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9호] 양지 바른 언덕 위 줄 맞춰

호남선 철길이 흐르고, 도솔산 자락이 봉긋하게 서 있다. 바로 앞 도마삼거리에는 8차선 도로 위로 자동차가 정신없이 흐른다. 도마 육교 위로 올라서 바라보니 그제야 동네가 제대로 보인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도마2동에 속하고 삼육초등학교와 중학교, 제일고등학교가 나란히 앉았다. 도마삼거리에서부터 배재대학교, 서대전여자고등학교가 있는 쪽까지 모두 도마2동이다. 그 중 도로명 주소로 ‘도림길’이라고 표기되는 도마2동을 찾았다. 도림1길부터 8길까지, 언덕을 올라, 조용한 골목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陽地, 볕이 바로 드는 곳

뒤로 펼친 도솔산자락 아래에 앉아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인데도 안정감이 있다. 마을을 거니는데, 방금 8차선 도로를 건넜다는 게 금세 잊힐 만큼 동네는 조용하다. 보통 마을에 있을 법한 가게도 별로 없이 단독 주택 아니면 빌라가 전부다. 당연히 동네에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세탁소나 빵집 같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13년 전에 이사 와서 가게 시작했어요. 한 7년 정도는 장사가 잘됐지. 지금은 다들 차가 있으니까 차를 가지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오죠. 단골이라는 말은 좀 그렇고, 보통 빌라에 혼자 살거나 장을 크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슈퍼에 와요. 원래 우리 식구가 둔산에 살았는데, 노후에 살 동네를 찾아서 이사하려고 보다가 이 동네에 오게 된 거예요. 동네가 너무 조용하고 좋아서 남편이랑 같이 왔는데, 우리 오고 나니까 자식들도 동네 좋다고 해서 지금은 다 같이 살아요. 열 식구니까 대식구지. 지금 장사가 잘 안돼서 물건 조금씩만 가져다 놓고, 심심하니까 문 열고 있어요.”

도림8길에 있는 양지슈퍼 사장님의 이야기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던 사장님은 조곤조곤 자신이 느낀 동네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지슈퍼 사장님이 이사 올 즈음에 막 육교를 만들고 있었다. 육교가 올라선 것 말고 동네는 13년 동안 변한 게 없다.

“마을 분들이 다들 점잖어. 장사하다 보면 별사람을 다 만나요. 술 마시고 유난스럽게 구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런 게 좋아요. 원래도 슈퍼 자리였는데, 그때도 이름이 ‘양지’였어요. 양지라는 이름이 좋잖아.”

‘볕이 바로 드는 곳’, 양지슈퍼를 나오자 아침 햇살이 동네에 고르게 퍼져 있었다.

  

  

도솔산 아래 도마동

도마1~2동은 대전 서구의 중앙에 있는 행정동이다. 2010년 2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펴낸 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을 살피면 『여지도서』에는 도마교리(道馬橋里)라는 지명과 함께 인구 26호로 기록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우리말 지명으로 ‘도마 다리’, 한자로 ‘도마리(道馬里)’라고 표현한다. 유등천 북쪽의 산 모양이 도마뱀처럼 생긴 데서 그 일대 마을을 도마달 혹은 도마실이라 불렀고, 이곳에 놓인 다리 이름을 도마 다리라 불렀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조선 시대에 공주목으로부터 남쪽 경계를 지나는 주요 길목으로 많은 선비의 낙향지였다고 전한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회덕군 유등천면에 속했고, 1914년 도마리라 개칭해 대전군 유천면에 편입되었다. 이때부터 복숭아나무 도(桃)자와 말 마(馬)자를 썼다. 1977년 대전시 중구 도마동이었다가 1988년 서구 도마동으로 편입되었고, 1992년 도마1동과 도마2동, 정림동으로 분동했다. ‘도마동’ 말고 마을 사람끼리 부르는 이름은 따로 없다. 뒤로 펼친 도솔산 역시 그냥 ‘산’이었다.

“글쎄. 내내 이름은 도마동이고 산은 그냥 도솔산이지. 살기는 좋은데 여름에는 산 모기 내려오고 차 타려면 한참 내려 가야 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 동네 사람 모여있는 디가 딱히 없지. 미용실은 있는디 이발소가 없어서 도마1동 쪽으로 가야 혀.”

도림5길에 사는 일흔여섯 이동섭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도마1동에 살다가 도마2동으로 이사를 왔다. 고향은 논산시 두계마을이다. 몇 년 전 재개발을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에 관한 조사를 나온 적이 있어서 반대에 한 표를 던졌다. 지금 사는 집에서 쓸 수 있는 면적은 집안과 마당, 집 밖 골목까지 합해 50여 평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물을 주워다 파는 일을 한다. 할아버지는 한참 고물을 뜯고 있었고, 할머니는 고물을 주우러 갔다. 언덕에 있는 집이라 다른 곳보다 싼 편인 데다가 고물을 주워다 놓는 작업을 하는 데 이만한 집이 없다.

