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7호] 토탈 이클립스_이경원감독칼럼

# 1

칼럼을 준비하며,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한때 그는 독보적인 미모와 자신만의 연기방식으로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었지만, 그 방식의 연기는 그때 끝났다. 언제부터 레오의 영화를 꼼꼼히 챙겨 보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면, <비치>를 촬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에 간 이후인 것 같다. 제대하니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함께한 <갱스 오브 뉴욕>에서 콧수염을 기르고 등장했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역시 스콜세지와 작업했다. 그리고 더는, 기억 속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한참 뒤 외신을 통해, 그에게 <타이타닉>과 <비치>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후 따라온 수상 실패의 불운, 작품 선택의 패착이 불러온 연기 슬럼프를 전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신작 <레버넌트>에서 그의 모습은 분명 감동적이다. 그리고 엄청난 고생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아니라 다른 배우였다고 그 배역을 그만큼 못했을까. 예로, 매튜 맥커너히(달라스 바이어스 클럽)나 마크 러팔로(폭스 캐처) 같은 배우 말이다. 오래전 자유롭게 순진무구함을 뿜어냈던 천재의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예전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은, 1996년 <토탈 이클립스>의 광기 어린 레오로 인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진, 나와 그 시절에 대한 소고였을 수도 있다. 유치하고 한심한 모습으로 가득 찬 시절이지만, 그 덕분에 뻔하진 않았다. 이번 글은, 작심하고 <토탈 이클립스>와 나에 대한 사담으로 채워 보겠다.

              

                  

# 2

토탈 이클립스>를 알게 된 건 여고생 B로 인해서였다. 군산의 옛 지명을 딴 ‘진포’라는 이름의 민간 풍물패는, 각 학교 풍물 동아리에 속한 고등학생이 모여 노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B는 진포에 자주 왕래하던 여학생이었고, 예쁘장하게 생긴 데다가 행동은 왈패스러워 유독 눈에 띄었다. 조금은 이상한 아이로 통했던 B는, 조용하고 수줍음 많던 나를 툭툭 건드는 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뜬금없이 랭보를 아느냐고 물었다. 알 리가 없었던 나는 ‘들어 봤다’는 자존심 섞인 대답을 했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서점을 뒤졌다. 그리고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라는 시집을 구했다. 대단해 보이는 제목만큼,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단어의 조합이 이어졌다. 시에 대한 감상보다, 책날개에 박힌 랭보라는 시인의 눈빛이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딜 보고 있는지 모를, 멍하게 빛나는 눈빛이었다. 그 시집을 들고 다시 B와 만났다. 정작 B는 그의 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름이 긴 어느 배우에 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아마 그 아이는 시집을 읽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토탈 이클립스>라는 영화를 언급하며, 야하니까 비디오로 빌리기 힘들 거라고 했다. 빌릴 수 있으면 빌려 보라는 말이었다. 배우의 이름은 잊었지만 영화 제목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동네 비디오 가게를 찾았다. 빨간 띠로 둘러진 테이프가 꽂혀 있었고, 뒷면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긴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중에야, 샤론 스톤이 출연한 <퀵 앤 데드>의 그 꼬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디오 가게 아줌마는, 명분이 있다면 언제나 우리 편이었다. 하지만 공포물로 가장한 <13일의 금요일>을 빌릴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 영화는 명분이 없었다. 게다가 한 살 어리던 가게 집 아들은, 자신은 절대 19금 비디오를 보는 학생이 아니라는 듯 근엄한 표정으로 엄마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해졌다. 언니가 테이프를 빌리면 같이 볼 수 있었던 B와 달리, 나는 형이 없었다. 어느 날 용기를 내 다시 비디오 가게를 찾았다. 아줌마는 안 계시고 근엄한 아들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 친구 앞에 빨간 테이프를 꺼내 놓으면 날 우습게 알까, 더욱 꺼내 놓을 수 없었다. 빌리지도 나오지도 못하며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데, 그 아이가 자리를 비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테이프를 훔치고 말았다.

