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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9호] 2015 기획연재 - 기본소득
노동의 관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반을 정리해고, 비정규직, 청년실업을 동반한 ‘불안정노동사회’로의 전환을 가속시키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나 당면한 ‘일자리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정리해고 대상인 50대만이 아니라 청년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청년층 인구는 949만5천 명으로, 이중 니트족이 15.5%를 차지했다. 청년층 실업자(44만5천 명)와 비경제 활동인구(514만8천 명)를 합한 인원에서 학생(412만2천 명)을 뺀 숫자가 니트족으로 분류된다. 청년 100명 중 15명 정도가 ‘취업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셈이다. 니트족, 실업자, 학생 등을 제외한 청년 취업자는 390만2천 명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낙수효과’ 운운하며 ‘성장’을 통한 실업문제의 해결을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취업준비생과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고, 실력을 키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청년층 인구는 949만5천 명으로, 이중 니트족이 15.5%를 차지했다. 청년층 실업자(44만5천 명)와 비경제 활동인구(514만8천 명)를 합한 인원에서 학생(412만2천 명)을 뺀 숫자가 니트족으로 분류된다. 청년 100명 중 15명 정도가 ‘취업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셈이다. 니트족, 실업자, 학생 등을 제외한 청년 취업자는 390만2천 명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낙수효과’ 운운하며 ‘성장’을 통한 실업문제의 해결을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취업준비생과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고, 실력을 키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1950~1960년대 이후 한국은 전반적으로 교육수준이 낮았고 국가의 산업화 정책은 다양하게 분화된 노동시장을 형성하여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는 인구가 많았다. 그러나 산업과 도시가 발전하면서 대도시로의 집중현상이 심해지고 고학력 노동의 수요도 증가하였다. 이후 세계 어느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교육열로 한국은 현재 대학진학률 80%를 넘어서는 고학력시대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교육수준이 급속히 높아지는 상황에 반하여 기술발전은 신기술 도입과 시장 확대로 인한 일자리 창출로 가기보다 오히려 ‘일자리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과거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다. 신기술 발전은 고도의 숙련노동자를 요구하게 되고, 숙련노동자가 늘어날수록 다수의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신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 인간의 일자리를 없애버리기도 한다. 이미 수도권에는 ‘자동화 공장’이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경북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동화공장(smart factory)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공장을 중심으로 생산인력 감축이 증가하는 추세에서 실업문제의 합리적인 해결 방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재분배’가 떠오르고 있다. 기본소득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한 생계를 위하여 적은 수의 일자리, 더구나 고강도의 노동과 저임금을 두고 배타적으로 경쟁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또한 임금노동을 통한 수입은 기본소득 이외의 추가 소득으로 개인 삶의 질을 높이는 훌륭한 인센티브로 작용하므로 노동시장의 붕괴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자본에 대한 협상력을 갖고, 자본은 적절한 능력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노동시장의 수요 공급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직자들은 생계를 위하여 자신의 능력이나 개성, 전망을 무시한 강압적 직업 선택을 지양하고 자신의 삶에 적합한 형태의 일자리를 고민할 수 있게 되면서 배타적 경쟁이 낳은 절망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청소년의 문제를 논하는 데 대학생, 대학졸업자의 현실을 보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요즘 대학생들의 주변에는 온통 생존위협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고액등록금, 물가 인상에 따른 식비와 주거비 증가, 좀 더 값싼 고시원에 등을 붙이고, 식재료가 검증되지 않은 컵밥을 먹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동시에 여전히 ‘스펙’을 쌓기 위해 학원에 돈을 쏟아 붇는다.
90년 이후 물가상승률의 두 배를 넘는 대학 등록금 인상은 ‘등록금 천만 원시대’에 도달했고 ‘소 팔아 자식 가르치기’는 이미 불가능한 수준이며 대학 졸업자 다수가 ‘신용불량자’가 되어 미래 설계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배우게 된다. 청년들은 정책적 요구에 따라 저임금 서비스업의 주축으로 질 낮은 서비스업 현장에서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나마 운이 좋아 중산층 부모의 도움을 받는 학생들은 경제활동을 미루고 스펙을 쌓기 위해 어학공부와 자격증 시험 대비에 생계비의 대부분을 지출하고 있다.
