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7호] 우리계속그림그리자

왼쪽 김나현 씨, 오른쪽 노의정 씨
세새아지트 노의정, 김나현 
곱창전골, 생선구이 백반이 유명하다는 식당 만석꾼은 큰 길가에서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있다. 자글자글 생선 굽는 냄새가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얼마 전부터 동그랗고 작은 간판 하나가 붙었다. 세 마리의 새가 지저귀는 공간이라는 의미란다. 기경지 작가는 참새, 김나현 작가는 도요새, 노의정 작가는 까마귀다. 
“세 마리의 새가 지저귀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겠어?”
“시끄러울 것 같은데?”
기경지 작가의 물음에 노의정 작가가 반문했지만, 공간 이름은 세새아지트로 정했다. 의미도 발음도 좋았다. 1월 8일 계약하고 꼬박 한 달 동안 벽지를 뜯고, 바닥을 뜯고, 도배를 새로 하고, 들여다 놓을 물건을 주워서 이제 막 정리를 마무리했다. 겨우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월세 내는 날이 다가왔다. 한 달이 훌쩍,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가 버렸다. 처음 공간을 알아볼 때, NC백화점 뒤부터 대흥동 일대까지 구역을 정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공간을 본 건 아니지만, 이곳을 콕 집은 건 베란다 때문이었다. 만석꾼 건물 2층,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 스무 평 남짓한 베란다가 달려 있다. ‘날 풀리면 베란다에서 많은 걸 할 수 있겠지.’라는 전제는 마음을 들뜨게 했다. 제법 큰 설치 작업을 할 수도 있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곳을 선택했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계속 그림 그리지?”

노의정 경지 언니가 아파서 못 나왔어요. 저희 셋은 원래 ‘캐스터네츠(castanets)’라는 모임의 일원이에요. 캐스터네츠는 저희 셋을 포함해서 아홉 명이 구성원이에요. 캐스터네츠는 경지 언니가 주축이 돼서 만든 모임이에요. 시각예술만 아니라 사진 찍는 분도 있고, 설치도 있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젊은 작가들이 있는 모임이에요. 서로 작업하는 걸 공유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해요. 전시도 기획하고 있고요. 

김나현 캐스터네츠 중에서도 대학원에 바로 진학하지 않고, 작업실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게 세새아지트예요. 대학원을 졸업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그림 그리지?’라는 질문을 계속할 것 같은 거예요. 대학원 진학이라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미리 고민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원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진학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젊으니까 시간은 많다고 생각했어요. 

                    

Q.‘앞으로 어떻게 그림 그리지?’라는 질문은 ‘작가’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은 미술학도들은 계속 자신에게 묻는 말이겠네요. 

김나현 졸업 전시 끝나니까 마치 수능 본 느낌이었어요. 이제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도 없고, 우리 작품을 봐 주지도 않고, 그림을 그릴 공간도 없고, 전시는 꿈도 못 꾸겠구나. 정말 허무했어요. 너도 그렇지 않았어?

노의정 수능도 몇 년 동안 이것만 위해서 달려왔는데 한순간에 끝나버리잖아요. 졸업전시도 마찬가지였어요. ‘끝났다.’ 정말 끝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은 친구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거예요. 

김나현 저희도 대학원 붙기까지 했는데 작업실 만드는 걸 택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원에 간다고 고민이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앞으로 어떻게 계속 그림 그리지?’라는 질문을 계속할 건데, 대학원에 가는 건 그 질문을 미루는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공간은 어떻게 계속 운영하지?”

