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7호] 며느리가 변했다

                 
                          
며느리가 변했다

애마부인 오늘은 람보르기니를 초대했어. 람보르기니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보자. 미혼의 여자 나이 서른 중반은 어떤 거야?

람보르기니 나는 20대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 삶이 안정적이진 않지만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것 같아.

애마부인 난 그게 20대 때가 강했는데. 그 뒤로 계속 더 불안해지고 있어.

며느리 자신에 대한 확신이 줄어드는 거야?

애마부인 그런 것 같아. 마지막 20대를 보내는 며느리는 어때?

며느리 나는 항상 중간적인 입장이었던 것 같아. 빠른 생일이라 친구들은 나보다 한 살이 더 많으니까 나이에 대해 큰 느낌은 없었던 것 같아.

고래사냥 나도 나이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는 건 없는 것 같아. 애마부인 나도 그런 거 없었거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니까 나이 생각나더라.

람보르기니 나는 술을 잘 못 마시겠을 때 나이 들었단 걸 느껴.

고래사냥 아, 난 그런 건 있어. 나도 나이 들면서 람보르기니 처럼 마음은 점점 평온해지는 것 같다.

며느리 나도 옛날에 비해서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

람보르기니 나는 왜 나이가 들어도 평온해지지 않을까.

며느리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현실적인 많은 요소를 따지게 되니까 불안한 게 아닐까?

람보르기니 책임질 게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며느리 나는 지금 안정적인 상태이기보다는 뭔가 도전해야 하는 시기인데 이 생활에 안정을 느끼면서 편안해지는 것 같아.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 처음에 일 시작할 때만 해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불안감이 생겼던 것 같아. 투지 같은 거. 근데 그런 게 점점 없어져서 안정적인 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람보르기니 긴장감을 포기하니까 편안해진 게 아닐까?

며느리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고래사냥 내가 평온해졌다는 말은, 그런 면은 아니고 평정심을 말한 거야.

애마부인 대단하네. 축하해, 고래사냥아.

며느리 비꼬는 거야?

애마부인 난 그것도 고민이야. 뭔 말만 하면 비꼬는 거 같다고 해서. 람보르기니는 결혼 안 하냐는 말 안 들어?

람보르기니 우리 집은 그런 얘기를 잘 안 해. 내가 듣는 척도 안 하니까. 나는 결혼 안 하고 그런 것에 대해 불안하지는 않아. 왜냐면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돼. 결혼을 위해 누군가 만나서 같이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애마부인 없어도 상관없다? 그런데 외롭잖아.

람보르기니 외롭지는 않은 거 같아. 근데 혼자 있어도 외롭고 결혼을 해도 외롭고 친구 만나도 외롭고,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 아니야?

애마부인 백 살까지 산다고 하면 어때?

고래사냥 나는 아주 좋아. 애마부인 넌 3만 번이라도 살아 보고 싶은 아이니까. 근데 지금, 마지막 3만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거지, 하하.

며느리 나는 늙어서 오래 사는 건 싫어. 젊어서 오래 사는 건 좋은데 늙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그러면서 오래 살긴 싫어.

람보르기니 늙으면 뭘 못한다 하는 건 젊음의 기준에서 정해 놓은 거 아냐? 나는 그냥 백 살까지 산다면 괜찮을 거 같은데 죽기 전날까지 일을 해야 살 수 있을 거란 게 끔찍해. 이 국가가 백 살의 나를 책임져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

애마부인 난 빨리 죽고 싶었는데, 요즘은 오래 살고 싶어. 내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람보르기니 백 살 살면 한 세기를 산 건데 엄청 대단한 거 아냐? 백 살이 됐을 때 90년 전의 일을 얘기할 수 있잖아.

고래사냥 기억 안 날 것 같은데. 기록이 없으면 하나도 기억 못 할 것 같아.

며느리 서른 넘어서 마음 편안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람보르기니 마음이 편하진 않아. 근데 생각의 힘이 생겼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어. 뭐가 편안해지고 싶다는 거지?

며느리 나에 대한 확신?

람보르기니 나에 대한 고집?

며느리 애마부인은 나에 대한 확신이 있어?

애마부인 그게 있으면 우울하겠냐?

며느리 나는 애마부인을 보면 오래 살기가 싫어. 오래 살아도 그렇게 우울하고 힘들면.

고래사냥 난 인생이 원래 괴롭다고 생각해.

