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7호] 보르헤스의 말, 보르헤스라는 사람_칼럼 김운하

“나는 잠에서 깰 때 안 좋은 기분으로 깨어나요. 
나 자신이라는 것에 깜짝 놀라면서 말이에요. 
이러저러 해서 1899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고 
제네바에서 살았던 어떤 사람이라는 것에 놀라면서 말이에요.”
 《보르헤스의 말》, 마음산책, 60쪽.​
     
                

                                 

                 

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 우리에겐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제목의 경이로운 단편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 그러나 그의 작품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여간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경쟁의식도 느끼곤 했던 제임스 조이스가 《피네건의 경야》에서 보여 주었듯 언어를 가지고 우주적으로 유희하는 길을 갔다면, 보르헤스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이상학적 관념들을 독특한 환상 소설의 형식 속에 녹여 내어 유희를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현기증과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길을 택했다. 즉 보르헤스를 알기 위해선 제임스 조이스를 읽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꽤 많은 배경지식이나 지적인 훈련을 요구한다. 게다가 설명을 배제하는 그의 함축적이고 간결한 문체는 작품의 독해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많은 독자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의 작품들 전체가 모두 고난이도의 까다로움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의 문체에 조금만 익숙해진다면, 몇몇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은 특별한 사전 배경지식 없이도 그 아름다움과 경이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음사판으로 나온 그의 전집 가운데 제2권 《픽션들》이나 제3권 《알렙》은 난해하지만, 제1권인 《불한당들의 세계사》라든가 제5권 《셰익스피어의 기억》 같은 작품집은 제법 편안하게 읽을 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그가 친구 작가 비오이 카사레스와 공동집필한 아주 재미있는 추리소설집인 《이시도르파르디의 여섯가지 사건》 같은 책은 일반 추리소설을 읽듯이 마냥 즐겁게 독서할 수 있는 책이면서도 보르헤스가 어떤 작가인지를 아는 데 조금 도움이 되기도 한다.

                      
보르헤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탓에, 나는 보르헤스와 관련되어 나온 한국어판 책은 어떤 책이든 다 사서 읽고 있는데, 그가 쓴 책들과 해설서, 전기들을 포함하면 대략 20여 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보르헤스와 친해질 수 있는 책 몇 권을 소개한 적도 있는데, 그가 쓴 에세이인 《만리장성과 책들》이나 《칠일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와 같은 책들이 그것이다. 그의 전기로는 《보르헤스 문학전기》 라는 책도 읽을 만하다. 

                  
반갑게도, 오랜만에 마음산책에서 보르헤스의 목소리가 담긴 책인 《보르헤스의 말》이란 책이 나왔다. 이 책은 보르헤스의 인터뷰와 강연들을 묶은 책이다. 1899년생인 보르헤스, 그가 70대 중반인 1975년부터 1980년경까지, 그러니까 1986년에 세상을 떠날 그가 죽음을 10여 년 앞둔 시점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생애 최후의 순간에 나누었던 대화나 강연들 속에 나오는 생생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이 책에서 마련된 셈이다. 