Q.공간을 마련하는 게 그림을 계속 그리는 데 답은 아니잖아요. 일단 금전적인 문제가 클 것 같은데요

노의정 학교 밖을 나와서 미술을 시작하는 건 어차피 어려운 일인 거예요. 그림 그리면서 먹고 산다는 건 작품을 팔거나 지원받는 거잖아요. 작품을 팔려면 인지도가 있어야 하고, 인지도가 있으려면 전시를 많이 하고, 작품을 인정받아야 해요. 그런데 전시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죠. 돈을 벌려면 작품을 제대로 할 시간이 없어지고요. 지원받는 것도 마찬가지로 전시 경력이나 증명할 무엇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거고요. 어차피 작업실은 필요하고, 일상적으로 우리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았어요. 지난 1월 8일에 계약하고 한 달 동안 정리만 했는데 월세 내는 날이라고 연락 받았어요. 진짜 한 달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져요. 막상 월세 내려니까 만만치 않더라고요. 월세 내려고 백화점에서도 일하고 오늘부터 집 근처 카페에서도 아르바이트하기로 했어요. 

김나현 저는 카페 도시여행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공간 만드는 데 많이 참여 못했고, 의정이랑 경지 언니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Q.그런데 왜 대흥동에 작업실을 구한 거예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노의정 경지 언니한테는 여기가 정말 특별한 곳이었대요. 언니가 이 동네를 많이 주장했어요. 언니는 자주 이사를 했는데 처음으로 고향 같은 느낌이 든 곳이라고 했거든요. 저희도 대전에서 예술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니까 괜찮은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1주일 정도 돌아다니다가 테라스가 있어서 여길 골랐어요. 

               

Q.그럼 작업실 겸 전시 공간이네요. 전시 공간일 때만 사람들에게 문을 여는 거고요. 

김나현 네. 평소에는 저희 작업실이고 6월에 오픈 스튜디오를 할 거예요. 각자 목표가 있어야 그릴 것 같아서 목표를 정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중간고사 전까지 몇 점을 그리는 거로 목표를 잡고 그만큼 했거든요. 그래서 저희끼리 그렇게 정했어요. 저는 총 합해서 200호를 그리는 게 목표고요. 의정이는 호수 관계없이 20점을 그리는 게 목표래요. 정말 많은 거예요. 그런데 의정이는 아마 할 거예요. 

노의정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게을러질 것 같아서 계획을 세웠어요. 그리고 오픈 스튜디오 때만 문을 열 계획은 아니에요. 음. 아직은 구상만 한 단계라서 구체적이지 않은데,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드린다든지 그런 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대흥동이 ‘문화’가 있는 동네라고는 하지만, 어르신들한테 그런 혜택이 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막상 이곳에 사는 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장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분들에게 직접 문화 혜택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직은 그런 생각만 했어요. 

김나현 우리끼리만 이 공간을 쓰기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젊은 친구들은 많이 누리고,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니잖아요. 

                    

                  

“우리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Q.많은 젊은 작가들이 작업을 계속하고 싶고, 전시하고 싶고, 두 분과 비슷한 고민으로 공간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많은 공간이 그렇게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도 했거든요. 

김나현 경지 언니나 저나 의정이나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만난 거예요. 2년 만이라도 함께 작업실을 해보자. 2년 동안에도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은 대학원에 가고,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해도 되는 거고요. 꼭 이 작업실을 함께 써야 하고, 지켜야 하고, 그런 게 아니라 저희가 그림을 그리는 공간인 거예요. 함께 그림을 그리다가 뭔가 동네에서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거고요. 그러니까 큰 부담을 가지거나 그런 건 없어요. 

노의정 작업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니까요. 저희의 최종 꿈이 세새아지트는 아니에요. 지금은 함께하는 동료의 개념이 더 커요. 혼자 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조금 더 할 힘을 얻거든요. 저는 정말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제 그림을 보고, 제 작품인 줄 딱 알아보는 거예요. 그렇게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고 싶어요. 

김나현 저는 정적인 사람이라서…. 그렇게 큰 꿈은 없어요. 그냥 지금까지 해 본 일 중에서 그림이 저한테 제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평생 안 질리고 계속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꿈이죠. 아직 젊으니까 책임질 게 없을 때 이런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노의정 그림 그리면서 계속 질문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런 게 정말 좋아요.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너무 우울해요. 작업실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안정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그림 그릴 때가 가장 좋아요.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글 사진 이수연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