. 평생교육과 마을을 고민하는 과정이 관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는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로 점차 극복하고 있다. 지역, 마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들이 여행을 진행하고, 여행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마을을 여행하면서 지역, 마을을 한 번 더 바라본다. 그로부터 형성되는 삶의 질은,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 역시 깨닫고 있다.
참이슬 평생학습마을 공정여행 팸투어
참이슬평생학습마을여행을 인솔하는 사람들은 시흥시 공정여행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창업을 앞둔 참이슬 공정여행 팀이다. 공정여행이라는 낱말도 알지 못했던 엄마 다섯이 모여 참이슬 공정여행 팀을 꾸렸다. ‘참된 사람들이 이웃과 슬기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참이슬’을 풀었다. 이날 마을여행은 마을학교에서 시작했다. 아파트를 ‘마을’로 만들고, 마을의 자원을 키운 마을학교를 시작으로 하중초등학교 옆 참이슬 문구, 예술인이 모이는 공간인 컬쳐인, 도화 술빵, 샛말공원, 매봉산책로, 연꽃테마파크, 관곡지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6년 전에 처음 마을학교에서 한국무용을 배웠어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무용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는데 막연하기만 했죠. 아파트 내에 이런 교육이 있다고 해서 해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마을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해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여러 교육기관에 다니면서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시흥시 내에서 강의할 기회도 마련되었고, 다시 마을학교에 돌아와서 주민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죠. 이젠 아무리 오래 되어도 이 아파트를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왼쪽 사진) 참이슬 공정여행팀 단체사진 (오른쪽 사진) 마을예술창작소 '컬쳐인'
마을학교에서 한국무용을 가르치는 박종심 교사의 이야기다. 박종심 교사뿐만 아니라 마을학교 독서지도사, 자연놀이 교사도 모두 마을학교에서 배운 사람들이 다시 마을학교 교사가 되어 재능을 나눈다.
참이슬 아파트 바로 옆, 하중초등학교 앞 참이슬 문구 주인장은 한때 하중초등학교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로 아이들에게 애정을 주던 ‘문방구 아주머니’다. 배가 고픈 아이들에게 빵 하나를 건네주며, 마을에 애정을 베푸는 도화 술빵 아주머니도 마을을 여행하는 여행객을 맞이한다. 지역신문 컬쳐인시흥을 만든 김영주 기자가 마을 예술인과 공유한 공간인 ‘컬쳐인’도 마을의 자랑거리다. 그저 산책만 하던 마을 뒤 매봉산도 여행의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왼쪽 사진) 마을학교 한국무용체험 (오른쪽 사진) 도화 술빵 아주머니
“매일 그냥 지나치는 풀이었는데, 여행하면서 ‘지칭개’라는 이름을 배우고 나니까 다음에 볼 때는 특별하게 보일 것 같아요. 산에서 새총으로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도 즐거웠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마을에서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마을 여행에 참가한 백재은 씨의 이야기다. 마을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마을을 다시 바라보는 눈을 키웠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보는 여행, 마을살이가 재미있다는 걸 깨닫는 여행, 매일 스치듯 지나는 동네가 특별한 장소가 되는 여행, 참이슬 공정여행 팀이 바라는 마을 여행의 모습이다. 이날 여행에 참여한 마을학교 허경애 교감선생님 역시 마을 여행을 통해 다시 마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건물만 보는 여행이잖아요. 공정여행이나 마을 여행은 매일 눈인사만 하던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여행이에요. 우리는 평생학습이라는 자원과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어서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자연이 만나서 우리가 한마을에 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런 여행이 마을마다 생겼으면 해요.”
The 쉼표 평생학습마을 공정여행 팸투어
The 쉼표는 시흥시 능곡동에 사는 다섯 엄마, 이금옥, 최은경, 김정은, 유성애, 홍진영 씨가 만들었다. 육아 품앗이로 시작한 휴먼아이 마을학교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다.
2월 12일, 이들의 팸투어는 휴먼아이 마을학교에서 시작했다. 함께 여행할 사람들이 모이자 하진영 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여행은 공정한 여행입니다. 놀러 온 사람과 사는 사람이 함께 공정한 여행이에요. 외부에서 투자한 자본에서 놀다가 지역 가게에서 사 먹는 것 없이 쓰레기만 버리고 가는 여행이 아니라 지역 상점을 이용하는 여행이에요.”
휴먼아이 마을학교에서 일정을 소개한 후 선사유적지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만난 시흥시 역사관 자리, 능곡동 표지석, 능곡고등학교도 이날 여행의 이야깃거리였다. 기획도시로 잘 정돈된 모습,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능곡고등학교에서 서울대 합격자가 나왔다는 것. 이런 것들이 The 쉼표가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The 쉼표 구성원은 모두 능곡동 주민이다. 전부 다른 지역에 살다 능곡동으로 이사 왔고 여행을 기획하며 마을을 발견하고 애착심을 키워 나가는 중이다. 이날 여행에 참여한 이들도 주로 능곡동에 산다. 일곱 살 하민혁 군과 함께 여행에 참여한 박용로 씨는 능곡동에 살면서 휴먼아이 마을학교에 자녀들을 보낸다. 자신 또한 휴먼아이 마을학교에 선생님으로 함께한다.
마을 여행을 지루해 하던 민혁 군이, 선사유적지에 가자 활기를 띈다. 숨겨 놓은 초콜릿 ‘선사시대’를 찾으며 직접 나뭇가지와 볏짚으로 움집을 만들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 팀을 이루어 움집을 만들며 자연스레 대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한 후, ‘사랑의 쌀독’을 보러 이동했다. 사랑의 쌀독은 능곡동에 내려오는 따뜻한 전통이다. 주민자치센터와 교회의 교인, 뜻 있는 지역 사람들이 진행한 사랑의 쌀독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쌀을 독에 넣고 가면, 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쌀을 가지고 가는 형태로 운영됐다. 쌀은 구조물 안에 보관했는데, 이것이 불법구조물이라는 이유로 얼마 전 철거했다. 마을 한 초등학교의 전 교장 선생님을 모셔 관련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마을에 살면서 사랑의 쌀독 이야기를 몰랐던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면서도 아쉬워했다.
여행에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60대 후반까지 참여했다. 60대 후반 이정희 씨는 “젊은 사람하고 얘기하면서 넓은 세상을 보게 되고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네요.”라고 이번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후, 류자신 묘역에 들러 능곡동에 녹아 있는 역사에 관해 설명 들었다. 낮은 언덕을 올라 능곡동 전체를 내려다보는 풍경이 정겨웠다. 영모재에서는 다례를 배웠다. 평소에는 문이 닫혀있던 영모재에서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이 이날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The 쉼표는 시흥시 능곡동에서 마을 공정여행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로 마을 사람과, 외지 사람을 만나려 한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이 일은, 마을 살이에 자존감을 실어 주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는 관의 지원에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여행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The 쉼표의 마을 여행은 ‘마을의 재발견’, ‘사람의 재발견’이었다.
(왼쪽 사진) The 쉼표 공정여행 팀 단체사진 (가운데 사진) 선사유적지에서의 즐거운 시간 (오른쪽 사진) 류자신 신도비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