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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9호]
무덥고 입맛 없어지는 여름엔 유독
간절해지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소바도 그 중 하나다.
졸깃하게 잘 삶아 채반에
시원스레 담은 메밀면을
살얼음 낀 츠유에 찍어 ‘후루룩’ 들이키노라면
왠지 ‘아, 여름의 한 가운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음식이기 때문에
오히려 괜찮은 식당을 찾기가 힘든 게 소바이기도 하다.
대흥동 성모오거리에 자리한 ‘양지’는
그 평범함에 충실한, 보기 드문 식당이다.
양지(陽地)
‘양지 우동, 양지 소바, 양지 분식, 모리소바집….’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인 이곳은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우동·소바전문점 ‘양지(陽地)’다. 동료들로부터 대흥동에 괜찮은 소바집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다음 날, 다같이 ‘양지’를 찾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쉬이 눈에 띄지 않는 외관, 나무로 된 너덧 개의 작은 테이블과 한편의 주방으로 가득 차는 공간, 그리고 왠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기는 주인 부부의 모습까지…. 일본의 동네 작은 식당을 떠오르게 한다. 짧게 민 백발 머리의 주인아저씨와 작고 다부진 체격의 주인아주머니 부부가 30년 동안 잠시도 쉬지 않았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곳의 메뉴는 우동(각기우동, 오뎅우동, 유부우동), 초밥(유부초밥, 김초밥, 생선초밥, 모듬초밥), 모리소바로 크게 세 종류다. 지금 같은 여름철에 사람들은 대개 모리소바를 주문한다. 모리소바는 대나무 채반에 담아낸 면을 츠유에 찍어먹는 소바다. 일행은 각자 모리소바 하나씩과 요기를 할 요량으로 모듬초밥, 김초밥을 함께 시켰다. 이윽고 연두빛 채반에 담긴 잘 삶겨 윤기가 나는 면과 살얼음을 띄운 츠유가 테이블에 차려졌다. 파, 간 무, 김 등을 넣은 츠유에 면을 살짝 담갔다가 ‘후루룩’하고 먹는다. 시판하는 메밀 면을 사용해 평범한 맛이지만, 삶긴 정도가 적당해 졸깃한 맛이 좋다. 츠유는 보통의 것보다 조금 싱거운 듯한 느낌인데 나중에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처음에는 일본식으로 조금 짜게 만들었지만, 이후 손님들 입맛에 맞춘 것”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일본 음식 특유의 짠 맛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라면 이곳의 소바가 제격일 듯하다.
부부가 우동·소바전문점을 시작한 것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인트 장사를 하던 부부가 식당을 하게 된 건 주인아저씨의 아버지 덕분이었다. 면을 츠유에 찍어먹는 일본식 소바가 익숙지 않았을 때였다.
“서른 살에 시작했어요. 시아버지가 아는 일본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직접 대전에 오셔서 처음부터 다 가르쳐줬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몰라서 국물도 많이 버리고, 욕도 많이 먹었죠(웃음). 그러다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단골들이 생겼어요. 30년 전 시작할 때쯤에는 모리소바가 한국 사람들한테 익숙지 않아서, 사람들이 면이 담긴 채반에다 국물을 붓기도 했어요.”
1980년 처음 문을 연 곳은 중동 아카데미극장 옆이다. 이곳에서 5년 여를 운영하면서 제법 단골도 생겼지만, 당시 지하상가가 생기면서 위치상 장사를 하기 힘들게 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대림빌딩이 있는 자리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하던 때였다. 인근에 상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도 중동에서 단골로 드나들던 손님들이 고맙게도 이곳 대흥동까지 찾아왔다.
본래는 하루 종일 영업을 했지만, 7년 전부터는 건강상의 이유로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 점심때만 문을 열고 있다. 혼자 편히 식사를 하는 사람, 인근 직장인, 이곳과 함께 나이를 먹은 동네 주민 등으로 점심께 양지는 가득 찬다.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다 불쑥 들를 법한 적당한 위치도, 우동과 소바라는 음식에 충실한 소박한 가게 분위기도 퍽이나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본에 충실한 모리소바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곳이다.
메뉴 각기우동 4,500원 | 유부우동 5,000원 | 모듬초밥 8,500원 | 모리소바 6,000원 주소 대전 중구 대흥로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