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9호] 내 멋대로 장서 분류법에 관하여

얼마전 거의 몇 년만에 책정리를 했다. 처음엔 그저 집안 여기저기 곳곳에 쌓여있는 책들에 짜증이 나서 책장에다 책을 쑤셔넣는 걸로 시작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그게 아니었다. 기왕 시작한 것, 더는 지금처럼 계속 책무덤 속에서 살아갈 순 없다는 결심으로 당분간 자주 꺼내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은 분야를 막론하고 모조리 다락으로 올려 보냈다. 작은 집인데 그나마 아담한 다락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유배라도 당하듯 졸지에 먼지 쌓인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쫓겨난 책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내 사정이 더 급한 걸 어쩌겠는가.
그렇게 새벽까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나니 서재방이며 거실, 작업방에 조금 여백이 생긴 것 같아 숨통이 탁 트인 기분이었다. 그런데 정리된 서가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론 좋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무언가 일을 하다만 느낌이 계속 드는 것이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커플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무지막지하게 근대 과학주의를 비판한 프랑스 철학자 미셸 앙리가 스티븐 호킹과 케빈 캘리, 레이 커즈와일 같은 트랜스 휴머니스트들 사이에 끼어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 그 불편한 마음이 얼마나 클 것인가! 심지어 움베르토 에코 선생은 디아스포라라도 된 듯이 이 방 저 방에 흩어져 있는게 아닌가!
더구나 이제야 발견한 건데,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철학자라고 해도 데이비드 흄 선생의 『오성에 관하여』 제1권은 어쩌다 두 권이나 사들여 놓았는지 모르겠고,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책 모리스 블랑쇼 선생의 『문학의 공간』은 하늘로 승천이라도 해버린 것인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뿐만 아니라 분명 내 기억 속에는 확실하게 집에 있어야만 하는 몇 권의 책도 온데간데 없다. 이런 알 수 없는 가출 사건 혹은 실종 사건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날엔 귀신처럼 떡 하니 다시 나타나기도 하니 더 두고볼 일이다. 결국 허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이번에야말로 장서 정리 작업을 끝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말았다.
자, 장서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면, 이제 어떤 방식으로 장서를 분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사실 이 문제만 해도 여간 골머리가 아픈 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장서분류를 포기해 버렸던 건 이 문제에 관한 명료한 해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일반 도서관처럼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서 같은 대 분류를 기초로 대학 학과처럼 세부적인 과들로 분류할 것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이 아닌 개인 서가를 정리하는 데 굳이 그런 관료적인 방법을 채택할 이유는 전혀 없다. 개인의 서가라면, 한 개인의 정신적 편력과 취향, 관심사 등이 드러나는 방식이 좋고, 무엇보다 그 개인이 서가를 활용하는 데 편리해야 한다는 편의성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일관성, 편의성, 체계성, 취향, 이 모든 걸 만족 시키는 멋진 분류법을 발견하지 못했던 탓에, 혹은 덤벙대는 성격이나 게으름 탓에 분류 작업을 거의 팽개치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정리가 급하다고 해도 책을 분류한답시고, 어느 책에선가 읽은 것처럼 책을 ‘색깔’ 별로 분류할 순 없지 않겠는가!
다행히 이번에 분류 작업을 하려고 보니, 나는 그동안 어떤 무의식적인 동기에 따라 저절로 내 취향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조금씩 책을 분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분류방식은 내가 좋아하고, 그래서 전작을 거의 구비하고 있는 작가들을 따로 코너를 만들어 모아두는 방식이다. 작가별 코너, 그게 내가 분류하는 제1순위 장르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작가들, 니체, 몽테뉴, 비트겐슈타인, 스피노자, 질 들뢰즈, 푸코, 움베르토 에코, 슈펭글러, 죠르쥬 바타유, 한나 아렌트, 괴테, 보르헤스, 프루스트, 모리스 블랑쇼, 제임스 조이스, 에드가 앨런 포우, 카프카, 밀란 쿤데라, 파스칼 키냐르, 니코스 카잔차키스, 오에 겐자부로, 알베르 카뮈, 쟝 그르니에, 롤랑 바르트, 추사 김정희, 박상륭, 김현 등등 이런 식으로 작가별 전작 코너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제1순위를 분류해서 정리해 놓고 나니 나머지는 의외로 쉽게 분류가 되었다.
  