“15년 동안 변한 거라고는 도시가스 놓은 것밖에 없지. 집도 내내 그 집이 그 집이야. 사람 사는 소리가 나야 좋은디 말이여. 우리야 지금 사는 데 내놓으면 구할 데가 없으니까 재개발 반대했지. 그러니까 안 된다고 하는 것 같더만.”

도림길은 2009년 8월, 도마변동13주택재개발구역으로 묶인 곳이다. 이후 여러 사유로 재개발은 지연되었다. 동네 사람들에 따르면 찬성한 사람보다 반대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대게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들인 데다 노인 인구가 많아서라는 게 동네 사람들의 추측이었다. 도마2동 주민센터는 “2015년 4월 3일 도마변동13주택재개발구역은 존치구역으로 유지하도록 촉진계획 변경되었다.”라고 말했다. 

  

  

1 김정길 할아버지

2 점심시간, 뒤편으로 보이는
 삼육초등학교에 아이들이   뛰놀고 있다

3 이동섭 할아버지는
  할머니가올 때까지     고물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꼬리 자르고 도망간 도마뱀 꼬리 같은 동네

“이사 온 지는 한 40년 됐지. 연립에 살다가 집 사서 왔는데, 애들 학교 다녀야 해서 죽 살았어. 지금은 언덕 아래로 내려가서 살고 싶어도 못 가. 땅값이 너무 올랐어. 여긴 언덕이라서 땅값이 싸잖아. 복지관이야 있기는 한데 지금은 안 가. 가면 어린애 취급 당하고. 심부름이나 해야 하고.”

일흔여섯 김정길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노인 일자리사업에 지원해 동네에 붙은 전단을 떼다가 태양슈퍼 앞 평상에 앉아 잠깐 쉬는 중이다. 걷는 데 불편함 없는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동네를 다니며 전단을 뗀다.

“내가 올 때만 해도 다 논밭이었지. 지금 제일고등학교 자리가 옛날에 ‘북중학교’였잖어. 그전에는 공동묘지였어. 도랑은 없었어도 다 논밭에 산이었던 데를 깎아서 집 짓고 사는 겨. 여 뒷자락에 남은 산은 주인이 너무 많아서 안 깎는다는 말이 있던디?”

지금 제일고등학교만 남은 자리는 1970년 대전북중학교로 개교해 2007년 대전제일중학교로 변경했으며 2014년 2월 폐교해 현재 공사 중이다. 도림길에만 삼육초등학교, 제일고등학교까지 두 개 학교가 있다. 제일중학교가 폐교되기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도림길에 있었다.

“도솔산을 따라서 산줄기가 죽 늘어섰잖아요. 제일고등학교 쪽이 우백호고, 배재대학교 쪽이 좌청룡이라고 해요. 제일고등학교 터가 옛날에 공동묘지였는데 제비들이 모여서 옹기종기 놀았다고 해요. 그 모습을 떠올리면 아이들이 막 뛰어노는 게 연상되잖아요. 그래서 학교가 생겼다고 해요.”

도마2동 문창모 동장의 이야기다. 조용했던 동네는 점심시간이 되자 왁자지껄 소리로 뒤덮힌다. 교복을 입은 삼육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떠들썩하다. 동네는 점심시간에 한 번, 퇴근 시간에 한 번씩 시끄러워지는 모양이다. 태양슈퍼 주인 할아버지는 “낮 동안 조용했던 동네는 퇴근 시간이 되면 동네로 들어오는 자동차로 북적인다.”라고 말하며 집마다 자동차가 있어 장사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양지슈퍼, 태양슈퍼, 새동네슈퍼까지 도림길 안에 있던 슈퍼 세 곳중 새동네슈퍼는 문을 닫았다. 새동네슈퍼 근처에 나란히 미용실 두 곳이 있고, 사는 데 필요할 법한 다른 상점은 보이질 않는다. 동네 사람 대부분 뭔가를 ‘해야 할 때’에는 정림동이나 도마1동으로 간다. 대전 서구청에 따르면 도로명주소 도림길은 “도마동과 정림동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지역으로 도마동의 도자와 정림동의 림자를 따서 도림이라고 함”이라고 한다. 경계에 있어서인지, 언덕 위에 있어서인지, 뚝 잘린 도마뱀 꼬리만 남아있는 것 같다. 언덕 위에 있어 햇살을 먼저 받는 곳, 그러고 보니 아직 문을 연 슈퍼 이름도 모두 햇볕과 관련이 있었다.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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