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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8호] '저들'은 왜 파리를 겨냥했는가?
세계사적 맥락에서 2015년은 인류에게 새로운 형태의 위협을 알려준 해가 될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로 시작하여 11·13 파리 테러(Paris’ Attack)로 이어진 테러는 앞으로도 테러가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여러 형태로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테러가 이제는 국내에서도 현실화가 된 느낌이다.
‘외로운 늑대들’이라는 전 세계적인 현상에서 테러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들은 SNS를 비롯하여 미디어와 소통하면서 역동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20세기 인류가 치른 두 차례의 세계대전보다 더 무서운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전선이 별도로 있지 않으면서도 적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전쟁은 아마도 훨씬 더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S), 즉 ‘다에쉬(Daesh, 이슬람 국가 IS의 아랍어이다)’가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능가하는 괴물로 급성장한 것을 인류는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혹자는 서구가 다에쉬를 무찌르고 괴멸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듯이 현재 프랑스가 시리아에 퍼붓고 있는 엄청난 폭격도 결국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도 많다. 지난 2월, 미국이 리비아에 폭격을 퍼부었음에도 다에쉬가 사라질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3월 7일에는 리비아와 튀니지 국경 지대 테러로 53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여 다에쉬가 이제는 튀니지 쪽으로까지 향하고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서방의 다에쉬에 대한 폭격이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테러가 해당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필자가 만났던 튀니지인과 알제리인의 말을 통해 찾아보고자 한다. 잘 알려졌듯이 튀니지는 오늘날 ‘아랍의 봄’을 파생시킨 국가이다. 2010년 12월 무함마드 부아지지라는 한 노점상 젊은이가 경제적 고통으로 자살했다. 이후 이를 애도하는 분위기가 전 아랍 국가로 번지면서 독재 정권이 무너지는 역할을 했다. ‘아랍의 봄’, ‘재스민 혁명’이라는 멋진 문구는 중동 아프리카 국가의 민주화가 머지 않았다고 예측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 이 지역에서 과연 몇 개의 국가가 민주주의라는 목표에 근접해 있는가. 민주주의는커녕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양산하고 다에쉬의 활동만 넓혀준 꼴이 되지 않았는가.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에서 군부 독재 정권은 무너졌지만 이들 국가의 민주화는커녕 오히려 테러 집단에 의해 국가적 불안감만 더 증폭되고 있다.
2015년 1월 필자는 튀니지와 알제리 국경 사막에서 한 튀니지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다에쉬에 분노하며, 다에쉬의 잔행에 대해 비판했다.
“다에쉬는 이슬람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알라(Allah)는 무슬림의 실천에 대해 사람을 죽이라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무슬림을 만나 보면 ‘다에쉬’와 같은 이슬람 과격주자들을 비판하곤 한다. 즉 이들이 이슬람에서 말하는 ‘지하드(Jihad, ‘성전’을 의미한다.)’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슬람에서 언급하는 ‘지하드’는 공격적인 의미보다는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 이슬람 경전 꾸란에도 “저들이 먼저 너희와 싸움을 걸어온다면 살해하라. 이것이 신앙을 억압하는 저들의 대가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외부의 침입과 점령으로부터 이슬람의 땅을 방어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라는 의미이다. 지하드를 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을 지켜야 한다. 민간인을 살상하거나 그들의 재산을 유린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9·11테러 이후 무수히 많은 테러에서 본 자살 폭탄 테러도 이슬람의 교리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이슬람은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창조물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알라(Allah)일 뿐이다. 이 때문에 필자가 만난 튀니지인 뿐만 아니라 일반 무슬림, 그리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까지도 다에쉬를 ‘비이슬람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파리 테러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내보였다.
“프랑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샤를리 에브도가 화근이 된 셈이다. 그들은 예언자 마호메트를 능멸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했고, 리비아 사태에도 관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프랑스는 식민지배와 이슬람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슬람에서는 우상화를 우려해 무함마드의 성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에서도 종파별로 성화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수니파의 경우 성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최근 한국의 최대 관심 지역인 시아파의 나라 이란에서는 4대 칼리파였던 알리와 그의 두 아들 하산과 후세인의 성화를 허용하고 있다. 수니와 시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하지 않겠지만 요약하자면 수니는 ‘합의’에 의한 칼리파(Khalifa, 가톨릭의 교황과 같이 이슬람 최고 지도자를 지칭한다)를 선호하고, 시아는 ‘혈통’을 통해 칼리파를 선출하는 종파이다. 어쨌든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스트의 경우는 굳이 말하자면 수니파였던 셈이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는 프랑스와 같은 서구에서 성화는 문제가 안되지만 이슬람 수니에서는 무슬림을 모욕하는 크나 큰 범죄행위였기에 테러리스트는 죽기를 각오하고 샤를리 에브도 테러를 감행했던 것이다.
‘아랍의 봄’의 진원지였던 튀니지는 현재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튀니지가 아랍 국가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말도 이제는 거짓이 될 정도로 튀니지 경제 상황은 좋지가 않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튀니지 내 40세 미만 대졸자의 2/3가 실업자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테러리스트가 활동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국가가 어디에 있겠는가. 다에쉬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 중 하나가 튀니지가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약 육천 명 정도가 다에쉬에 가담하였고, 다에쉬 대원을 위한 성 매춘을 하기 위해 떠나는 튀니지 여성도 수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다시 수도 알제로 와서 만난 알제리 언론인에게서 들은 얘기는 무슬림들이 파리 테러를 바라보는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이번 파리 테러로 숨진 희생자 수 말고 서구의 폭격으로 숨진 시리아 아이들의 숫자를 생각해 보았나? 또, 프랑스가 알제리 식민지배 기간 동안 죽인 알제리인의 수를 생각해 보았나? 당시 인구의 1/3을 프랑스인이 학살했다는 것을 보아 과연 프랑스가 ‘인권’ 등을 언급할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
알제리 기자의 말은 훨씬 더 공격적이었다. 필자 또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식민 지배의 고초를 잘 알기에 그의 말에 공감할 수가 있었다. 알제리 출신 이민자는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에 많이 정착해 있다. 알제리 출신 이민자는 프랑스 내 전체 인구의 약 6%(4백만 명)를 차지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 벤제마, 나스리 등이 알제리 출신이다. 영화배우 이사벨 아자니,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 등은 부모 중 한 명이 알제리 출신이다. 이외에도 정치인, 지식인 등 무수히 많은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이 있다. 어쨌든 프랑스 인구 중 무슬림이 10%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중 60% 이상을 알제리 출신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프랑스에서 늘 차별받고 있고, 그것에 대해 늘 불만이다. 게다가 이들은 취업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인권의 나라 프랑스에서 취업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차별받는지 의아해할 수 있지만, 이미 서류에서부터 이들 이민자 이름은 프랑스 이름과 다르게 나타난다. 얼굴을 보기 이전에 이미 서류 심사에서 보여지는 이름 때문에 탈락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때문에 이들은 주로 몰리는 곳을 중심으로 모임을 갖고 모스크(이슬람 사원)에 들러 기도하거나 설교를 듣고 토론을 한다.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이슬람 급진주의 사상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된다.
글 사진 임기대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현 대전문화연대 정책위원장
현 한국프랑스문화학회 문화기획이사
전 국가대테러 협상위원(2010~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