  
제2순위 분류는  문학인데, 문학은 소설, 시, 비평들이다.
제3순위는 책에 관한 책, 즉 서지학에 관계된 것들과 서평류들이다.
제4순위는 서양철학으로, 고대 철학과 유럽과 영미 현대 철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제5순위는 동양에 관한 책들로, 노자와 장자, 공자를 필두로 동양철학과 인도철학, 불교철학, 한국사, 고전문학류가 다 포함된다.
제6순위는 과학이다. 과학철학과 물리학, 생물학, 신경과학, 심리학, 기타 등등 모두.
제7순위는 그간 이런저런 경로로 수집한 고서류.   
제8순위는 기독교를 비롯한 기타 종교나 종교학에 관한 자료들. 
제9순위는 작업실 책상 옆 서가에 두고 최근에 읽고 있거나 집필에 필요한 자료들
  
  
.나의 분류 순위에는 빠져 있지만, 희귀본 코너나 혹은 세상에 드문, 아주 신통방통하고 특이한 책만 모아놓는 코너도 가능할 것이다. 그건 각 독자의 취향대로 정하기 나름이다.
이렇게 서가의 장서를 새롭게 다 분류, 정리해 놓고 나니 내 머릿 속도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현재로서는 이런 식의 분류가 내 마음에 든다. 앞으로 더 나은 분류법이 떠오를지도 모르지만, 일단을 이걸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이런 정리가 가능했던 것은 서가에 여백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집안엔 천 권 이상은 두지 말 것! 수시로 넘치는 책은 정리할 것!
이런 원칙을 세워놓고 많은 책을 창고와 다락으로, 혹은 집 밖으로 방출해 버린 탓에 집안의 서가에 어느 정도 책이 부대끼지 않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탓이다.
그러나 막상 나름대로 나의 취향과 관심, 편의성에 따라 분류해 놓고 서가를 찬찬히 둘러보니 그간의 내 독서 편력과 관심사가 한 눈에 드러나면서, 한편으론 “도대체 왜 이리 잡다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 라캉을 전공하고 온 K 선생의 서재라면, 서재 대부분이 프로이트와 라캉, 지젝 등 정신분석학에 관련된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 터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온 Y의 집에 놀러갔다가 서재엔 오직 불문학 관련 책들만 있는 걸 보고 적이 놀란 적도 있었다. 그 서재를 보면서, 아무리 전공자지만 너무 편협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는데, 학위에 쫓기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깊이와 넓이를 다 가지는건 역시 어려운 일이다.
생각이 ‘전문화’ 에 미치자 무언가 미흡하고, 아쉽고, 너무 많이 모자라는 듯한 마음이 생긴다. 예를 들어, 플라톤 전집이 아쉽고, 모리스 블랑쇼의 전작들도 아직 다 모으지 못했고, 도스토예프스키 전집도 도서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핑계로 제외시켰고, 최근에 나오고 있는 루소 전집이나 지젝의 책도 그런 이유로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간 더는 책을 들여놓지 않겠노라며 도서관에서만 빌려 읽은 책들이 머릿속에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 책도 모두 서재에 모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이 슬금슬금 솟아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욕심도 결국 분에 넘치는 호사스런 ‘수집욕’에 불과하다는 걸 떠올리며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집안에 전체를 다 들여놓고 싶은 시리즈가 얼마나 많은가? 이를테면, 나는 한때 출판사별로 책을 다 모으려는 ‘거대한 야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 특히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오는 책은 새책이건 헌책이건 간에 모조리 모아보겠다는 욕심을 부리며 제법 수집하기도 했는데,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민음사판 세계 문학전집이나 문학동네판 전집, 문지사판 대산세계문학 총서, 최근에는 워크룸 프레스에서 출간하고 있는 제안들 시리즈나 을유문화사판 세계 문학전집도 구미가 당기긴 마찬가지다. 아서라, 만약 이런 시리즈에 욕심을 부리다간, 이 시리즈로만 온 집안을 다 채워야 할 판이리라.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마침내 서가를 정리해 놓고 보니, 이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커플이 다정하게 나란히 있고, 원수지간인 철학자와 과학자도 멀찌감치 떨어져 ‘히유~’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다. 내 마음도 덩달아 좀 편해진다. 이제 글만 열심히 쓰면 되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책들아, 그동안 잘 돌보지 못해 미안했다. 평생을 함께 가야 할 내 마음의 벗들이여, 너무 누추할 정도로 소박한 서가에 모시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아쉬운만큼 더 많이 더 열심히 사랑해 줄게.

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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