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호]작은도서관은 꿈 차롱이다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도서관은 대전 중구에 있는 한밭도서관이다. 언덕 위에 있어 한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가방이 무거운 날이면 올라가기 전부터 숨이 막혔다. 막상 올라가서는 편한 의자보다는 책장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최대한 사람이 안 지나다닐 법한 책장 사이에 앉아 마치 내 서재인 것처럼 상상했다. 걸어서 10분까지는 아니었지만, 제법 가까운 동네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서재’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도서관에 가면 되지.’라는 위로는 굳이 집에 커다란 서재가 없어도 될 만큼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리 마을에 있는 ‘내 서재’를 아시나요

‘작은도서관’이라는 낱말은 내 서재처럼 생각했던 동네 도서관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했다. 조용히 해야 했고, 누군가 다가오면 비켜 줘야 했고, 엉덩이가 딱딱해져 올 때면 일어나 자세를 바꾸어야 했던 불편함이 있었지만, 책장 사이에 앉아 책을 읽으면 더 깊숙하게 책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작은도서관은 큰 도서관보다 더 긴밀하게 누군가의 서재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대전광역시에 있는 239개 도서관 중에 작은 도서관은 215개다. 그중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립 작은도서관은 40개다. 다섯 개 구 중에 동구에만 공립 작은도서관이 없다. 구마다 작은도서관 설치 및 운영 지원에 관한 조례가 조금씩 달라서 운영시간이나 운영 형태가 달랐다. 


중구에는 공립 작은도서관이 열네 곳 있다. 대흥마을문고, 돌다리작은도서관, 맑은샘도서관, 목동마을문고, 문창동마을문고, 문화1동마을문고, 버드내작은도서관, 부사동마을문고, 산성마을문고, 오류동마을문고, 용두동마을문고, 은행선화동마을문고, 중촌동마을문고, 태평1동마을문고까지 대부분 주민센터 안에 붙은 서가에 작은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었다. 


돌다리작은도서관은 1999년 개관했다. 주민센터 작은도서관은 대부분 주민센터와 한 공간에 있는데 돌다리작은도서관은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1층엔 주민센터가 있고, 주민센터와 별개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면 돌다리작은도서관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입구에는 책을 빌려주는 사서도 있었다. 모두 마을에 사는 자원봉사자다. 


6천 권 넘는 책을 보유하고 있는 돌다리작은도서관은 제법 보고 싶은 책이 많았다.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책도 많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주로 어른들이라서 어른을 위한 책이 더 많았다. 아이들보다는 주부나 퇴직자, 주민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오간다. 주문할 때 희망도서를 신청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다. 자원봉사자들은 새 책이 들어오는 날마다 이용자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오늘 작은도서관에 이런 이런 새 책이 들어왔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주변 병원이나 약국 등에 기간대출을 하기도 한다. 스무 권 정도 선정한 책을 일정 기간 주변 기관에 빌려주는 것이다. 책을 보러 오지 못해도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도서관 이용을 권장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버스 정류장에 붙이기도 했다. 이는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하고, 회의 내용을 주민센터와 공유한다. 참 아까운 공간이라서 더 많은 사람이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작은도서관은 주민이 함께하는 도서관이다

“저는 자원봉사한 지 10년 넘었어요. 원래 마을문고였던 시절부터 자원봉사를 했죠. 작은도서관이라고 이름 붙인 건 리모델링한 후였어요. 리모델링하고 한밭도서관과 통합 전산시스템을 사용해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전문사서분들이 와서 자원봉사자 교육을 해 주셨죠. 우리 도서관은 드물게 자원봉사자로만 돌아가는 시스템이에요. 주민센터 도서관이 그러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매주 화요일 돌다리작은도서관을 지키는 이영흔 씨의 이야기다. 돌다리작은도서관은 자원봉사자 여럿이 팀을 이루어 주 5일을 지킨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열두 시 반부터 다섯 시까지 문을 연다. 주민센터에서 특별한 관리가 없어도 자원봉사자 열한 명이 팀을 이루어 도서관 문을 여닫는다. 주민센터 도서관이 자원봉사자들로만 문을 여닫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오래된 자원봉사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운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건 자원봉사자 ‘팀’을 꾸려 팀장을 두고, 책임감을 부여한 것도 동력이었다. 배선경 팀장은 자원봉사를 시작하며 ‘재미’를 찾았다. 


