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7호] 일상의덧_뉴규_마이국회텔레비전,"마국텔"

마이 국회 텔레비전 “마국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아직도 외투의 깃을 올려야 될 날씨입니다.” 2월 25일, 오후 8시 50분을 넘긴 시각, 강기정 의원이 필리버스터 아홉 번째 토론자로 자리에 올랐다. 22일부터 시작한 필리버스터는 25일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처음 나온 것을 목격한 건 처음이어서, 이야기가 하나씩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몇 시간 뒤 내릴 결론을 미리 이야기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이 기억납니다. 누구의, 어떤 소설인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아마 6·25전쟁이 배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피난민들이 어두운 동굴에 숨어 있었는데 밖에서 군인들이 너희들은 누구 편이냐고 묻습니다. 그걸 묻는 군인들의 얼굴이나 복장을 전혀 볼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대답을 하긴 해야 하는데 대답에 따라 살지, 죽을지, 결정되는 겁니다. 소설가는 손전등의 공포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둠 속 상대방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데 상대방은 손전등으로 나를 훤히 내려다보고 있고, 그가 맘만 먹으면 내 운명이 180도 달라질 수 있는 상황, 지금 국회에서 상정되는 테러방지법이 그런 법입니다. 어두운 동굴 속 사람들은 국민이고, 손전등은 국정원입니다. 국민들은 손전등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에 의해 훤히 들여다보일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 감청과 계좌추적 같은 개인사찰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토론을 시작하며, 결론을 이야기했던 강기정 의원이 예를 든 소설은 이청준의 <소문의 벽>이라는 소설이었다. 잡지사 편집장인 ‘나’가 정신분열증이 되어가는 소설가 박준의 잠재의식을 추적하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강기정 의원이 예를 든 장면은 소설가 박준이 제 일을 소설을 통해 진술한 내용에서 나온다. 어머니와 함께 단둘이서 집을 지키고 있던 G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손전등 불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방 안에서 느꼈던 공포를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전짓불의 강한 불빛 때문에 그 뒤에 선 사람이 어느 편인지는 죽어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그 전짓불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무서운 것이었는가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군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끝끝내 대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요. 전짓불이 자꾸 대답을 강요했기 때문이죠. (중략) 당신의 남편은 누굴 따라간 게 틀림없다, 그게 어느 편이냐, 아주머니는 누구 편이냐, 사정없이 추궁을 하고 들지 않겠습니까. (중략)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앞에서 가장 정직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부터가 바로 불안한 일이었다. - 이청준 작가의 <소문의 벽> 중 ”


이청준 작가가 이 작품을 발표한 해는 1971년, 박정희가 대선에서 세 번째로 이긴 해이기도 했다. 1967년 5월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1969년 6차 개헌을 통해 자신이 대통령 3기 연임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이에 1971년 4월 대선에서 3선에 성공한다. 
강기정 의원이 이야기하는 내내 생중계 창 옆에는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3만 명 넘는 사람들이 생방송을 시청 중이고, 국회 TV에  ‘재미’ 요소가 더해졌다. 강기정 의원의 말투, 국회에서 몸싸움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짓던 모습을 보며, 댓글에는 수없이 많은 ‘아멘’이 달렸다. 그의 말투와 모습이 ‘목사님’을 떠오르게 한다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때 헛웃음이 난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나와서 ‘잘못’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누군가는 우리가 역사의 현장에 있다고 이야기하더라고, 그랬다. 이런 현장에서 산다는 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어떻게 기록되는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도 국회TV는 방송 중이다. 이 방송이 끝나면, 곧 총선이다.

                        

                              


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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