애마부인 그럼 뭐하러 3만 번을 살고 싶어 해?

고래사냥 내가 무로 된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래. 나는 옛날에 죽는 게 싫어서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있었던 적이 있어. 죽었을 때 느낌을 알고 싶어서. 너무 무서웠어.

애마부인 내가 항상 우울한 건 아니야. 어떨 때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행복해. 그 대가일 수도 있고.

며느리 람보르기니는 마흔 됐을 때 뭐 하고 싶다는 생각 있어? 그거 생각하면 어때?

람보르기니 우리 엄마가 식당 운영하고 밥을 지어주는 사람이잖아. 내가 대학생 때 힘든 시기 보낸 이후 몇 년 만에 엄마를 보게 됐는데,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있었어. 엄마는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식당에서 밥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나 봐. 앞으로 엄마는 누군가에게 밥을 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대. 엄마의 꿈 같은 거지. 엄마가 했던 수많은 말이 하나도 기억 안 남는데 그 말은 각인이 됐어. 나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나눠 주는 걸 좋아하니까, 남에게 밥을 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애마부인 너네가 보기엔 내 나이가 많아 보이냐?

고래사냥 많이 이뤘다는 생각은 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잖아.

애마부인 사회에서 말하는 평균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거잖아?

고래사냥 그렇지. 그런 점에서 부러운 건 있어.

며느리 난 애마부인한테 부러운 거 하나도 없어. 아니, 똑똑한 건 부럽다. 그거 말고는 진짜 없어.

애마부인 근데 왜 내 옆에 붙어 있냐?

며느리 똑똑해서 붙어 있는다니까. 근데 항상 우울하잖아.

애마부인 내가 그러냐? 람보르기니, 나 원래 우울하냐?

람보르기니 아니야. 애마부인은 원래 우울한 사람은 아니야.

며느리 나는 어때?

람보르기니 옛날에는 너만의 매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무뎌진 느낌이야. 고래사냥은 어때?

애마부인 저 년은 살이 쪘어. 고래사냥은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거 같아. 진짜 평정심을 찾은 거 같아. 자기 통제와 절제도 하는 것 같고. 며느리도 그런 거 같은데 그걸 섭섭해 하는 건 며느리와 고래사냥의 시작점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야. 나는 내가 우울하거나 짜증 날 때가 길든다는 느낌을 받을 때거든? 나도 지금 맘만 먹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렇게 살기가 싫은 거지. 며느리랑 고래사냥은 옛날에 비해 너무 변했어. 며느리가 토마토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문장이 깔끔하거나 완벽하지 않았거든, 근데 그것이 주는 매력이 있었어. 그게 지금은 사라져 버렸고. 고래사냥도 예전에 비해 깊은 고민을 안 해. 지금 이 둘은 블로그 기자단 수준의 고민을 하고 있어. 사람도 그래, 사람도. 성의 없어. 나이를 처먹어서 그런 건지. 아까 봤던 옛날 사진 봐봐. 며느리 얼굴 사악하잖아. 지금 얼굴은 바뀌었어. 단순히 살이 빠져서 그런 게 아니야. 누가 그렇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살라고 그랬어? 너네는 범용적으로 가는 거야.

며느리 다 애마부인 때문이지.

람보르기니 근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애마부인 원래 토마톡은 산으로 가는 거야.

고래사냥 우리 세 번밖에 안 했는데?

애마부인 그 정도면 많이 한 거야. 이 세상은 논란이 필요한 시대야. 생각해 봐라. 국정교과서 난리 치더니 잠잠해지고. 그래서 만드는 거야 안 만드는 거야, 그냥 이렇게 가잖아. 한일협상 관련해서도 난리 치더니 또 이렇게 가잖아. 거대담론은 이럴 수밖에 없어. 설악산 케이블카? 그냥 가잖아. 나는 거대담론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소소한 담론들을 흔들고 싶었던 거야. 작은 흔들거림, 일상적이지 않은 변칙과 변화, 혁신 같은 게 토마토 안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으면 좋겠어. 그게 안 되니까, 짜증 나. 점점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 사무실을 장악해 가고 있어. 나도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너희가 생각한 게 맞는 걸 수도 있고. 범용적인 삶. 그 날 그들은 토마톡 두 시간 만에 사직서를 내고 토마토를 떠났다. 이데에 놓고 간 고래사냥의 컴퓨터에는 그 두 시간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을 써도 재밌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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