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7호]

                         

장소에 새겨진 흔적 

연일 포근해서 겨울이 사라진 건 아닌가 싶을 때 칼바람이 불었다. 뚝 떨어진 영하의 날씨에 코끝이 시리며 상쾌함까지 느껴졌다. 지난 1월 7일 지인을 만나러 오전 열 시쯤 공주 공산성 근처에 도착했다. 공주를 잘 알지 못 하던 차에 나는 지인과 함께 시간을 내어 한두 곳을 가 보기로 했다.


먼저 제비꼬리를 닮아 이름 붙여진 연미산에 갔다. 등산하는 한두 사람만 보일 뿐 주변은 조용했다. 연미산은 매 해 가을에 미술품을 전시하는 자연미술공원이다. 제목과 작가노트를 읽으며 천천히 계단을 오르니 작품들이 보였다. 각 작품은 고유한 자기 색깔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무와 하늘과 능선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었다. 작품들은 비와 바람과 햇살과 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투명한 파란 하늘에 퍼지는 맑은 햇살을 쬐며 생명들은 있는 그대로 바래 가고 있었다. 그 시간의 흔적은 낡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산 중턱에 이르자 멀리 금강이 보였다. 그런데 그 물줄기가 어딘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금강보가 설치되면서 강기슭과 곡선으로 이어지는 모래톱이 사라졌다. 강물은 흐르나 예전 풍경을 이루었던 갈대와 물새들은 볼 수 없었다. 노을과 땅거미도 그리 눈부시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나 예술과 자본의 대비되는 두 상황에 씁쓸함과 어떤 허전함이 밀려왔다.    

 
연미산에 한 시간쯤 머문 후 황새바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료에 따르면 “황새바위 천주교도 순교지는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세기 100여 년 동안(1797~1879)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공개 처형된 사형터이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했던 조선조 시대에 충청도의 감영이 있던 공주로 압송된 천주교 신도 수백 명이(기록된 이름 248명) 순교를 당한 곳이다. 죄인들의 공개 처형지였던 이곳 황새바위는 황새도 서식했던 곳이기에 황새바위라고도 하고, 이곳에 있던 바위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인 황새 모양으로 생겼고, 목에 큰 칼을 쓴 죄인들이 이 언덕 바위 앞으로 끌려 나와 죽어 갔으므로 황새바위라고도 한다.” 


황새바위를 지나 양쪽에 서 있는 나무들을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묵직한 질문 하나가 다가왔다. ‘간절함이란 무엇인가?’, ‘목숨을 걸 만큼 이들이 갈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순교자들의 이름과 생몰연대가 새겨진 비석을 보니 처연한 감정이 일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17세기 일본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를 그린 소설로, 고통의 순간에 신은 왜 침묵하는가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포르투갈 신부의 배교하는 상황과 심리는 비단 종교에서만이 아닌 우리의 삶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의와 부정의, 올바름과 배신 등의 언어가 난무하는 지금의 시대에도 인권과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


12사도를 상징하는 돌기둥을 지나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작고 조용한 곳에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성모마리아의 얼굴에는 고통을 초월한 지극한 평화로움이 드리워져 있다. 그 아래에 황새바위 앞을 흐르는 제민천이 있다. 순교가 이루어졌던 당시 제민천에 핏물이 가득 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다시 떠오른 질문, ‘이들이 간절하게 바랐던 것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침묵》에서 찾은 두 가지 답은 이렇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사람들이 인간의 따듯한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인간으로 취급해 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존중받는 것, 그리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 신분차별을 받던 극빈자였던 약자들에게 존엄과 사랑은 목숨과도 바꿀 만큼 간절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두 슬픔이 떠올랐다.


생명은 존귀해서 그만큼 아픈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가 치유해야 할 윤리적 책임이다. 그리고 대전 산내 골령골도 우리가 보듬어야 할 곳이다. 최근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이곳이 또다시 훼손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곳은 땅값이나 개인 소유 등의 문제에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국가와 우리 지역이 함께 보존해야 할 장소이다. 무고하게 죽어간 생명에 대한 해원이자 우리의 현대사를 기록할 역사적 요청이기 때문이다. 


겨울답게 추웠던 날 공주의 연미산과 황새바위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전시실에 갇히지 않고 자연과 소멸해 가는 미술품과 인간답게 살고자 목숨을 다했던 사람들은 서로 닮아 있다. 팽목항과 골령골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 본다. 어쩌면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다(《침묵》). 대전에서 25년 넘게 살면서 깊이 만나본 흔적들이 있었나 생각해 본다. 이제, 행동이 사랑이다. 

                                           

                                                

 


 글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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