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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5호] 대흥동살이 5개월 몽골작가 흑질
언뜻 보면 그림 같기도 하다. 단번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듯한, 선이 굵은 붓글씨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움을 지녔다. 지난 2월 3일부터 13일간 중구문화원 전시실에는 몽골 작가 흑질의 캘리그래피 작품 40여 점이 걸렸다. 흑질 작가가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로 그린 몽골어 캘리그래피에는 각각 인생의 지혜를 일깨우는 말을 담았다. 작품 밑에는 그 뜻을 한국어로 번역한 글을 붙여 놓았다.
‘어떤 사람이든 무시하지 마라. 체스에서 폰이 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남에게 제일 좋은 말을 하는 입술이 매력적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람을 만들어보라고 하신다면 모든 사람을 제 어머님처럼 만들거야. 넘어지기 전에 한마디 하라고 하신다면 무엇보다도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할거야.’ 등 조금 어색하지만 그 뜻은 충분히 전해지는 말들을 자꾸만 곱씹어보게 된다.
“몽골과 한국의 설날은 같아요. 몽골에서는 새해에 나쁜 생각을 하거나 나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해요. 그래서 설날에 좋은 말을 많이 주고받죠. 한국에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 좋은 말들을 캘리그래피에 담았어요. 그리고 일부러 설 대목에 맞춰 전시를 기획했어요. 밑에 적힌 글은 제가 직접 쓰고 주변 한국어 강사님이나 친구들에게 조언을 얻어 한국어로 번역했어요.”
몽골에서 2014년 젊은작가상을 받기도 한 흑질 작가는 5개월 전 한국에 들어와 대흥동에서 자리를 잡고 작업을 하고 있다. 동시에 몽골 그림과 한국 그림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어, 한국 대학의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그는 한남대 한국어학당에서 1년 과정의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캘리그래피는 무엇보다 몽골 전통 글씨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전시 기간 내내 전시실을 지켰던 그는 이번 전시가 새로운 경험이 됐다고 한다. 한국어가 서툰 덕에 관람객이 작품에 대해 물을 때 설명해주는 것이 난처했지만 덕분에 한국어 단어를 많이 배웠다며 웃는다. 아직 한국에 관해 모르는 것이 많기에, 모든 게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그다. 이번 전시기간엔 40여 점의 작품 중 대부분을 판매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에 흑질 작가는 “한국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어요. 한국말을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이번에는 캘리그래피 전시를 했지만, 다음에는 제 본래 작업인 몽골 전통 그림으로 개인전을 열고 싶어요. 몽골 그림은 그림 하나를 그리는 데 한 달에서 몇 년까지도 걸릴 수 있어요. 이번 전시가 끝나면 바로 다음 전시를 준비하려고 해요. 그리고 이후 박사과정을 끝내면 배운 것을 바탕으로 몽골 전통 그림과 한국 그림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해서 그것으로 큰 전시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