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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7호] 오후로_칼럼박효배
큰 사진: 오후로 | 작은사진: 오후로 리모콘
집에 있는 욕실을 떠올려 보세요. 욕조가 있고 세면대가 있고 변기도 있습니다. 욕조에 자주 들어가시나요? 저는 어렸을 적 한두 번 욕조에서 논 기억은 있지만 거의 샤워만 하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한국인에게 있어 집안의 욕조는 들어가도 그만, 안 들어가도 그만인 선택사항입니다. 일본인에게 있어 욕조 ‘오후로’는 우리나라의 욕조와 사뭇 다른 존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사마다 김치를 먹듯, 일본 사람들은 매일 당연하게 몸을 따듯한 물에 담근답니다. 오후로에 관한 문화와 규칙도 흥미롭습니다.
일본인이 오후로에 매일 들어가는 걸 즐기는 이유는 바로 일본이 섬나라라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비가 자주 오고, 기온도 높으며 습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날씨 속에 살다 보면 몸을 개운하게 하고 싶다는 욕구가 높아지지요. 그래서 오후로에 들어가는 풍습이 생겼다 합니다.
일본의 집은 변기와 오후로가 있는 공간이 따로따로인 구조가 많습니다. 오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에요. 오후로의 생김새는 우리나라의 욕조와 비슷합니다. 요즘은 각종 기능이 달린 오후로가 인기예요. 주로 오후로 근처와 주방에 리모컨이 있어 기능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오후로의 물을 받는 것은 거의 엄마의 역할이니, 엄마가 자주 있는 주방에 리모컨이 있는 거지요! 오후로의 리모컨에는 자동으로 물을 받고 식을 때마다 다시 덥혀 주는 기능은 물론, 통화 버튼이 있어 주방에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받는 물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일정한 시간에 물을 받을 수 있는 예약 기능도 있습니다. 먼지가 떨어지거나 물이 식지 않도록 사용하는 오후로 뚜껑도 필수품입니다. 오후로에서 사용한 물은 빨래 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탁기에 장착할 수 있는 오후로용 호스는 일본의 모든 집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호스로 오후로의 물을 끌어 쓰지요.
오후로의 물은 한 번 받으면 온 가족이 함께 씁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목욕 다 했다고 해서 욕조 물을 버리는 것은 실례랍니다. 오후로에 들어가는 순서도 정해져 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들어가는 건 손님입니다. 손님이 없는 경우, 가장이 제일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에 아이들, 마지막으로 아내가 들어갑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순서를 지켜서 들어가는 가족은 드물다고 해요. 귀가한 순서나 들어가고 싶은 대로 등 편의에 맞추어 들어가는 순서도 변해 가고 있습니다.
슈퍼 목욕탕
오후로는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흥미로운 오락의 대상이기도 하지요. 일본에서는 흔히 입욕제를 구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향기와 기능이 있어 취향대로 고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꽃향기, 산림욕 향기, 아로마 향기 등이 있습니다. 어깨 결림을 낫게 해주는 기능, 칼로리를 소모하는 기능 등도 있습니다. 또한, 집안의 오후로가 아니라 돈을 주고 입장하는 목욕탕의 오후로에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보통 이런 목욕탕에는 여러 종류의 오후로가 있어요. 마사지 오후로, 초음파 오후로, 원적외선 오후로 등 마치 놀이기구처럼 즐길 수 있지요.
오후로를 좋아하는 일본의 문화는 ‘슈퍼 목욕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나라의 찜질방과 비슷한 개념인데요, 찜질방 대신 여러 종류의 오후로가 있다고 보면 됩니다. 커다란 시설에 오후로 뿐만 아니라 노래방, 영화관, 게임방, 식당 등 각종 오락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요. 슈퍼 목욕탕에서는 대부분 시설 내에서 입을 수 있는 ‘유카타’라는 옷을 빌려 줍니다. 유카타는 일본에서 옛날에 귀족들이 목욕할 때 입었던 옷입니다. 요즘에는 축제에 갈 때나 호텔에서도 입는 캐주얼한 전통 의상이지요.
세계적으로 오후로에 들어가지 않고 샤워만 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매일같이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은 일본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특히 온돌 문화가 없는 일본은 겨울이 되면 무척 추우므로 오후로에 오랫동안 몸을 담가 추위를 잊습니다. 저도 일본에 와서 저녁을 먹고 오후로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어요. 일본인들은 냉방기기로 차가워진 몸을 덥히러 여름에도 오후로에 들어가지만 더운 여름엔 도저히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아직은 쌀쌀한 날씨니 오후로가 기분 좋은 때입니다. 오늘 저녁은 향기 좋은 입욕제를 가지고 오후로에 몸을 담그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