              

                 

# 3

<토탈 이클립스>는 확실히 위험한 영화였다. 동성애를 다뤘거나, 베를렌느의 아내로 나온 로만느 보랭의 거의 나신 때문이 아니다. 레오인 랭보와 랭보인 레오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완벽히 자유로운 연기를, 넋 놓고 바라봤다. 후반에 어른 분장을 하고 마르세유 병원에 입원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레오 자신이 원래 놀던 대로, 하던 대로 자유롭게 랭보를 연기하는 것 같았다. 조금 추상적이지만, 그 무렵 나에겐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뭐가 힘든지 몰라 힘들어했다. 사회는 우리를 정의할 수 없는 X세대라고 표현했지만, 우리가 X세대로 명명되는지는 한참 뒤에 알았다. 선배들에 비해 딱히 눈앞에 저항해야 할 대단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듣고 보이는 세상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데, 우리는 오래된 사람들에게 오래된 것들을 오래된 방식으로 배우고 있었다. 남자애들은 서로의 몸을 들이받으며 존재를 확인했고, 여자애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욕하고 울고 웃었다. 고리타분한 시대를 조롱하고 깨부수던, 같은 나이의 영화 속 소년은 충격적이었다. 독선적이고, 도도하며, 경멸과 확신에 차 있었고, 천재적이며, 아름다웠다. 그의 거침없는 몸짓과 대사들은, 그 모습 그대로 음울한 내 가슴속을 방방 뛰어다녔다. 실제 그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대사 몇 구절을 적어 본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게 없다는 것’,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그들을 생각하듯 그들도 나를 생각하는 것.’, ‘가족이나 결혼을 지속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니야. 어리석음이나 이기심, 공포지. 사랑은 재창조되어야 해.’, ‘나는 찾았어, 영원을. 그것은 바다와 섞인 태양.’ 나는 그의 대사 원문을 도트 프린터로 뽑아 달달 외우고 다녔다. 그리고 공부 대신, 매일 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세상과 나 사이에 존재하던 부담스럽고 불쾌한 장력들,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어른의 말은 잘 들어야 하고, 연애나 술 담배를 해서는 안 되고, 학생이라는 계급에 충실해야 하는, 그것에 무력하고 답답한 감정을 글 속에 쏟아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흐리멍덩한 눈빛은 매섭게 변했고, 점점 괴팍해졌다. 밤이면 몰래 나와, 풍물패 아이들과 군산항까지 4km 직선도로 위를 소리 지르며 걷고 뛰었다. 누군가는 공중전화를 때려 부수고, 누군가는 술에 취해 도로 위에서 춤을 췄다. 대책 없이 고3이 되어,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데 반장에 자원하고는, 공부는 해서 무엇하냐며 반 분위기를 말아먹었다. 1997년 수능이 끝나고, 당시 박노해의 신간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책 제목을, 교실 뒤 사물함에 붉은 락카로 크게 칠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렇게 희망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재수학원에 들어갔고, M과 H를 만났다.

             

               