                    
보르헤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혹은 개인으로 나고 죽는 이 인간의 삶이란 것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죽음이나 자살에 관해서는? 그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나 사상가들은? 그는 어떤 식으로 작품의 영감을 얻고, 어떤 방법으로 작품을 구축해 나갈까? 등등 작가로서 그에게 궁금한 것뿐 아니라, 한 인간 실존으로서 자기자신에 관해서나 자신의 삶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접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나는 그가 철학적으로 흄, 버클리, 쇼펜하우어 같은 관념주의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에 대한 그의 애정의 깊이를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오늘 한 명의 철학자를 고른다면 나는 쇼펜하우어를 고를 것이다. 우주의 수수께끼가 말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 말은 쇼펜하우어의 글 속에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거라면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단 하나의 사상만 가지고 있다고 글로 썼어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그것이지요. 그의 사상을 설명하는 지름길은 그가 쓴 매우 즐거운, 그 두 권짜리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지요. 그게 지름길이라고, 그가 말했답니다. 나는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몰라요. 내가 늘 말하는 것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예요. 물론 나는 이 말을 명확하게 해야 해요. 이 말 자체는 거의 의미가 없는 말이니까요. 쇼펜하우어가 말한 WILL(의지)는 베르그송의 ELAN VITAL(생의 약동), 버나드 쇼의 ‘생명력’ 과 같은 것이에요. 거의 같은 의미죠. 그리고 Vorstellung(표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Maya(환영)의 사상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고 현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죠. 쇼펜하우어는 내가 평생 읽어 온 작가랍니다. 그는 매력적인 작가예요. 보통 철학자들은 매력적인 작가로 생각되지 않죠. 하지만 칸트와 헤겔 이전에는 철학자들이 글을 꽤 잘 썼어요. 그런데 그 이후 철학자들이 자신들만의 이상한 용어로 나아가 버렸죠. 과거에 플라톤은 훌륭한 작가였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훌륭한 작가였고, 데카르트도 그랬어요. 물론 로크, 흄, 버클리 역시 훌륭한 작가였죠. 쇼펜하우어도 그렇고요. 그러나 오늘날의 철학자들은 일종의 낯선 전문용어와 연계되어 버린 것 같아요. (칸트와 헤겔이 정말 글을 못 썼다는데는 나도 백퍼센트 동의!)”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종교색을 제거한 불교철학에 불과하다고 믿는 편이지만(실제로 그는 불교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보르헤스의 이런 ‘말’ 들은 그의 형이상학적 문학세계를 깊이 이해하는데 필요한 발언들이다. 그는 물론 불교, 쇼펜하우어 철학 뿐 아니라, 유대 카발라주의나 온갖 신비주의 철학에 정통했고, 그러한 ‘관념’들을 환상소설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며 형이상학적 유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여러 장에 걸쳐, 그의 시작품들을 직접 소개하고 그 배경이나 주제들을 설명하는 대목들, 그리고 평생 자신을 괴롭혔지만 동시에 자기 문학의 토대를 이루는 주요 키워드들인 미로, 거울, 악몽, 실명, 시간 문제 등 지극히 사적인 경험과 작품 간의 연관성들도 친절하고 소박한 말로 독자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특히 시간 문제는 보르헤스의 존재의 수수께끼 가운데 가장 깊은 관심을 가졌던 주제이고, 에세이나 소설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 수수께끼를 해명하기 위해 도전하곤 했는데, 이 책에서 그가 왜 그토록 시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는지, 어릴 적 경험부터 시작해서 잘 얘기해 주고 있는 대목이 나로선 새롭고 흥미로웠다. 

                    
“때때로 나는 맑은 정신으로 누워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곤 한답니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생각하지요…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고 ‘본질적인 ‘수수께끼’인 것 같아요. 시간이 무엇인지 안다면 - 물론 결코 알 수 없겠지만 - 그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예요.”
아마도, 내가 보르헤스에게 깊이 경도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나 역시 오랫동안 바로 그 수수께끼, 즉 “시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숙고해 왔고, 그러던 가운데 보르헤스를 만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나도 답을 찾지 못했지만 보르헤스가 그려보인 시간에 관한 여러가지 성찰은 정말로 흥미로웠고, 그래서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 내가 여러분과 함께 여기 있다는 사실, 열흘 쯤 뒤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을 거라는 사실, 그리고 어렸을 때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서 지낸 시절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이 내가 표현할 수 없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에게 속해 있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그렇다. 그의 말대로, 문학이든 철학이든, 심지어 과학조차도, 우리 인간이 느끼는 존재의 수수께끼에 대한 당혹함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며, 그것들에 대한 숙고와 탐구이며, 질문들인 것이다. 그러한 당혹감에 대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탐구가 바로 보르헤스의 문학세계이며, 우리는 그의 언어로 구축된 환상적인 세계와 만남으로써 각자가 가진 당혹감과 복잡한 질문들에 대한 가능한 하나의 아름다운 대답을, 하나의 경이로운 가설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글  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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