“원래는 집에만 있는 주부였어요. 동사무소를 지나가는데 아는 동네 언니가 해 보지 않겠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마침 무언가 하고 싶은 욕망이 있던 때라 시작하고, 자원봉사자 팀의 팀장까지 맡게 되었죠. 저한테는 자원봉사가 제 삶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어요. 도서관 자원봉사를 하면서 여러 외부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거든요. 이게 제 삶의 활력이 되었고요. 우리 도서관이 저처럼 머뭇거리던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그런 도서관이었으면 좋겠어요.” 
돌다리작은도서관은 제법 넓은 공간에, 제법 많은 책이 잘 정리된 작은도서관인 데다가 제법 오래된 봉사자가 있어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장점이 있었지만 열두 시 반부터 다섯 시, 평일에만 문을 열기에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었다.

                                               

도서관이 있다는 건 시작일 뿐이다

2015 국민독서실태조사를 살피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9.1권, 평일 독서시간은 23분, 월평균 공공도서관 이용 횟수는 1.8회이다. 정부는 매년 책 읽는 국민을 조사하고, 책 읽는 것을 장려하고, 도서관을 세금으로 짓는다. 이는 절대 ‘그냥’이 아니다. 도서관에 투자하는 것은 그 효과가 배로 나타난다. 2010년 정부가 수행한 공공도서관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 측정 연구에서 공공도서관 서비스의 투자 대비 효과는 3.66에 달한다. 공공도서관에 투자한 금액이 1천 원이라면 그 효과는 3,660원의 경제적 가치를 만든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도서관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타나는 효과는 아니다. 

1997~1998년 영국은 토니 블레어 정부가 새로운 도서관 운동을 펼치면서 공공도서관은 도시재생의 핵심 시설이었다. 주민 대다수가 흑인과 히스패닉이었던 페캄은 도서관 설계 과정부터 주민 협의를 중요하게 적용하였고, 주민이 원하는 복합 도서관으로 탄생하게 했다. 마약 문제, 우범 지대로 꺼려졌던 동네가 변하고, 사람들이 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도서관에 모여 모임을 만들고, 점점 실업률도 줄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도서관을 ‘가난한 마을의 부자 도서관’이라고 부른다. 페캄이 변한 건 주민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은도서관은 주민 가까이에 있는 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은 무엇보다 많은 주민이 이용하기 편안한 곳에 있어야 한다. 괴정동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지치울작은도서관’은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공간이었다. 아담한 주택 한 채에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반 주택이었던 곳을 서구청에서 매매해서 신축한 거예요. 저희는 법인 단체예요. (사)미래학술연구회에서 위탁 운영합니다.”


(사)미래학술연구회 대표 김정 대표의 이야기다. (사)미래학술연구회는 교육 사업을 연구하는 단체다. 이 연구회는 자기주도학습과 스토리텔링 수학을 가르친다. 엄마가 직접 스토리텔링 수학을 배워서 아이가 자기주도학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엄마를 교사로 만들어 아이가 더 쉽고 재미있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단체다. (사)미래학술연구회는 서구청 공공 도서관 위탁 운영 공고 소식을 듣고 위탁운영을 지원했다. 지치울작은도서관 위탁운영을 맡고 갈마동에 있던 사무실도 괴정동으로 옮길 예정이다. 


지난 12월부터 2월까지는 책을 정리했다. 그래도 문을 계속 열어 두니 오가는 주민이 있다. 앞으로 도서관에서 주민들이 문화를 체험하고, 독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책만으로는 주민이 오가는 데 한계가 있을 테니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특히 김정 대표는 도서관 바로 앞에 다도방을 만들어 다도 교실을 운영할 계획도 있다. 여러 체험과 연계한 프로그램들이 앞으로 지치울작은도서관을 채울 예정이다.


지치울작은도서관은 아늑한 분위기가 따뜻함을 주는 공간이었다. ‘지치울’이라는 이름은 괴정동의 옛 지명이라고 한다. 작은 집 한 채와 잘 어우러지는 이름이기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궁금한 곳이기도 하다.

                  

                      

작은도서관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도서관이다

2000년대 이후 작은도서관은 주민 밀착형 생활문화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인지 정말 많은 작은도서관이 생겼으나 정말 ‘작은도서관’ 답게 운영되는 곳은 많지 않았다. 많은 공간에 작은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작은도서관이 이 마을에서 어떤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으로 운영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유성구 희망마을작은도서관은 2013년 개관했다. 유성구 희망마을만들기 사업으로 건물을 짓고, 1층은 경로당, 2층은 도서관, 3층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한다. 2013년부터 관장을 맡은 김경언 관장은 강령탈춤전승회의 대표이기도 하다.


