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1호] 꿀벌의 노래, Bee-park

“친구를 만난다는 것과 스케줄러는 아무 상관 없는 시절이 있었다. 그냥 학교에 가면 됐다. 아침부터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 녀석,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는 녀석, 아침 댓바람부터 이어폰으로 분위기를 잡고 있는 녀석과 야한 잡지를 뺑 둘러싼 녀석들까지. 그냥 녀석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굳이 약속을 따로 잡을 필요도 없고, 내 친구의 친구도 어차피 다 내 친구이던 시절. 무슨 이야기든 어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었다. 내 세계가 곧 너의 세계이던 시절.” 김동률의 동행, 음악을 읽다 - 청춘 중(글: 강세형 작가)

많은 사람이 그런 시절을 겪는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빠져나간 세계 밖에서 청소년이었던 이들이 청년이 된다. 대학에 들어간 청년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대학이라는 곳은 지나간 시절에 머무르기도, 다가올 사회에 완전히 스며들기도 어설픈 시기라는 걸 깨닫는다. 사회에 나가기 전 두려움이 앞서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한다. 꼭 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사회’라는 막연한 낱말이 주는 두려움은 꽤 크다. 눈앞에서 해치울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끝내다 보면, 숫자가 하나씩 남는다. 자격증 개수, 각종 영어 시험 점수와 같은 것들이다. 수가 주는 안도감을 누리다 문득, 누군가 만들어놓은 숫자에만 매달리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곳에는 한 번쯤 그런 고민을 한 청년이 모였다.

                    


                       

                           
벌들의 공원에서 노래가 시작되려고 한다

대전 유성구 어은동, 공유공간 벌집(이하 벌집)을 중심으로 청년이 모였다. 대전광역시가 추진한 2015년 공유네트워크 공모사업에 지원을 받은 청년들, 벌집에서 활동하던 청년들이 유성구 어은동 일대에 공간을 기획했다. 지금을 사는 청년이 필요한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먹고 자는 것과 보고 듣는 것을 먼저 준비하기 시작했다.


“벌집에서 문화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까 정작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일에 관해서 생각을 덜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문화는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잖아요. 이곳에 모인 청년들의 진짜 삶에 필요한 건 무엇일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게 뭘지 생각했어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먹고 자는 것이더라고요.”


벌집을 운영하는 이태호 씨의 이야기다. 함께 사는 집, 함께 먹는 식당, 함께 보는 책방, 함께 듣는 공연장 등이 벌집을 중심으로 한 어은동 곳곳에 자리한다. 모두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다. 
“충남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궁동과 카이스트 주변은 빈 공간도 없고 청년이 뭔가 하기에는 임대료가 비싸요. 지금 벌집이 있는 어은동 주변은 예전처럼 상권이 활성화되지는 않은 상태예요. 이곳에 청년들이 ‘마을’을 이루면, 사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돈이 조금 덜 들겠다고 생각했어요. 협업할 모델을 어떻게 만들지 참여한 청년들이 많이 고민했죠.”


사회적자본지원센터(이하 사자센터) 사업지원팀 천영환 팀장의 이야기다. 공유네트워크 공모사업에 지원받은 청년을 중심으로 벌집에 오가는 이들이 어은동 곳곳에 그림을 그렸다. 꿀벌들의 공원, Bee-Park라고 이름 붙였다. 잠은 셰어하우스에서 자고 밥은 공유주방에서 먹는다. 공유서가에서 책을 사거나 볼 수 있고, 문화공간에서는 맥주 한 잔과 함께 다양한 문화를 즐기거나 펼칠 수 있다. 꼭 셰어하우스에서 생활하는 청년이 아니라도 공유주방이나 서가, 문화공간에는 누구나 오갈 수 있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구체화하면 공간끼리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발행한다거나 함께 하는 프로젝트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다. 청년의 실험을 관대하게 여기는 곳, 충남대학교와 카이스트 사이 어은동 일대에 펼칠 Bee-Park의 밑그림이다. 