# 4

M은 1997년 외환위기로 미국 유학 중에 입국한 한 살 어린 동생이었다. 검정고시 학원으로 간다는 것이, 상담을 어떻게 했는지 그 학원으로 와 공부하게 됐다. M은 조금 과장해서, <토탈 이클립스>에서 튀어나온 못생긴 랭보 같았다. 똑똑했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으며, 모든 것에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성격이 모날 대로 모난 나와 아귀가 잘 맞았고, 우리는 매일 전주 경기전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영화와 음악과 여자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술에 취해 객사를 뛰어다녔다. 나이가 한참 많던 학원 형들은, 버릇없이 구는 우리를 그저 귀엽게 봤던 것 같다. 다양한 아이들이 매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재수학원은 내내 재밌었다. 하지만 같은 반 여학생 H와 대면하면서 내 철없는 시절도 끝났다. H는 똑똑하고 세련된 아이였다. 성격도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해, 나 같은 친구도 잘 맞춰 주곤 했다. 언젠가 H가 학원 책상에 덮인 종이에 시를 하나 적어 놨었는데, 나는 그 시를 읽고 H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래보다 조금 어른스러운 데가 있어, 막역하기엔 거리감이 있었다. 나는 선물이랍시고 용기 내, 몇 년 전 훔친 <토탈 이클립스> 테이프를 H에게 건넸다. 내가 왜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 이해받고 싶었던 것 같다. 며칠 후 H는 영화를 봤다고 했다. 그리고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따라 하는 거야?” 나는 그 순간 몰려드는 수치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명확한 기분은, 그 아이가 한 말이 옳다는 증거 같았다. 무언가 나에 대해 주장하기엔, 현실은 힙합바지를 입고 작은 재수학원에 앉아 바둥대는 모습이 전부였다. 돌아보니 부모님은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었다. 스스로 한심해 얼마간 방바닥을 구르다, 놀기 좋던 학원을 그만두고 도서관에 처박혔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써 놓은 일기장을 모두 모아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M도 학원을 그만뒀다고 들었다. 대학에 가서도 H와 연락했지만, 다시 그 테이프를 돌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 5

근래 다시 <토탈 이클립스>를 찾아보며, 이제는 구글에서 제목만 검색해도 영화 전편이 스트리밍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언가 훔치면서까지, 부모님 몰래 수십 번을 돌려보며 눈에 담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여전히 기차가 다가오며 둥둥거리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마음을 들뜨게 하고, 뒤이어 등장하는 디카프리오의 모습은 눈부시다. 나는 가끔, 모아서 버린 그 시절 일기장에 뭐라고 써 놨었는지 궁금했다. 누군가를 따라 했든 그렇지 않든, 완전히 머리가 열려 써 내려간 글이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제대를 하고 기자 시험을 준비하다가, 2005년 영화를 시작하며 K를 만났다. K는 내게 처음 영화를 가르쳐준 여성 감독이었고, 당시 지금의 내 나이였다. 그녀는 수업을 시작하며, 우리에게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지 물었다. 나는 왠지 <토탈 이클립스>를 가장 좋아했다는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좋아하지 않으려 애쓰다 이제는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을,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좋아했던 것을, 그때는 좋아했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냥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러자 K는 자신이 폴란드 우츠 영화학교 출신이며, 유학 시절 아그네츠카 감독에게 직접 사사했다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감독처럼, 한 인물의 전기를 그린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왠지 그녀에게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로 남의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를 먼저 하나씩 영화로 꺼내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왈가닥 여고생이었던 B와의 일을 그린 영화를 만든 다음 해, 12년 만에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은 후였다. 나는 넌지시 예전 우리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보여 줬다. 하지만, B는 그때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몇 년 후 만든 다른 영화의 제목을 붙일 때는, 학원에서 만난 H와 그녀가 학원 책상에 적은 시가 떠올랐다. 그 시는 류시화의 <안개 속에 숨다>였다. 상황이 나아지자 다시 유학을 떠난 M은, 몇 년 전 5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했다. 떠돌며 5개국 여자와 사귄 결과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정착해 무역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문득, 시를 접고 에티오피아와 아덴을 방랑하며 커피 무역을 하며 살았던 랭보가 떠올랐다.

             

             

# FIN

앞장의 사진은, 20년 전 가장 좋아했던 레오의 사진이다. 당시 책받침에도, 화보에도 나오지 않아, 찾는 데 사흘이 걸렸지만 기쁘다. 모두 <레버넌트>에 대한 이번 아카데미 시상 결과가 궁금하겠지만, 내가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더 클라우디드 룸>이라는 영화다. ‘빌리 밀리건’이라는 원작을 영화화 한 것인데, 세 건의 강간 사건을 일으키고 체포된, 24가지 인격을 가진 인물을 레오가 연기한다. 그 인격에는 8살 아이부터 레즈비언까지 속해 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그의 완벽히 자유로운 연기를 넋 놓고 보고 싶다. 기대된다. 

                 

                            


글 이경원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