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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9호] 문학이 있던 자리
고백하건대 저는 열아홉 살부터 서른셋에 이르는 기나긴 세월 동안 소설습작을 해온 문학도입니다. 감히 등단도 못한 문학도 따위가 신경숙이라는 대작가의 표절 문제에 대해 운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신경숙은 85년 등단한 이후 한국문단의 명망 있는 대부분의 문학상을 싹쓸이했습니다. 게다가 오프라 윈프리 추천목록에 『Please look after mom』이 등재되어 한국문학도 미국 출판시장에 먹힌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저 역시 신경숙 소설을 중학교 때 처음 접하고 문학소녀의 관점에서 신경숙이야말로 한국문학 자체다, 라고 믿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학시절까지 신경숙 소설의 대부분을 읽었지만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숙의 소설집 『종소리』 이후로 그녀의 작품을 읽거나 사 보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취향이 바뀌어서도 그렇고 왠지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 썩 끌리지 않았습니다. 문단과 언론에서 그녀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울수록 저는 신경숙 소설의 매너리즘과 멜랑콜리가 마뜩찮았습니다. 더더군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부탁해』를 읽게 된다면 제 의지와 무관하게 눈물콧물 다 쏟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자존심 상하는 사태는 피하고 싶었습니다.
이응준 소설가는 “앞으로의 문단생활을 스스로 포기하면서²⁾” 신경숙 표절 문제를 수면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15년 전에 이미 제기된 문제를 폭로(?)하는 것임에도 이응준은 문단으로부터 추방될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신경숙의 표절 문제를 무시하고 신경숙과 그녀의 문학을 ‘우상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대형 출판사와 그 출판사에서 나오는 문예지와 그 문예지를 주관하는 편집위원들이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표절 문제 제기가 있어왔지만 신경숙과 문학권력은 침묵에 침묵을 더하며, 모든 것을 지우는 시간의 속성에 기대어 방관해 왔습니다. 이응준 역시 문제의 당사자보다 그 사실을 은폐한 문학계에 일침을 가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해 보입니다.
신경숙은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은 알지 못한다. (…)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라고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집필 중에는 연락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작가님은 몇 달째 서울을 떠나 있다고 합니다. 창비 문학출판부는 “단편 「전설」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뛰어난 작품”이며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려”우며 신경숙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평가까지 내리며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고 요상하게 변명했습니다.
15년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작가 자신도 잊고 출판사도 잊고, 모두가 잊고 침묵하고 그렇게 책을 잘 팔고 있었는데, 우아하게 집필 중이었는데 그 유명하다는 오프라 윈프리가 자기 작품을 추천까지 했다는데, 갑자기 뜨악, 하고 놀란 그들의 당혹스러움이 어설픈 해명에 반짝 묻어납니다. 오죽하면 저 유명한 ‘아몰랑’ 화법의 메커니즘을 흉내 냈겠습니까. 침묵도 견고하면 종기가 되는 법입니다.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문제들에 대해 그들은 완고하게 무시하거나 침묵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이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작가는 자기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통렬한 반성과 자기비판 없이 믿어달라고 독자에게 애원하는 신경숙의 태도는 작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삶의 진실을 다루는 것이 문학의 자리라면, 그 진실로부터 한참 떨어져버린 태도라 할 수 있지요. 소설가란 자기 스스로를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신경숙은 종교인들이 쓸 법한 맹목적인 뉘앙스의 ‘믿음’을 운운하였습니다.
1999년 제기된 「딸기밭」 표절 논란과 관련하여, 신경숙은 안승준 유고집의 내용을 가져와 쓰며 “소설 속에 용해될 수 있을 거란 소박한 생각³⁾”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독창적 ‘용해’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쓰인 부분이 발견되었고, 결국 작가 스스로도 석연치 않은 변명 끝에 인용표시를 하였습니다. 앞에 인용한 신경숙 기고문의 전문을 읽으면 그녀 스스로 표절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신경숙은 정말 모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장의 대접을 받으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예술가의 윤리를 모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단 내에서도 표절의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그리고 문예창작학과 과정 중에 표절 방지에 대한 교육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문예창작학과를 다닐 때도 그랬고, 신경숙이 서울예술대학을 다닐 때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예술, 특히 문학에 있어서 표절의 문제는 미묘한 것이기에 이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표절의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고 그에 따른 교육을 한다면 정체불명에 가까운 ‘표절의 망령’이 떠도는 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가 고노 다에코는 “표절에는 하나의 작품을 통째로 번안하는 식의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예는 드물다. 대개는 두세 대목 정도의 표절이다.⁴⁾” 라고 했습니다. 또한 표절이란 것이 좋은 부분만이 아닌 엉뚱한 부분을 가져다 쓰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고 같은 책에서 말합니다. 그만큼 표절이라는 게 이해하기도 힘들고 작가라면 누구나 걸려들 수 있는 위험이기에 스스로를 부디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노 다에코 자신도 언제 잘못을 저지를지 모르니 표절 문제를 일으킨 작가를 대놓고 비난하기가 어렵다고도 하였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역으로 말하면 소설가들 누구도 자신이 표절을 백 프로 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몰래, 의식이 아닌 무의식이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누가 표절 비슷한 말이라도 한다 치면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자기 작품을 의심하고 살피고, 반성하는 게 소설가가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아마도 표절 논란 자체보다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 건 표절 논란을 대하는 신경숙의 태도였습니다.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 의심을 품은 독자들에게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라는 오만한 주문을 하는 작가답지 않은 태도 말입니다.
표절이 있던 자리도 잊히고, 그 위에 인세와 명성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날이 금세 또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권력을 쥔 자들의 비윤리적 태도를 금세 잊어버립니다. 그런 일들이야 비일비재하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문학의 자리만은 청정지역으로 남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요?
이번 사태가 그나마 주목을 받는 것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도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출간되지 못한 작품, 무명의 작품, 대중이 모르는 무수한 글이 독자의 손에 닿기도 전에 도용당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이승우의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에 표절 문제를 제기한 김주욱 작가는 이 문제를 장편소설 『표절』로 소설화시켰습니다.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인 「허물」의 모티브, 배경, 디테일 등이 『지상의 노래』 일부에 도용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언론에 기사화되었을 뿐 이는 곧 묻히고 말았습니다. 김주욱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표절의 정확한 기준조차 마련되지 못한 채 사안에 따라 혹은 여론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는 모양”이라고 하며 “도용당한 자는 있으되 도용한 자는 없는 기이한 현상5⁾”에 대해 자성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학의 자리는 소외된 이들의 옆이어야 하며 또한 진실의 한가운데여야 할 것입니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단독성이라는 고유한 예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면 그것을 더는 예술이라 포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를 신화화하며 대중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주문하는 작가와 그 작가를 떠받쳐준 침묵의 세력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1)신경숙의 단편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빌려온 제목임.
2)이응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허핑턴포스트코리아(http://www.huffingtonpost.kr)』, 2015. 06. 16.
3)신경숙, 「출처 안 밝힌 인용은 죄송, 표절혐의 이해할 수 없다」, 『한겨레신문』, 1999. 09. 28.
2)이응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허핑턴포스트코리아(http://www.huffingtonpost.kr)』, 2015. 06. 16.
3)신경숙, 「출처 안 밝힌 인용은 죄송, 표절혐의 이해할 수 없다」, 『한겨레신문』, 1999. 09. 28.
4)고노 다에코, 『소설가의 비밀을 벗긴 12장』, 새문사, 2003, 197쪽.
5)김주욱, 『표절』, 나남, 2014, 348쪽.
5)김주욱, 『표절』, 나남, 2014, 3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