                     

            

가사는 자꾸 틀리고, 박자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잘 모르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 사업 시작했을 때 뭔가 빨리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저희는 공유 주방 사업을 진행하는데 먼저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사업 시작하면서 공간부터 덜컥 계약했어요. 2층이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가스나 수도 같은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당연히 있겠거니 생각하고 확인하지 않았던 거죠.”


공유주방 팀 김동준 씨 이야기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요리해야 하는데 수도와 가스가 없으니 난감한 노릇이었다. 설치하는 데만 천만 원 가까이 든다는 말에 계약을 포기했고, 계약금 몇백만 원을 날렸다. 세상이 무섭다는 걸 그때 알았다. 별다른 준비 없이 부딪힌 세상에 큰 값을 치렀다.
“처음 시작했던 친구들끼리 공간 마련할 자본금을 모았어요. 먼저 가족을 설득했어요. 한 번 재미로 하는 게 아니라면 가족부터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구성원 모두가 가족에게 프레젠테이션하고, 투자받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 번 계약금 날리고 나니까 낙담한 친구 몇이 빠지고 조금 시들시들해지다가 다시 팀원을 모았어요. 한 번 돈을 날리고 나니까 정신이 바짝 들더라고요. 공간 임대하는 데 부족한 돈은 어른들 찾아다니면서 설명하고, 투자받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수도랑 가스 다 달린, 예전에 식당했던 곳으로 공간도 구했고 9월 초까지 공사할 계획이에요.”


공유주방 팀이 공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설득’이었다. 가족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공유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했다. 무조건 함께 쓰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누고, 나눔으로 불필요한 자본이 쓰이거나 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 공간이나 눈에 보이는 물건만 나누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진 재능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눌 수 있다.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고, 함께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거나 나누어주는 게 공유였다. 

               
“교양 과목 수업에서 공유라는 개념을 배웠어요. 그때 그 개념이 좋아서 공유에 관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다 취업이나 정해진 길 말고, 기회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에게도 기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공간이면 힘이 더 커진다고 생각했고요. 공유주방이라는 게 그걸 다 접목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년들이 선뜻 창업하기가 어렵잖아요. 음식이 맛있는지, 팔릴지에 관해서 실험할 장소도 없고요. 우리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그런 점을 충족시켜주고, 공간을 운영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고요.”

               
그림을 그려두긴 했지만, 방법을 잘 몰라서 많이 헤맸다. 돈도 날리고, 함께 하던 친구들이 그만두고, 그러다 동준 씨가 벌집에서 Bee-Park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Bee-Park에서 함께 한다면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도전하고 공부했던 선배들에게 묻고, 도움을 받으면서 다시 도전했다. 모자란 자본금은 지인에게 소개받은 사람들을 만나 투자를 권유했다. 지금도 동준 씨가 이곳저곳에 다니며 투자자를 찾는다. 많은 순간 거절당했고, 그럴 때마다 그냥 너털웃음을 지었다. ‘맨날 까였’고, ‘까일 때’마다 왜 그랬을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알아야 하는데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학생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돈인데 어느 순간 휙 사라졌으니까요. 지금은 Bee-Park에서 함께 하는 형들에게 조언을 많이 얻어요. 되도록 많이 묻고, 공부하면서 하려고 해요. 지금 투자받은 금액만도 엄청나요. 열심히 해서 빨리 갚아야죠. 사실 두렵기도 해요. 만들어진 실체는 아직 뚜렷하게 없는데 바쁘기만 하니까요. 아직은 구체화하는 과정이에요.” 

                      

                        

 그래도 연습을 계속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청년들은 조금씩 알아가고 성장했다. 계약을 한다든가 물건을 살 때 사기라고 할 수는 없는데 사기당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진짜 돈이 없으니 몸으로 부딪혀 공간을 만들기도 하고, 공간을 구성하면서 알아야 할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인테리어부터 공간 구성까지 직접 하려다 보니까 배워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요. 비슷한 공간 찾아다니면서 구상하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면서 배우려고 해요. 처음 공유 관련해서 문화공간 제안받았을 때 많이 고민했어요. 반지하멜로디를 이끌면서 많이 지친 시기였거든요. 한 번 더 도전하는 마음이었어요. 별이 지기 전에 엄청 타오르잖아요.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는 심정도 있었어요.”