“도서관에서 마을 문화를 만들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전통을 계승하는 제 본업과도 맞닿은 일이었어요. 탈춤으로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전통 연회의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마을 사람이더라고요. 마을에서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게 현대에서야 온 낯선 개념이 아니라 전통 연회 안에 이 구조가 있더라고요. 마을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던 전통 기능을 펼치고 싶었어요. 그런 기능을 펼치는 공간으로 도서관이 적합했죠. 먼저 마을 사람들과 약속하는 공간이잖아요.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연다는 약속,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문을 연다는 신뢰가 있잖아요. 두 번째로 문턱이 없어요. 특정한 목적이 있어야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라는 거예요.”


대전시 유성구는 조례로 운영시간을 규정하고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작은도서관 설치 및 운영 조례’의 제9조 운영시간의 첫 번째 항목은 ‘주5일 이상 작은도서관을 개관하여야 한다.’이고, 두 번째 항목은 “운영시간은 작은도서관마다 자율적으로 정하되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의무적으로 운영하여야 한다.”이다. 동구의 경우 “작은도서관의 운영은 주 5일 이상으로 하고, 개관 및 폐관 시간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와 같이 대부분 구는 몇 시간 이상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시간은 운영기관의 자율에 맡기는 편이다.


희망마을도서관의 약속은 많은 사람이 도서관에 발길을 붙이게 했다. 개관, 폐관시간을 약속하고 마을을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주변 놀이터를 마당 삼아 함께 노는 날을 만들었다. 보행에 취약한 사람들이 걷다가 잠시 쉴 수 있는 ‘부엉이마을 의자’를 만들기도 했다. 또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베이킹 수업을 하는 친구들이 책 내는 걸 도와주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였어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던 아이들이 청소년 시기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때였죠. 그런데 그날 도서관 문을 열지 않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날 문 열면 안 되느냐고. 자기들은 그날 갈 데가 없다고요.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런 날에 애들이 어딜 가겠어요. 그래서 좋다고, 대신에 너희가 확실히 해야 한다고 했죠. 아침에 와서 문 따 주고, 볼일 보고 저녁에 와서 문 잠그는 것만 해 주기로 했어요. 아이들은 그날 자기들끼리 프로그램 만들어서 포스터 붙이고 하더라고요. 그날은 종일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친구들을 맞이했어요. 문 닫으러 오니까 즐거워하는 아이들 보면서 이게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작은도서관은 가고 싶은 도서관이다

마을에 있는 도서관은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걸 제안하고 함께 고민하고 실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도서관에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가능하다. 2014년 기준 전국 작은도서관은 공립 1,302관, 사립 3,932관으로 총 5,234관이다. 대전에도 215개의 공립, 사립 작은도서관이 있다. 우리 마을에 어떤 도서관이 있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도서관은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가 회복되는 거점이 되었으면 해요. 마을도서관마다 생각 차이는 있지만, 제대로 된 운영비도 나오지 않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니까 분명 철학이나 기조가 비슷할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마을도서관은 운영자만 감당하는 곳이 아니라 주민도 함께 감당해야 하는 곳이에요. 우리 마을과 맞는 도서관을 만드는 건 마을 사람이 함께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희망마을 작은 도서관 김경언 관장의 이야기다. 좋은 도서관의 첫 번째 조건은 가고 싶은 도서관이다. 알고 싶은 방대한 자료가 있거나, 가면 좋은 사람이 있거나, 시설이 좋거나, 쾌적한 환경이라서 등 가고 싶은 이유는 제각기 다를 테지만 가고 싶은 도서관이야말로 좋은 도서관이다. 희망마을작은도서관은 개관한 지 3년 사이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가고 싶은 도서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의 몫도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주시 한립읍 금능에 있는 한 작은도서관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잠옷을 입은 아이들이 늦은 시간까지 도서관 바닥을 뒹굴뒹굴한다. 그날 하루만큼은 엄마, 아빠 없이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함께 잘 수 있는 날이다. 아이들은 손꼽아 그날만을 기다린다.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면서 영화도 보고, 놀이도 하고, 책도 읽는다. 신나게 놀다가 어둑해지면 어느새 곯아떨어진다. 영화관 없는 작은 제주의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영화 보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도서관의 이름은 꿈차롱도서관이다. ‘차롱’은 대나무를 사용해 만든 음식 담는 그릇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만약 가까운 곳에 영화관이 있었다면, 도서관에서 영화 보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밤새 그곳에 차곡차곡 꿈을 담는다. 


우리 마을에도 작은도서관이 있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지자체에 등록된 작은도서관은 공공의 성격을 띠겠다고 선언한 곳이다. 도서관이야말로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우리는 도서관을 이용하고 도서관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215개라는 숫자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215개 도서관이 우리가 원하는 도서관의 모습이 되려면 이용하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야 한다. 어떤 도서관이 우리 마을에 맞는 도서관인지, 도서관이 마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무조건 화려한 도서관을 짓기 전에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도서관의 주인은 책이 아니다. 결국 원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건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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