한편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의 미취업 장기화를 ‘청년실업’의 문제로 국한할 수는 없다. 일부에서는 정년 연장으로 부모세대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자녀 세대의 취업을 가로막고 있다며 ‘정규직의 과보호를 제도적으로 완화하는 노력’을 주문하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청년실업’, ‘노인실업’을 구분해 말하는 것은 실업문제를 ‘세대간의 갈등’ 요인으로 만들 수 있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노년 취업이나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중소기업 투자를 통한 일자리 확대나 청년창업 제안과 같은 주변적인 아이디어만 내놓는 수준이다. 심지어 청년실업 문제를 국내에서만 해결하기는 어려우니 청년들이 중동으로 나가야 한다던 정부는 최근 ‘청년 해외 일자리를 전문직 등 양질의 일자리 중심으로 재편하고, 이를 적합한 인력양성으로 뒷받침하기로 결정’하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청소년들의 꿈도 다양해졌다. 전후 사회 질서를 잡아가던 시대에 대통령이나 판사가 어린이들의 꿈이었다면 산업화시기에는 경제, 경영학이 최고의 인기학과로 부상했다. 90년대 이후 자유주의 확산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대외 문화개방으로 외국가요나 문화콘텐츠가 유입되고 우리나라의 음악과 드라마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를 넘어 미주에까지 확산되는 현상을 따라 청소년의 꿈도 변하고 있다. 그러나 ‘안정적’인 삶을 꿈꾸는 부모세대의 본성과 획일화된 교육체제는 초등에서 대학교육까지 모두의 청소년기를 결박하고, 남보다 더 나은 스펙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하나의 패턴으로 결박한다.
이런 문화의 시대에 청소년의 재능과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은 절대 부족하다. 요즘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단 한사람의 천재를 발굴하기 위해 몇 개월의 오디션과 합숙을 거쳐 청소년의 재능을 소진케 한다. 수백 대 일에 이르는 대기업의 입사 경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시스템이 성장기 청소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한 달 50만 원 정도의 안정적인 수입만 보장되면 자신은 좀 더 많은 시간을 창작에 힘쓰고 평생 음악을 지속할 수 있다는 어느 인디가수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경쟁 체제는 서너 개에 불과한 소수의 기획사가 10대의 재능과 상상력을 채취하여 수년간 비인간적인 ‘실습생’과정을 거쳐 지상파 방송을 통해 ‘아이돌’을 생산하고 그 중에서도 소수를 선별하고 나머지는 용도 폐기하는 악순환 자체이다.
지금도 홍대를 비롯하여 문화와 젊음의 상징으로 불리는 거리에는 수많은 젊은 아티스트가 나와 기발한 상상력과 재능을 뽐내고 있다. 이들은 ‘인디’ 또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지칭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 중 다수는 ‘생계’의 위협에 노출될 때 그 생명력을 잃어간다. 우리는 그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보다 풍요롭게 이끄는 중요한 자산임을 인식하고 그들이 ‘아이돌’이나 개천에서 난 ‘용’을 꿈꾸지 않고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생계를 위한 ‘밥벌이’로부터 자유롭고 충분한 시간이 제공된다면 청년들은 기득권의 허락 없이도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다양한 공간을 스스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생존보다 높은 차원의 성취를 이루고자 노력할 것이며 그 사이에서 우리는 ‘생계’ 이외의 충족감을 허락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기본소득이 대부분의 청년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은 바로 여기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괜찮다는 것, 이것은 극단적 빈곤을 차단하는 최소한의 생계비 보장으로 생존을 위한 장시간 강노동에서 자유로워질 때에야 가능한 것이며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이 기본소득이 될 것이다. 기본소득은 개인을 나태하게 만들기보다 사회적 책임을 내재화해서, 상품화된 노동과는 다른 가치로 사회에 기여하게 만들 것이다.
기본소득이 국가적으로 실현되면 이러한 청‘소’년 문제 뿐 아니라 모든 계층의 시민이 ‘생계로부터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지고 장시간 강노동에서 벗어나 생각과 상상력은 더욱 자유롭고 풍부해질 것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가구나 고도의 기술이 집적된 첨단 전자제품, 자연의 파괴를 수반하는 화학제품이나 유전자변형식품 등의 족쇄에서 벗어나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환경 파괴를 지양하는 적정기술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가족이 모여 손수 가구를 만들거나 집안을 꾸밀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청년실업이나 환경파괴, 빈곤의 악순환 등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좀 더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에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청년이 삶에 좀 더 의미 있는 선택과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직에 있어 돈에 쫓겨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거나, 가치 있지만 소득이 적어 포기해야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 직업을 찾기 위한 대도시 이주의 압박이 줄어듭니다.
- 생활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 모두에게 사회적 안정, 권리, 독립에 대한 감각을 키워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