반지하멜로디는 청년이 만든 인디레이블이다. 유성구 궁동의 사무실은 그대로 두고, 어은동에 있는 공연장에서 그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많은 문화 활동을 펼치려고 한다. 예술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뭐든 구현할 수 있는 공간, 반지하멜로디에서 하고 싶었던 것을 가감 없이 펼칠 공간을 기획한다. 그동안 섣불리 공간을 얻지 못했던 건 비용도 기회도 마땅치 않았던 것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Bee-Park가 반지하멜로디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다. 상상한 걸 실현할 때 드는 만만치 않은 비용 때문에 청년들은 하고 싶은 걸 주저하거나 포기하곤 한다. 


“타지에서 대전으로 온 저 같은 경우는 대학에 다니는 순간부터 부모님께 월 몇백씩 계속 빚을 지고 있는 거예요. 요즘 대학이 졸업 이후를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가치보다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부분 등록금부터 월세, 생활비까지 매달 100만 원 이상 돈이 드는데, 부모가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계속 돈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계속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게 맞는 걸까. 그런 고민을 계속했고, 어떻게든 자립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달에는 생활비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요. 근데 그게 한계가 있었어요. 월세 내면 아르바이트비는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때 셰어하우스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이게 완벽한 대안은 아니지만 자립하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어요. 지금은 생소하지만, 셰어하우스 같은 주거 형태가 대학 근처에서만이라도 보편화한다면,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셰어하우스 기획에 참여하는 최내윤 씨의 이야기다. 혼자 해결하기에 벅찼던 고민은 함께하면서 용기를 얻는다. 셰어하우스는 함께 어울려 살면서 일인 가구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실험이다. 함께 밥 먹고, 혼자 살며 느꼈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공통 관심사를 나누고 관계 맺는다. 

               

                 

그 노래를 듣고 싶다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펼칠 공간으로 청년들은 Bee-Park 입주를 선택했다. 이야기하면서도 아직 시작하는 단계인 데다 아무것도 된 게 없다는 걱정을 가장 많이 쏟아냈다. 그럼에도 이들을 바라본다. 모든 게 서툰 이들은 조금씩 마음과 생각을 끼워 맞추고 있다. 끼워 맞춘 건 그것만으로 머무는 게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도시와 그곳의 생리를 이해하면서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마을을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이유다.


“20~30년 후에는 우리가 만든 세상이잖아요. 그 사회는 우리 목소리가 조금 더 반영되는 사회였으면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Bee-Park가 그런 목소리를 만드는 작업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뿌리는 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례를 만드는 거예요. 그 사례가 만들어지면 관심을 가질 테고, 그럼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행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겨요. 청년고리나 벌집이 청년을 이어주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뭔가도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Bee-Park가 어쩌면 그런 실험을 하는 장이 될 거예요.”


Bee-Park 셰어하우스 입주자인 권성대 씨의 이야기다. 친구도 사귀지 않고 매일 혼자 밥 먹는 것, 혼자 살면서 외로운 것,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공부만 하는 것, 매일 부모에게 손 벌리다 보니 부모의 뜻대로만 살아야 하는 것 등 청년들은 이곳에서 스스로 인식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청년들에게는 이 일 또한 숫자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나중을 위한 숫자, 나중을 위한 이야기, 나중에 곱씹을 추억 같은 것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열심히 움직이고는 있지만, 결국 생각한 대로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험은 실험으로만 끝나고, 모두 실패해서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들이 들려줄 노래가 궁금하다. 이제 막 고등학교 교실에서 벗어나 교실 안 친구를 떠나보낸 사람들, 사회에서 맞이한 ‘동료’에게 막 손을 내민 사람들, 그들의 노래가 엇박자에 형편없을지라도 그 노래는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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