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왜 그런지는 몰라요, 그냥 좋아요

석규 어린이

3월은 또 다른 의미로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이다. 겨울이라는 묵은 계절을 보내고 봄이라는 새로운 계절을 맞는 달, 동시에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는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새로운 학기를 맞는 달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3월은 더욱 특별하다. ‘학교’라는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디며, 3월을 시작으로 하는 1년의 셈법을 처음 터득하게 될 것이다.

석규 군은 올해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덟 살 꼬마다. 그러나 정작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더 많이 놀 수 있고, 더 많은 장난감을 살 수 있을 것”이기에 막연히 좋다. 자꾸만 ‘왜 좋은가’를 물어보는 어른의 물음이 이상할 뿐이다.

되고 싶은 게 열 개는 될 걸요?

이마 선을 따라 동그랗게 자른 바가지 머리, 통통하고 바알간 볼, 입술 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토끼같은 이,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따분해 집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모습. 해가 바뀐다고 해서 무엇이 갑자기 달라지는 게 아니듯, 초등학생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의젓해질 리도 의젓해져야 하는 법도 없다. 아직은 ‘초등학생’보다는 유치원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귀여운 얼굴을 지닌 석규 군. 아이는 나름의 고단한 하루를 마친 뒤 느긋한 자유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무얼 했냐는 물음에 아이는 눈동자를 잠시 허공에 둔 채 골똘히 생각한다.

“음, 뭐라고 해야 되지? 여덟 시에 일어나요. 유치원에 갔다가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레고방에 가요. 레고한 지는 1년 됐어요. 레고가 제일 재밌어요. 제일 많이 만드는 건 닌자고예요. 왜 좋냐고요? 멋있어서 좋아요. 왜 그런지는 몰라요. 음, 학습지 공부도 하고 있어요. 국어, 수학 중에서 국어가 재밌어요. 쉬우니까요.”

취학 전인 아이에게는 어쩌면 버거울 지도 모르는 하루 일상이지만, 석규 군은 재미있는 거라면 뭐든 좋다. 좋으니까 좋고, 재미있으니까 좋을 뿐 그 이상의 이유는 없다. 그런 석규 군을 보며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붙이는 건 어쩌면 어른들이 저도 모르게 만들어 낸 습관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석규군은 올해 3월 세종시에 있는 연양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다소 먼 곳으로 가게 된 건 석규 군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마련하고자 고민한 부모님의 결정이다. 곧 있으면 대전 중구 오류동을 떠나 세종시로 이사를 간다. 그런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먼 곳으로 떠나는 일,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일이 별로 두렵지 않아 보인다.

학교 가니까 좋아요. 학교 가면 위저드 사고 싶어요. 유치원보다 학교가 더 좋을 것 같아요. 빨리 끝나니까요. 놀고 싶어요.”

한 살씩 나이 들수록 할 수 있는 게 적어진다고 느끼는 어른들과 달리,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어서 어서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하는 게 아이들의 마음 아니겠는가.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막연히 지금 못하는 걸 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고 석규군은 생각하는 듯했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요. 노래를 잘 하니까 가수가 하고 싶어요. 되고 싶은 거는 한 열 개는 될 걸요? (손가락을 하나씩 헤아리며) 과학자, 비행조종사, 권투하는 사람, 소방관, 의사, 피아노 작곡가…. 산타도 되고 싶어요. 하늘을 나는 썰매를 탈 수 있잖아요.”

어떤 것도 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지레 겁먹는 어른의 마음은 그 무엇도 될 수 있다고 믿는 아이의 당연한 마음이 못내 부럽다. 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드는 어른이 되더라도, 지금처럼 주저없이 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 여덟 살 예비 초등학생 석규 군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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