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5호] 산에서 삶을 배웠다

까무잡잡한 피부, 짧은 머리와 작지만 강단 있는 체구, 환한 미소로 시원스레 악수를 청하는 그녀.
산을 사랑하고 사진을 사랑하는 이상은 산악사진가를 만났다.

이상은 산악사진가

히말라야 니레카봉(6,159m)을 세계 최초로 오른 산악인, 두 권의 책을 펴낸 작가, 등산복 매장을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하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지만 그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또 그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은 바로 산악사진가이지 싶다. 20대 중반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해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을 산과 함께 보냈다. 산에서 삶을 배웠다. 산은 그녀에게 친구이자 엄마이고 스승이며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국내 여러 산 중에서 덕유산을 가장 좋아해요. 케이블카에서 내려 향적봉에 올라 산을 내려 보면 한 겹 두 겹, 산이 그림처럼 겹겹이 그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져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막연해요. ‘저 산봉우리를 넘어가야 오늘 묵을 산장이 나오는데…’ 하고 생각하면 참 까마득해요. 갈 수 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요. 그러다가도 피식 웃음이 나와요. 저 봉우리를 넘어 산장에 도착해 챙겨온 삼겹살을 굽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있는 상상을 하면요. 결국, 나는 오늘 이 산봉우리를 넘어 여기선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 산장에 가 있을 거예요.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그리는 그림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요.”
인생도 그렇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까마득한 길 위에 서서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힘들지만 조금씩 걷다 보면 결국엔 목적지에 도달한 자신을 발견한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그린 삶을 살 수 있다.
“산을 오르면서 포기하지 않는 법, 세상과 타협하고 핑계 대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힘들지만 끝까지 목적지를 향해 산을 올라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와 같이 살면서 지키고 싶은 가치를 산을 오르며 생각해요. 힘들죠. 오랫동안 산을 올랐지만, 여전히 힘들어요.”
한없이 넓고 높은 산에 오르면 모든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진다. 드넓은 세상을 두 눈 가득 담고 있으면 눈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고 그녀가 말한다. 내가 직접 본 세상만큼 생각하는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그래서 그녀는 산에 오른다.
“나이가 먹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기본을 갖추고,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켰을 때야 비로소 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죠. 산도 그래요. 아무런 준비 없이, 기본도 지키지 않은 채 오르면 냉정하게 벌을 줘요. 아무리 산을 오래 탄 사람이라도 안일한 마음가짐으론 안돼요. 늘 준비하고 긴장하죠.”
산을 오르며 생각보다 더 큰 자신을 발견한다. 20kg 가방을 메고 20km를 걸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씻을 수도 없는 춥고 불편한 잠자리에서도 거뜬히 잠을 자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 인내할 줄 알고, 강인한 자신의 모습. 그녀는 또 다른 ‘나’를 산에서 만났다.
“따뜻한 물로 머리 감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세요? 고추장 푹- 찍어 먹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데요. 한 번씩 국외로 오랫동안 산행을 다녀오면 아주 작고 평범한 일상이 모두 행복한 일로 느껴져요. 점점 나이가 들지만, 몸속 세포들은 새로워지는 기분이에요.”
남미 대륙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다. 5년 동안 매년 빠지지 않고 남미 대륙을 찾았다. 작년에는 KBS 영상 앨범 촬영팀과 함께 남미 파타고니아에 다녀왔다. 그 이야기는 ‘세상의 끝, 남미 파타고니아’라는 책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도 역시 KBS 영상 앨범 촬영팀과 함께 남미 대륙을 찾는다. 쿠바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두 눈과 마음에 담아올 예정이다.
  
  
이상은 산악사진가가 운영하는 대전시 둔산 라푸마 매장 2층은 책과 커피, 강연과 공연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여행문화센터산책’이라 이름 붙인 곳은 산과 여행, 역사와 관련한 5천여 권에 달하는 책과 여러 나라의 이색적인 소품이 가득하다. 누구든 쉬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타, 사진 등 다양한 강연과 모임, 공연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글 사진 박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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