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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95호] 가만히 보면 보이는 삶의 조각을 엮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사진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떠오른 단상을 SNS에 올렸다. 그 글을 모두 모아보니 책 한 권 만드는 분량이 나왔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순간마다 마음을 담고 오래도록 바라보면 되는 일이었다. 박주열 작가가 그렇게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것은 2013년 『세상을 담다 사람을 닮다』와 2015년 『오래 보면 보이는 별들 오래 봐야 보이는 꽃들』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묶였다.
박주열 작가
네모 프레임 안에 담긴 사진을 가만히 보다 보면 순간적으로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 글로 옮겼다.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지만, 글로는 되도록 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는 사진 찍는 취미만 있었어요. 스마트폰이 생긴 후론 글 쓰는 것과 사진 찍는 걸 한 번에 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잖아요. 카카오스토리에 하나씩 제가 찍은 사진과 글을 올렸어요. 그게 모이다 보니까 아까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인들도 책으로 엮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더라고요.”
되도록 쉽고 간단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책을 보면서 사람들이 글 쓰고, 사진 찍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 하고 바랐다. 2013년 낸 『세상을 담다 사람을 담다』엔 직장에 다니며 찍은 사진과 그때 느꼈던 생각이 담겼다.
“한 직장에 20년 넘게 다녔어요. 원래 글 쓰는 취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1년에 100권 이상 읽기를 다짐하고, 이루기도 했죠. 워낙 좋아해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씻고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으려고 5시 30분에 일어나고, 잠자기 전에 1시나 2시 정도까지 읽었어요. 그때 아이들은 아빠도 자는 줄 몰랐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책을 읽었던 게 아무래도 글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2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인 카페 ‘라온제나’의 문을 열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일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길이었기에 결단했다. 카페 문을 연 해인 2013년, 그동안 모은 글과 사진으로 첫 번째 책을 펴냈다. 지나온 시간, 시간 속에서 보고 느낀 단상, 자연, 사람, 공간 등 그가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한 우리 삶의 조각을 엮은 책이었다.
첫 번째 책을 내고 이후 1년 동안 쓴 글은 두 번째 책인 『오래 보면 보이는 별들 오래 봐야 보이는 꽃들』에 담았다. 두 번째 책에는 2013년 그가 마련한 여덟 평 공간인 카페 ‘라온제나’의 이야기도 담겼다.
라온제나는 ‘즐거운 나’의 순우리말이다.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낀 생각, 하나씩 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붙인 손님들의 쪽지, 시간이 흐를 때마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변화, 계절마다 변화하는 창밖의 모습, 커피를 내리며 건네는 정성, 화분 등을 보며 생각이 흐를 때마다 떠오르는 단상을 하나씩 글로, 사진으로 담았다.
“카페가 작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답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겐 어느 곳보다도 큰 곳이에요. 생각을 무한정으로 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에게는 무심하게 스쳐 가는 시간도 자세히 보면 의미 있는 순간이 되거든요.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을 바라볼 수 있어요. 제겐 이 작은 카페 구석구석에 의미가 담겨 있어요.”
순간의 단상을 책으로 내면서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출판되는 순간 모든 글에 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그래도 책을 낸 후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람이 “책 정말 좋다.”라며 연락해 올 때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는 사진 에세이 말고 다른 형식을 고민하고 있다.
“경북 청송이 제 고향이에요. 나중에 나이가 더 들면, 고향에 내려가서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그 꿈에 다다르기 전에 걷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커피를 내릴 때마다 맛있어지라는 주문을 담고, 마시는 사람의 행복을 기원한다. 나가는 길에 그가 건넨 테이크아웃 잔 컵에는 ‘별, 꽃처럼 고운 날을…’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뚜껑 여섯 개에 각기 다른 메시지가 담겼다. 그중 선택한 글귀다. 글 쓰고, 사진 찍는 사장님에게 즐거운 커피를 선물 받았다. 라온제나에서 별, 꽃처럼 고운 날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